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토기

younghwan 2014. 2. 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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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 위례성은 백제가 기원전 18년 건국하면서 도읍을 정한 후 475년 고구려의 압박을 받아 웅진으로 천도하기까지 약 500여년 간 왕도(王都)로 역할을 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하남 위례성은 풍납토성이었을 것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받아드리고 있다. 몽촌토성은 대체로 백제가 고대국가로서 자리잡고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장악했던 4세기 근초고왕때 남한산의 의지하여 수도의 방어력을 강화하고 수도를 확장하는 목적으로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위해 조성한 올림픽공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몽촌토성은 성벽둘레 2,287m에 성벽대부분이 해자로 보호되고 있는 백제계 토성이라 할 수 있다.

 왕과 귀족들이 거주한 왕성이었던 몽촌토성에서는 목책, 건물터, 주거지 등이 발굴되었는데  금을 비롯한 귀금속으로 만든 장신구, 중국에서 수입한 각종 도자기 등이 발견되고 있다. 몽촌토성 또한 다른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발굴된 유물들은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되는 토기였다. 특히, 몽촌토성에는 많은 식량들을 저장했던 저장구덩이와 저장용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각지역에서 생산된 잉여농산물을 왕성에 저장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몽촌토성에서는 동시대 다른지역에서는 많이 볼 수 없는 세발토기와 굽이 낮은 굽다리접시가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발달된 한성지역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왕도인(王都人)의 일상(Daily life of Royal Capital People)
몽촌토성에서는 왕도인의 일상 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토기이다. 음식을 저장하고 끼니 때마다 조리하고 완성된 음식을 담아서 먹을 때 사용한 여러 토기들은 왕도에서의 식생활을 반영함과 동시에 당시의 토기생산 산업의 발달 정도를 보여준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에서는 왕도인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생산도구들도 발견되었다.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을 때 쓰는 삽날과 호미,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그물의 그물추, 실을 지을 때 쓰는 가락바퀴, 옷감을 자를 때 쓰는 가위 등이 출토되었다. 쇳물을 녹이고 다룰 때 쓰는 도가니, 쇠를 단련할 때 쓰는 집게도 출토되었는데, 이는 금속을 다루는 공방의 흔적이다. 한성은 모든 기술과 물산의 집산지인 왕도였던 만큼 왕성 안팎에는 금속 뿐 아니라 각종 수공업 관련 공방이 밀집했을 것이다. 백제의 왕도 한성이 언제나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투겁창과 물미, 수십점의 쇠화살촉과 같은 무기류를 비롯해 재갈, 편자, 말족쇄 등은 몽촌토성을 든든하게 지키던 보병과 기마병, 또는 몽촌토성을 빼앗은 군사들의 물품으로 추정된다.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무기류는 평화로운 일상 뒤에 숨은 팽팽한 긴장을 암시한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사적297호로 지정된 올림픽공원내 서울 몽촌토성 개요. 성벽둘레는 2,287m이며, 해자가 토성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토성내에는 목책, 망루, 주거지, 건물지 등 다양한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유적명: 서울 몽촌토성(사적297호)
성벽: 2,287m, 외성 270m
해자: 서북벽 및 동남벽 아래 성내천 유로를 이용
목책: 3개서(서북벽 1개소, 동벽 1개소, 치성 1개소
망루: 4개소(서북지구 표고 45m, 동북지구 표고 30m, 동남지구 35m, 서남지구 표고 53m에 위치)
주거지" 9기
돌무지 유구: 7기(동북지구 1기, 동남지구 5기, 서남지구 1기)
저장구덩이: 31기(서북지구 1기, 동북지구 13기, 동남지구 9기, 서남지구 8기)
지상건물지: 적심건물지.온돌건물지.판축대지
연못터: 2개소(서잠지구 고지대, 남문지 저지대)
무덤: 독널 5기, 적석토광묘 4기, 움무덤 2기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저장구덩이와 저장용기(Storage pits and Pottery for storage)
몽촌토성에서는 위의 입구가 좁고 아래의 바닥이 넓은 복주머니(플라스크) 모양 저장구덩이가 다수 발견되었다. 저장구덩이는 대체로 주거지 바깥에 설치하기 때문에 땅속의 구덩이 내부는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어서 각종 식품류를 저장하기에 알맞다. 몽촌토성의 저장구덩이는 서북지구 1기, 동북지구 13기, 동남지구 9기, 서남지구 8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성 내부의 고지대 및 성벽과 인접된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몽촌토성에서는 220개체 이상의 큰 독이 출토되었는데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에 이처럼 식량을 저장하기 위한 큰독이 많이 발견된다는 것은 당시 도성으로 잉여 생산물이 집중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몽촌토성에 많은 사람이 거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저장용 토기는 대체로 바닥이 둥글며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이다. 표면에 바둑판무늬, 새끼줄무늬를 두드려 새긴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타날 문양을 완전히 지우기도 하였다. 대형 저장용 토기의 경우 높이가 50cm 안팎인 것이 많으며, 높이가 94cm에 이르는 대형 토기도 있다. 몽촌토성 내 87-7호 저정구덩이에서는 7점의 큰독과 장군 1점이 출토되었다. 이들 항아리는 몸통형태에 따라 크게 공모양과 장동형으로 나눌 수 있다. 큰 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둥이가 좁은 장군은 액체를 보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짧은목항아리(Jar, 몽촌토성), 장군(Horizontal jar, 몽촌토성)


