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우리의 글,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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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여행(Museum)/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우리의 글,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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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초 세종대왕이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이룬 한글 창제는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자, 현 실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어도 있고, 만주어,몽골어 등 많은 글자들이 주변국가에서 존재해왔지만 독창적이 표기 방법과 음운 체제를 가지고 있어서 한글의 의미는 아주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그 내용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것 이었기에 수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민정음(복제품), 해례본으로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학자들과 세종대왕의 서문있다. 원본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세종 26년에 백성에게 반포한 책이다. 세종이 지은 서문과 뒤이어 집현전 학자들의 해석과 쓰임법인 용례, 정인지의 해례 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책을 통해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 새 글자의 소리값과 쓰임법, 글자를 만든 원리 등을 알 수 있다. 책 이름은 '훈민정음'이며 해석과 용례부분이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므로 보통 해례본이라고 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용비어천가(복제품), 조선 왕조 창업의 노래로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이 지은 노래이다. 원본은 해남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훈민정음이 창재된 후 한글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15세기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내용은 조선 창조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읋은 노래 가사와 그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중 연회에서 연주되었으며 모두 125장이다.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 등이 간행에 참여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월인 석보. 세종28년 수양대군이 한글로 쓴 석가의 일대기.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이 책은 『월인천강지곡』이라는 명칭으로 발행된 것과 『석보상절』, 혹은 『월인석보』라는 명칭으로 발행된 3종류의 간행본이 있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년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월인석보』는 총 25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처음 간행된 권 1, 2, 7, 8, 9, 10, 11, 12, 13, 14, 15, 17, 18, 19, 23, 25와 재간행된 권 4, 21, 22 등 총 19권이 있다. 이 책은 조선 전기 2대에 걸쳐 임금이 편찬, 간행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조선 전기 훈민정음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세조때 불경 간행을 위해 설치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불경의 한글 번역본이다. '성문종합영어'의 저자인 송성문씨가 기증한 보물급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불경을 간행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한 간경도감에서 세조 11년 간행한 '대방광원각수라라요의경'의 한글번역이다. 간경도감에서 국역한 불교관련 서적 중 '원각경'은 전래하는 것이 드믈기 때문에 한글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불경의 제목은 '방정하고 광대한 깨달음의 세계인 원각을 설명하는 으뜸이 되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출처:문화재청>

몽산스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한 책으로 송성문씨가 기증한 고문서이다.

원나라 몽산스님이 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추리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학여 마는 책이다. 불교의 평상수행법인 선을 닦는데 필요한 내용이며 작은 글씨의 한글로 토를 달고 형을 바꾸어 한글 번역을 붙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시인 두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책

유은겸 등이 당나라 두보의 시를 풀이하고 분류해서 만든 책이다. 성종12년에 간행된 책으로 한시를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책으로 조선 초기 한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한중만록, 혜경궁 홍씨가 한글로 쓴 궁중일기. 정조 사후에 작성한 글로 내용의 진정성에 비평을 많이 받는 일기이다.

성재무도홀기. 고종34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화려한 궁중 무용 연습을 위한 교본으로  한글로 작성되어 있다.

'성재란 우리나라에서 만든 고유한 성어로 궁중 연회에서 사용된 무용을 일컫는다. 정재는 궁중 잔치에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차리거나 상을 거들 때 그리고 입장하고 퇴장할 때 베풀어지는데, 성재의 연습과정에서 사용된 것이 성재무도홀기이다. 이 홀기의 양식은 성재의 이름을 쓰고 다음에 초입 배열도가 놓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재무도 홀기는 한문본과 한글본 두 본이 남아있고, 한문본의 서두와 홀기 내용,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하여 동이 주도한 회작연 때 만든 홀기임을 추정할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겨레의 글, 한글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말은 있었으나 그 말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글이 없어 중국의 한자를 우리글처럼 빌려쓰거나, 우리말 어순으로 배열한 이두와 구결을 사용하는 불편한 언어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세종 28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노력하여 마침내 우리글인 한글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한글은 반포되기 3년전에 이미 완성되었다. 본래 새 문자의 제작이란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에 세종대앙은 3년이라는 시범기간을 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다. 처음에는 한자의 소리사전인 '고금운회거요'를 번역하여 한글을 실용해 보고 세종 27년에는 문학작품인 '용비어천가' 125장을 짓도록 하였다. 한글의 창제는 여러 문자를 널리 참고하였으면서도 그 기원을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작업이었으며, 실제 말소리의 발음 조직과 음운 체제에 들어맞는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한글로는 표기하지 못할 문자가 없을 정도이다. 이렇듯 표현하지 못하는 소리가 없으면서도 창제 당시의 글자수가 28개에 불과하며 글자 획도 간단하다는 사실이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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