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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225

[서울 성곽] 흥인지문(보물1호), 구한말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한양도성 동대문

동대문이라 부르는 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서쪽 출입문으로 함경도에서 철원, 양주를 거쳐서 들어오는 길을 비롯하여 강원도에서 남양주를 거쳐서 들어오는 길, 영남지방에서 광주를 거쳐서 광나루, 송파나루를 건너서 들어오는 길 등이 동대문과 연결된다. 흥인지문은 태조대(1398년)에 한양도성을 처음 쌓았을 때 처음 지었던 것을 단종대(1453년)에 고쳐지었던 것을 구한말인 고종 6년(1869)년에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구한말에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당대의 건축양식의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자 한양도성의 성문으로 역사적, 건축적인 가치가 높고 국보 1호인 숭례문과 함께 상징적인 의미로서 보물 1호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화강석을 아치형으로 쌓은 홍예문이며, 문루는 조선시대 ..

강화산성(사적132호), 동문인 망한루와 주변 성벽

강화산성에는 동.서.남.북에 성문을 두고 또한 4개의 암문, 2개의 수문을 두고 있으며,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파괴했던 것을 숙종대에 석축성으로 중수하였다. 강화산성 4개의 성문 중 동문은 염하를 건너는 나루터인 갑곶진과 한강을 오가는 선박들이 정박하는 연미정 부근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동문은 안쪽으로는 '망한루', 바깥쪽에는 '강도동문'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행궁과 관아가 있는 관청리 일대와 직접 연결되는 출입문으로 주로 강화부를 방문하는 관리들이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산성 동문은 구한말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2000년대에 복원하였다. 당시 프랑스군은 동문을 돌파하여 강화부 관아와 행궁을 불태우고 규장각에 있던 많은 도서들을 약탈해 갔다. 동문 동쪽에는 낮은 동..

[서울성곽] 장충동에서 남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성벽길

인왕산 성벽과 함께 조선태조때 처음 쌓은 한양도성 18 km 구간 중 그 보존상태가 양호한 남산 동쪽편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성곽이다. 남산순환도로 건설로 일부 구간이 끊어져 있기는 하지만 서울 도심 녹지 공간으로 그 보존상태가 양호한 남산 동쪽편 경사진 지형에 위치하고 있었기때문에 성곽이 허물어지지 않고 원형을 잘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숙종대에 한양 도성을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증측을 하였던 성곽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한양도성과 수원화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성이나 읍성은 성문주위나 평지를 제외하고는 조총의 공격에 대비한 여장을 설치않았던데 비해 한양도성은 평지에서 남산 정상부까지 성벽에 여장을 설치하고 있다. 남산 동쪽 성벽 탐방은 장충동 신라호텔 뒷편을 따라서 이..

대구 달성 (사적 62호), 원삼국시대 대구지역 토착세력이 쌓은 토축성

대구시 중심부에 위치한 달성공원은 작은 동물원이 있고, 조선시대 경상감영 출입문이었던 관풍루가 있는 대구의 오래된 도심공원이다. 달성공원은 원래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읍성 바깥쪽에 있던 오래된 토성으로 조선초기에는 달성내에 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곳엔 고려시대에는 달성서씨가 살던 사유지였으나 전국적으로 국방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읍성을 쌓던 세종대에 국가소유로 바뀌어 읍성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도시에 공원이 처음 세워지기 시작했던 1905년에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67년에 오늘과 같은 모습의 현대식 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구 달성은 대구시민이 많이 찾는 유서깊은 도심공원이지만,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는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이곳은 원삼국시대 대구지역 지방세력..

화성 당성(사적 217호), 당항성이라 불렸던 신라의 대외 창구

당항성이라고도 불리는 당성은 수원 서쪽 대부도 부근 해안지역 가까이 위치한 구봉산에 소재하고 있는 산성이다. 당성은 동남향으로 경사진 계곡을 포용하여 대략 삼각형에 가까운 형상으로 석루를 돌렸으며 소규모나마 포곡식 산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삼각형의 2변에 해당되는 서북.동북면은 능선을 이용하여 구축하였는데 석축이 형태는 잘 남아 있느나 표면은 흙과 잡초가 덮혀 마치 토루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서북 능선을 통과한 부분의 석축은 거의 잡초와 작은 수목이 우거진 토축처럼 바뀌어 있다. 성벽의 둘레는 약 1,200m로 산성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당성이 위치한 화성군 남양지역은 원래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이후 당성군이라 불렀으며 조선 태종때 전국의 지방조직을 정비..

