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법치와 정치

younghwan 2010. 1. 3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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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유교사상을 구현한 성문화된 법전인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법치국가이자, 왕을 중심으로 한 유교국가이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법전인 성종때 만든 '경국대전'과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관료제 국가인 조선을 대표하는 제도인 과거제도 유물들과 각종 공신임을 증명해주는 교지들도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는 현재와 멀지 않은 시대임에도 불국하고 전해지는 유물은 많다고 볼 수 없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전해지는 유물은 조상들의 과거합경증인 교지와 공신임을 말해주는 교지일 것이다. 얼마전 공주박물관에서 전시한 공주지역 명가 유물 전시회에 전시된 유물의 상당수 이런 종류의 교지였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물 중의 하나인 조선왕조실록 또한 조선시대 정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한국새(대한제국의 국새). 진품은 한국전쟁 당시 분실하였고, 최근에 복원 옥새라고 한다.

1897년 10월12일 탄생된 대한제국은 이전 조선의 국새를 버리고 새로 국새를 여러개 만들었다. 이 국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국새는 대한국새라 새긴 대한국새이다. 이 대한국새는 대한제국을 대표하고 외교문서에 찍었다. 대한제국 때의 기타 국새로서는 관원을 임명할 때 또는 통신조서에 사용한 직명지보, 고급 관원의 임명에 사용한 제고지보, 군대업무에 사용한 대원수보 등이 있었다. 대한제국의 국새는 1910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빼앗겼다. 이를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반환받았다. 그러나 대한제국 국새 가운데 대한 국새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분실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성종때 만들어진 조선왕조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경국대전'은 조선왕조의 기본 법전으로 법전에는 조선을 통치하는 규범과 법적인 기초가 성문화되어 있다. '경국대전'은 세조 때 만들기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되었고, 이를 통해 조선의 법치주의는 확고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

'대전회통'은 1865년에 편찬된 조선시대 마지막 법전으로,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그동안 제정된 법조문의 변화된 내용을 모두 싣고 있다. 그래서 '경국대전'의 조문은 '원'으로 '속대전'의 조문은 '속'으로, '대전통편'의 조문은 '증'으로, '대전회통'에 처음 나오는 조문은 '보'로 표기하고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광해군일기.

조선왕조실록 작성은 왕이 돌아가시면 그 다음 왕의 명령으로 실록청이라는 임시관청에서 담당했다. 왕의 자리를 빼앗긴 연산군 및 광해군은 실록이라는 이름 대신 일기라고 하였고 관청도 찬수청이라 하였다. 광해군일기는 광해군을 따르던 북인을 내몰고 집권한 서인이 편찬하였기 때문에 광해군 당시의 정치 상황이 상당 부분 왜곡되었다 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사초와 세초

실록을 보관하던 서고인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
우리나라 역사 편찬은 이미 삼국시대에도 있었으며, 전문적인 역사 편찬 관원인 사관을 두어 왕의 재임 기간 동안에 일어난 사건 등을 일기체로 기록한 역사책, 이른바 실록은 고려시대에 등장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 기록이며, 총 1,893권 88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총독부 산하 기관인 이왕직에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통상 제외하고 있다. 완성된 실록은 임진왜란 전에는 서울의 춘추관과 전주, 성주, 충주에 사고를 지어 보관하였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에 보관된 것 이외의 다른 실록은 모두 불타 버렸거나 없어졌다. 이에 임진왜란이 끝나자마자 전주사고 실록을 바탕으로 다시 간행한 실록을 서울 춘추관, 경기 강화 마니산,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에 사고를 지어 보관하였다. 묘향산사고 실록은 후금 즉 청나라와의 외교관계가 악화되어가자 광해군 때에 전라도 무주의 적상산으로 옮겼고, 마니산 사고 실록은 병자호란 때 훼손되었던 것을 현종 임금 때 보수한 후에 숙종 4년 강화도 정족산에 사고를 지어 옮겼다. 1910년 국권 침탈후 조선 총독부는 모든 실록을 서울로 옮겼다. 이 가운데 오대산사고 실록은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되고, 일부만 남게 되었다. 2006년 47책을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은 바 있다. 그리고 적상산사고 실록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옮겨졌다. 정족산사고 실록과 태백산사고 실록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정부기록보존소에 각각 보관되어 있다. 1997년 유네스코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의 오랜 기간에 걸친 방대한 분량, 내용의 신방성, 보존성, 인쇄 수준을 감안하여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정조 임금이 중희당에서 거행한 인사행정. 정조대왕이 직접 연말 인사를 하던 대정의 모습의 그려놓은 병풍으로 인사에 참여한 사람의 명단이 적혀있다.

