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피맛길이 있던 청진동 600년, 서울의 재발견
서울 청진동은 조선시대 육의전을 비롯하여 국가에서 종각주변에 조성한 공식적인 상업지구였던 운종가에서 광화문 육조거리 뒷편에 위치하고 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고관대작들이 운종가 대로를 말을 타고 지나갈때 행차에 인사를 하기 싫었던 서민들이 지나다니던 골목길인 피맛길이 남아 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국가에 공물을 공급하면서 도성내 독점적인 거래를 하던 시전들 중 돗자리를 팔던 인석전, 쌀과 잡곡을 팔던 상미전과 잡곡전 등이 들어서 있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시전이 없어지면서 서민들이 주로 찾는 청진동 해장국을 비롯하여 작은 골목길 음식점들이 즐비하던 서울의 대표적인 맛집 골목길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 도심재개발사업으로 피맛골에 있었던 크고 작은 맛집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상업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조선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문화층에서 조선시대 도심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집터를 비롯하여 장대석, 기와, 도자기 등이 발견되었다.
청진동 600년, 서울의 재발견
최근 도심 한복판 청진동에서는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이 살았던 동네가 오롯이 발견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지표 아래 3m까지 근대화의 격랑속에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600년 서울 역사가 시루떡처럼 층층이 남아 있었기때문이다. 특히 종로를 따라 일렬로 늘어선 시전행랑과 피맛길, 그리고 화재와 전란으로 불탄 채 묻히 기둥, 마룻장, 문짝들과 각종 가재도구들은 옛 청진동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시기를 달리하며 겹쳐져 있는 골목길과 기둥초석들은 조선후기에도 전기와 같은 도시구조와 삶이 계속유지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발굴지역 층위 양상은 총 6개의 문화층으로 조사되었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상업지구였던 운종가(종로)를 재현한 모형. 청진동은 종로 북쪽(도로 왼쪽) 지역을 말하며 음식거리로 유명한 피맛골이 대로변 시전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 도심 재개발로 고층빌딩이 들어선 청진동 지역.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이 지역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전기부터 구한말.일제강점기까지 다양한 시대를 보여주는 유물층이 발굴되었다.
청진동 지역을 발굴하는 모습을 기록한 사진과 모형
백자항아리, 15세기말-16세기 초, 종로 청진 1지구 출토
발굴당시 사진
분청자 항아리. 분청자 접시, 조선전기, 종로 청진 1지구 출토
백자 청화모란문 접시편, 중국, 16~17세기, 종로 청진 1지구 출토
분청자편, 조선전기, 종로 청진 5지구 출토, 바갇에 '인수부', '빈','예빈' 등 관청의 명칭이 있다.
도기 항아리.백자접시, 조선전기, 종로 청진 1지구 출토
분청자 '경승부'명 접시, 분청자 '내자집용'명 접시, 조선전기, 종로 청진 1지구 출토. '경승부'라는 관청의 명칭이 있다. 경승부는 동궁의 관아인 원자부(세자부)의 처음 이름이다. '내자집(왕실에서 사용하는 물자를 담당)이라는 관청의 명칭이 있다.
백자 청화 발편, 중국, 16~17세기, 종로 청진1.5지구 출토
청기와(종로 청진1지구 출토), 장식기와편(종로 청진 5지구 출토), 조선전기,
도기 항아리.분청자 발, 조선전기, 종로 청진1지구 출토
도제벼루, 옥등잔, 조선전기, 종로 청진 5지구 출토
백자접시(종로 청진 5지구 출토),백자 저부편(종로 청진 1.5지구 출토), 조선전기
청자화분편, 조선전기, 종로 청진 5지구 출토, 조선 청자는 백자 바탕흙에 철분이 함유된 유약을 입혀 구운 백태청유자이다.
백자 장군, 조선전기, 종로 청진 5지구 출토
상업지구였던 운종가와 관청가였던 육조거리 사이를 흐르던 열천을 재개발과정에서 복원해 놓고 있다.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던 피맛거리는 재개발과정에서 사라지고 도심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피맛골 음식점들이 상가내에 일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