이천 설봉산성 (사적423호), 한강 유역을 다투던 삼국시대 산성

설봉산성은 이천시 도심 서쪽에 위치한 해발 394m 설봉산 정상 동북쪽 능선, 칼바위 주변에 남아 있는 옛 산성터이다. 능선 주변에 석축을 쌓은 테뫼식 산성이라고도 하며,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라고 한다.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산성으로 성벽은 대부분 흙으로 쌓고 일부 돌로 쌓은 석축도 있는데, 원래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고 칼바위 부근에 복원한 성벽을 볼 수 있다. 산성 내부에는 주춧돌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는 건물터와 봉수대가 있다. 이 성을 쌓은 축성연대는 백제시대 유물이 발굴되어 백제가 처음 쌓았다는 의견이 있으며, 백제.신라.고구려가 한강유역을 다투던 시기에 고구려군이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설봉산은 경기도 내륙 남한강 이남 지역에서 비교적 농토가 넓고 질좋은 쌀 생산지로..

태안 안흥성, 태안반도 남쪽끝 중국 사신이 오가던 안흥항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축성

안흥성은 태안반도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흥항 뒷산에 쌓은 조선시대 석성이다. 안흥항은 충남 서해안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로 바깥쪽에 신지도라는 섬이 있어 먼바다의 파도를 막아주고 갯벌이나 해안사구가 없어 배가 정박하기 좋은 천혜의 항구이다. 안흥항은 한반도 서남해안을 따라 발달한 한.중.일 연안항로를 따라서 선박이 오가던 고대국가 이래로 중요한 항구였으며, 특히 만주지역 해안이 고구려를 비롯하여 북방세력에 장악되어 선박의 통행에 어려움을 겪던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할 때 산동반도나 그 이남 지역과 직접 연결되던 항구로 백제가 중국 문물을 받아들어던 창구역할을 했던 항구이다. 또한 조선초기 몽골이나 청나라의 압박을 받던 시절 명나라 사신들이 오가던 항구였다. 또한 고려~조선시대 연안 항로를 ..

태안 백화산성,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백화산(해발284m) 정상에 쌓은 테뫼식산성

충남 태안군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태안읍 뒷편 백화산 정상에 석축을 쌓아서 만든 백화산성이다. 백화산 정상에 성벽을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고려 충렬왕13년(1286)에 쌓았다고 하는데, 원래 산성이 있던 곳을 고쳐 쌓았다는 의견도 있다. 백화산성은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용이한 요새같은 지형을 갖추고 있다. 태안읍에 있는 관아와 가깝고, 백화산 정상이 해발 284m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 읍성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서해안 해상교역로를 지키기 위해 태안반도 일대에 쌓은 성곽 중 제일 먼저 축성되었다고 한다. 고려말.조선초 서남해안에 창궐했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성벽은 백화산 정산부에 둘레619m 정도로 쌓았으나 지금은 정상주변 ..

청주 상당산성, 동장대와 진동문에서 공남문까지

청주 상당산성은 충청병영이 있었던 청주성 동쪽 상당산을 중심으로 쌓은 둘레 4.1k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산성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이후 내륙 지방 거점에 대한 방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서해안과 가까운 서산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영을 청주로 옮기면서 대대적으로 보수한 산성으로 남한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산성이다. 상당산성에는 약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었으며 성내에는 병마우후가 근무하는 관아와 마을, 승군들이 머무는 사찰 등이 설치되었다. 청주의 상당산성은 중부내륙 지방의 중심지인 청주서쪽 상당산에 자리잡고 있다. 상당산성의 서쪽은 매우 가파르고 산성 아래는 평야지대를 이루는 반면에 동쪽은 완만하며 계곡을 이루고 있다. 산성내 동쪽으로 흐르는 계곡 주변에 마을을 ..