조선 정조 9년 12월, 창덕궁 중희당에서 거행한 친림대정(12월에 왕이 친림하여 거행하는 관리들의 인사 행정)을 그린 병풍이다. 조선시대에는 도목정사라고 하여, 매해 6월과 12월에 정기적으로 관리들의 인사를 행했다. 특히 12월의 인사는 그 규모가 커서 대정이라고 했으며, 때에 따라 임금이 친히 거행하기도 했다. 정조는 1785년의 대정을 특별히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인 중희당에서 거행하면서 인사란 후손을 편안하게 하는 중요한 일임을 강조했다. 그림에는 중희당의 모습과 임금이 친림한 대정의 위엄있는 광경이 생생히 나타나 있다. 그림 좌우에는 정조으 뜻이 담긴 시와 이에 화답한 신하들의 시, 참석한 신하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내각은 조선시대 관청인 규장각과 의정부의 별칭이다. 규장각은 조선 오아식 역대 왕들의 글씨와 그림, 유언, 왕실의 족보 등을 관리하였고, 역사 문화에 관련된 많은 서적을 출판하였다. 의정부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 3정승이 관원을 통솔하고 중요한 사무를 총 지휘하고 감독한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관이다. 고종 32년부터 의정부의 명칭을 내각이라 고쳐 국가의 중대사는 반드시 내각의 회의를 거친 뒤 왕의 결정을 받도록 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승정원 관원들 계회를 하다.

원래 제목은 은대게첩이다. 은대란 정원.후원.대언사와 함께 모두 승정원의 별명이다. 승정원은 왕의 명령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관장하는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성격의 관청이다. 전시된 계첩은 승정원의 관원들이 연계회를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정사공신 교서, 정사공신 구굉에게 내린 교서

정사공신이란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공신의 칭호이며 이조 1년에 정하였고 모두 53명이다. 인조반정은 1623년 광해군을 내몰고 선조임금의 손자 능양군을 임금으로 세운 정치 혁명이다. 이 교서는 정사공신 1등으로 임명된 구굉에게 발급된 것이다. 그런데 처음 받은 교서가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분실되어 숙종 6년에 다시 발급받은 것이다. 이 교서에서 정사공신이지만 1623년 이후 역적으로 처단된 김자점, 심기원, 심기성, 김헌 등의 이름을 먹으로 가렸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종묘의 배향공신을 모신 공신당.
 
조선의 공신
변란을 막고 왕실의 안정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을 공신이라 하였다. 신라 때에 이미 공신을 임명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도 개국공신.벽상공신.삼한공신과 종묘의 공신당에서 제사지내는 배향공신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공신은 국가와 왕실의 안정을 도모하고 외적을 격퇴하거나 역적의 토벌에 크게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리는 훈봉공신과 종묘의 배향공신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선시대 공신은 대개 훈봉공신을 가리킨다. 훈봉공신은 공이 특히 큰 몇 사람들에게 내리는 공신과, 이 공신 외에 공을 세운 여러사람들에게 내리는 원종공신으로 각각 구분한다. 공신에게는 토지.노비.영정 등을 차등있게 내렸다. 또 공신임을 증명하는 문서로서 공신에게는 교서를, 원종공신에게는 녹권을 내렸다. 또 역대 공신의 자손들은 충훈부라는 관청에 소속되어 상호 친목을 도모하고 대대로 벼슬과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왕과 역대 공신의 자손들은 한 자리에 모여 천지의 신에게 왕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회맹제를 지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영조임금의 칠순을 맞아 본 특별 과거 시험 합격자

증광별시는 왕실과 국가의 경사 때 또는 특별한 목적 등을 위하여 실시한 특별 과거 시험이다. 방목은 과거 시험 합격자의 명단을 적은 책이다. 과거가 끝나면 방목을 만들었다. 방목에서 부모가 모두 살아 있으면 구경하, 아버지만 살아 있으면 엄시하, 어머니만 살아 있으면 자시하, 양친이 모두 죽었으면 영감하라 기록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진사 시험 합격증
조기영의 진사시험 합격증이다. 조기영은 전체 100명을 선발하는 중에 55등을 차지했다. 생원.진사 시험의 합격증은 흰 종이에 쓰기 때문에 백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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