큰독(Jar, 풍납토성), 큰독(Jar, 몽촌토성)

항아리(Jar)
항아리는 음식물을 보관하거나 액체를 담는 병의 용도로 사용한 그릇이다, 입과 목부분의 형태가 다양하고 크기도 여러가지이다. 긴목항아리는 공 모양에 가까운 둥근 몸체에 긴 목과 나팔모양의 입을 특징으로 하는 항아리의 일종으로 주로 유물 포함층의 상층에서 출토되어 풍납토성 내에서도 늦은 시기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에 돌대가 부착되는 경향이 있다. 몽촌토성과 같은 생활유적 및 무덤에서 출토되는 예가 많다. 곧은입 항아리는 백제를 대표한느 토기로 전시대에 걸쳐 제작 사용되고 있다., 짧고 곧은 구연 아래에 공 모양의 원형 몸체를 가진 것으로서 어깨 부분의 문양띠와 함께 몸체 아랫부분의 두들긴 무늬가 특징이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큰입항아리(Jar, 몽촌토성), 짧은목항아리(Jar, 몽촌토성)


곧은입항아리(Jar, 몽촌토성)

부뚜막과 조리용토기(Fireplace and pottery for cooking)
백제 사람들은 부뚜막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였다. 이전 시기의 조리시설이 얕은 구덩이를 파고 한 겹의 돌을 깔거나(부석식 노지) ㄱ자형 구들이었다면, 백제 사람들은 주로 주거지 출입시설의 반대편 모퉁이 혹은 벽면 가까이에 점토와 판석을 이용해 일자로 부뚜막 시설(-자형 부뚜막)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몽촌토성에서는 85-3호 주거지, 88-2호 주거지, 88-4호 주거지 등에서 부뚜막을 사용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한성백제기의 대표적인 조리용기로는 계란모양토기, 깊은바리, 시루를 들 수 있다. 계란모양토기는 부뚜막에 고정시켜 사용한 토기로서 직접 음식물을 넣고 조리하거나 물을 담고 위에 시루를 얹어 음식물을 찔 때 사용하였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깊은 바리는 많은 양의 음식을 조리하기가 불가능하므로 한번 조리한 음식을 데우거나 적은 음식을 조리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아궁이틀(Frame of Fireplace, 몽촌토성),


아궁이틀(Frame of fireplace, 풍납토성)


계란모양토기(Egg-shapre pottery, 몽촌토성), 네귀달린항아리(Jar with four lugs, 몽촌토성)


깊은바리(Deep bowl, 몽촌토성)


시루(Steamer, 몽촌토성)

세발토기와 굽다리접시(Pottery with three legs and mounted dish)
세발토기는 접시모양의 몸체에 세 개의 다리가 부착된 백제의 특징적인 기종이다. 그 형태에 따라 접시형과 반형으로 나뉜다. 세발토기의 기원은 서진대의 청동반과 같은 금속기를 번안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굽다리접시는 접시 모양의 몸체에 굽다리를 붙인 형태이며, 굽의 높이는 2~5cm로 신라.가야의 굽다리접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런 차이는 백제가 이른 시기부터 반상문화가 발달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발토기, 굽다리접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개 몸통의 깊이가 얕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굽다리접시나 세발토기와 같은 배식용 토기에는 뚜껑을 덮을 수 있도록 뚜껑받이 턱을 만들어 높기도 하였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세발토기(Pottery with three legs, 몽촌토성)


뚜껑(Lid, 몽촌토성)


굽다리접시(Mounted dish, 몽촌토성)

배식용토기(Pottery for food distribution)
배식용토기는 밥이나 국, 반찬 등을 담는 식사용기이다. 주로 크기가 작은 것들이 많은데, 백제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작은 토기가 발견되었다.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배식용 토기로는 세발토기, 굽다리접시, 사발, 바리, 접시, 뚜껑접시 등이 있다. 배식용 토기 중에는 표면을 잘 문질러 놓거나 장식한 경우가 있으며, 일부에서는 검은간토기도 발견되기 때문에 당시 칠기나 목기로 된 배식용기도 많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병은 액체를 담는 토기로 항아리보다 목이 좁은 형태이다. 잘록한 목 부분에 끈을 묶어 우물물을 긷는 두레박으로 쓰기도 했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손잡이잔(Cup with handle, 몽촌토성), 굽다리손잡이잔(Mounted Cup, 몽촌토성)


귀달린접시(Dish with lugs, 풍납토성)


병(Bottle, 몽촌토성)


뚜껑접시(Flat Cup, 몽촌토성), 사발(bowl, 몽촌토성), 작은단지(Small Jar, 몽촌토성),


큰입단지(Jar, 몽촌토성), 큰입단지(Jar, 몽촌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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