청주 상당산성, 동암문에서 동문(진동문)까지

상당산성은 충청병영과 청주목 관아가 있던 청주읍성 동쪽편에 위치한 요새로서 청주지역의 넓은 벌판과 중부지역 주요 교통로를 방어하기 위한 지형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산성이다. 청주도심이 있는 산성 동쪽편과 서울로 향하는 교통로가 있는 북쪽편으로는 경사가 심하고 지형히 험하여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용이한 반면에 동쪽편은 평지에 비해서 고도가 높은 편이며,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큰 산인 속리산을 거쳐서 경상북도 문경지역과 연결된다. 상당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포곡식 산성으로 동쪽편으로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으며, 주위의 크고 작은 산을 통해서 경상도지역으로 퇴각하기도 용이하다. 상당산성에는 3개의 성문과 2개의 암문이 있는데, 남암문과 서문을 제외하고는 동쪽편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현재는 산성내 마을..

청주 상당산성, 서문(미호문)에서 동암문까지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이곳에 토성을 쌓았을 것으로 짐작되며, 조선시대까지도 산성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당산성은 서쪽의 청주도심과 북쪽의 청원, 증평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지형적 특징으로 볼 때 청주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친 후 내류지역 주요 거점에 대한 방어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충청병영을 청주로 옮기면서 크게 증축한 것이다. 산성에서 청주도심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 남암문을 지나서 서문인 미호문까지는 상당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정상부 능선을 따라서 성벽을 쌓고 있으며, 청주도심과 연결되는 지역이라 성벽을 상당히 높고 견고하게 쌓고 있다. 반면에 서문에서 산성 동북쪽 출입문인 동암문까지는 대체로 크고 작은 산봉우리..

청주 상당산성, 남암문에서 서문(미호문)까지

조선후기 충청병영이 있던 청주 도심 동쪽편에 위치한 사적 212호로 지정된 상당산성은 남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축성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상당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중부 내륙지역 교통로 거점에 쌓은 군사적인 요새로 충청병영을 엄호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성곽시설은 대부분 조선후기에 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당산성은 지형적 특징이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며, 서쪽은 경사가 심하고 가파른 언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산성 서쪽편 언덕 아래에 주변지역을 관장하던 청주목 관아와 충청병영이 위치한 청주읍성이 있고, 주변에는 무심천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지형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산성은 ..

청주 상당산성(사적 212호), 공남문(남문)에서 남암문까지

청주 상당산성은 청주도심 동쪽 해발 419m의 상당산을 주봉으로 하여 능선을 따라서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상당산성은 청주 도심 주변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서쪽과 남쪽은 경사가 급하고, 동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조선후기 충청병영이 있었던 청주 도심 배후에 위치한 요새같은 산성이다. 이곳에는 백제가 처음 토성을 쌓았다고 하며, 삼국시대 청주지역 유력자였던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가 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상당산성이 갖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과 지형적인 잇점으로 삼국시대 이후에도 산성이 유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대규모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청주지역으로 서산 해미읍성이 있던 충청병영을 청주..

[서울성곽] 인왕산 정상 부근 성벽

한양 도성을 이루고 있는 성곽 중 경복궁 서북면에 둘러싸고 있는 인왕산 성곽이다. 북악산 성곽과 함께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 중 제일 중요한 곳으로 지금도 청와대를 방어하기 위해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인왕산은 정선의 산수화 '인왕제색도'에서 그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듯이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던 산이다. 인왕산은 높이 338m로 화강암으로 된 암반이 노출되어 있어 각양 각색의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곳곳에 솟아 있어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명산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60년대 북한의 기습으로 인해서 한때는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등산로가 개방되어 있다. 인왕산 성곽은 서울의 서쪽인 사직단 부근에서 시작해서 인왕산 봉우리를 거쳐서 한양 도성의 북소문인..

[서울성곽] 사직터널에서 인왕산 범바위까지

인왕산은 서울을 둘러싸고 4개의 진산 중 서쪽편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해발 338.2m로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산전체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기차바위,선바위, 범바위 등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바위들이 있다. 서울도심에서 백색의 화강암 바위산 경치가 아름다우며 그 풍경은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많은 그림에 볼 수 있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능선을 따라서 성곽을 쌓고 있는데, 서대문에서 사직터널과 인왕산 정상을 지나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까지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인왕산 성곽은 사직터널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가가 없는 지역이라 현재 남아 있는 서울 성곽 중 그 모습이 제대로 남아 있는 편이다. 서울을 지키는데 있어서 주요..

순천 낙안읍성, 정문격인 남문 쌍청루와 주변 성벽

낙안읍성은 전남 순천에 위치한 읍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읍성으로 현재도 주민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유일한 읍성이다. 낙안읍성은 동남.북서 방향의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관아 건물인 객사, 동헌 등이 자리잡고 남쪽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초가집으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물이 빠져 나가는 남쪽편에는 비상시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연못을 조성해 놓고 있다. 낙안읍성에는 동.서.남 3개의 성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남문이 낙안들판의 여러 마을들 주민들이 읍성을 출입하는 정문으로 보인다. 남문에서 관아까지 연결되는 길 주변에 크지는 않지만 상업지구라 할 수 있는 저자거리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성 남문은 옹성을 두고 있는 개거식 성문으로 성벽사이에 누각을 세워놓고 있는 형태이다. 남문 문루..

파주 오두산성(사적 351호),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쌓은 관미성으로 추정되는 백제 산성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 지역이 내려다 보이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한성백제 시기 한강하구를 지키는 백제의 중요한 요새였던 오두산성이 있던 곳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작은 곶처럼 돌출된 오두산은 해발 119m로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임진강 건너편 옛 장단군 지역과 한강 이남 김포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한강과 임진강을 오가는 선박을 감시하기에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30여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최전방 휴전선지역으로 관광객들을 위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실제 오두산성은 최전방 군사지역으로 전망대와 도로만 개방되어 있기때문에 발굴.조사가 끝난 오두산성의 성벽이나 시설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 왜 오두산성..

순천 낙안읍성, 서문과 관아 주변 성벽

순천 낙안읍성으로 조선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남해안과 서해안 지방에 쌓은 많은 읍성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읍성이다. 읍성은 동남.북서 방향 대로를 축으로 남쪽에는 민가, 북쪽에는 관아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낙안읍성에는 동남 방향에 동문, 남서방향에 남문, 북서방향에 동문이 있고, 관아 뒷편 북동방향으로는 성문을 두고 있지 않다. 성벽은 상당히 큰 돌을 다듬어 석축을 쌓고 있는데, 안쪽에 토축을 쌓고 바깥쪽에 석축을 쌓는 일반적인 조선시대 읍성과는 달리 전체를 석축으로 쌓은 석성이다. 낙안읍성 서문은 북동쪽의 조계산과 이어지고 교통로와 연결되고 있으며, 조계산의 선암사, 송광사를 지나 승주, 구례, 곡성, 남원과 연결된다. 성문이 문루가 남아 있는 남문, 동문과는 달리 서문에는 문루가..

순천 낙안읍성, 동문인 낙풍루와 주변 성벽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있었던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남해안 지역에서는 꽤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쳐서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던 곳이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평지에 장방형의 석축성을 쌓고 있다. 낙안읍성에 있는 동.서.남 3개의 성문 가운데 지금은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은 실제로 남해안이 있는 벌교지역과 연결되는 곳으로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

인천 문학산성과 문학산(해발 312m), 백제 비류가 처음 정착했던 미추홀을 지키던 산성

문학산은 인천사 남구 문학동에 위치한 해발 31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인천항 주변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문학산의 이런 지형적인 잇점으로 정상부에서는 남쪽으로는 안면도와 시화호 바깥쪽 바다가, 서쪽으로는 인천항을 지나 강화해협으로 연결되는 해로가, 동쪽으로는 시흥, 북쪽으로는 부평을 지나 김포공항 주변의 한강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국방상 요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문학산 북쪽편 문학경기장 부근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형이자, 고구려 동명왕의 둘째아들인 비류가 이끄는 세력이 정착한 미추홀이 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한.중.일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곳으로 백제 세력이 이곳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해상무역에 관여했던 세력이 정착해 있던 지역으로 보인다. 주변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을 비롯하여 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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