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무기와 철제 도구
백제는 압록강 중류지방 졸본부여에서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세력이 온조와 비류를 중심으로 출발하여 한강유역에 정착하여 토착화된 세력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이들은 북방계 철기문화를 지닌 부여.고구려계통의 유민집단으로 청동기시대 이래로 성읍국가를 형성하면서 살던 원주민에 해당하는 마한인들보다는 뛰어난 철기기술과 말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때문에 빠른 시일내에 지역내 유력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점차로 그 영역을 확대하여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장악하여 고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런 철기기술과 기마전력을 바탕으로 고대국가로 발돋움한 백제는 근초고왕대에는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고, 가야를 공략하는 등 한반도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한성백제기 왕성이었던 한강유역과 경기도 일대에서 당시의 무기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고구려 계통에서 볼 수 있는 고리자루칼을 비롯하여 판금갑옷, 등자를 비롯한 각종 말갖춤들이 있다. 백제의 무기류는 대체로 가야고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큰 차이는 없어보이며, 전성기 이후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 북조, 유목민들과의 투쟁을 통해 그 전력이 급상승한 고구려의 압력으로 한강유역 이남으로 밀려났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전쟁과 무기
삼국시대에는 전쟁이 빈번하였다. 백제는 전쟁 승리와 사회체제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각종 무기를 개발.보급하였으며, 철자원 확보, 군사동원체계 확립 등에 관심이 깊었다. 백제의 무기는 공격용과 방어용으로 나뉜다. 공격용무기는 다시 근거리무기와 원거리무기로 분류하는데, 근거리무기는 둥근고리 큰칼, 창, 낫, 도끼 등이 있고, 원거리무기는 활.화살 등이 있다. 둥근고리 큰칼은 고리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길이는 80cm 이상에서 80cm이하로 바뀌어 점차 장식이 추가된다. 창은 나무자루와 연결되는 부분이 직선모양에서 제비꼬리모양으로 바뀐다. 화살촉은 슴베가 없는 삼각형모양의 화살촉에서 점차 슴베가 길어지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방어용 무기는 갑옷, 투구, 방패 등이 있다. 갑옷은 큰 철판을 이어붙여 만든 판갑옷과 작은 철판.나무.뼈조각을 가공해 가죽으로 엮은 비늘갑옷이 있다. 판갑옷은 보병, 비늘갑옷은 기병이 주로 사용하였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칠지도(일본 이소노카미진구, 복제), 일본 덴리시 소노타미 신궁에 전해오는 칼로 백제가 일본에 전해주었다고 한다. 무기라기보다는 청동기시대 이래로 많이 만들어졌던 의기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철, 강한 나라를 만들다.
백제는 우수한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철기를 만들었다. 특히 수준 높은 상감기술을 이용해 칠지도를 만들어 왜왕에게 주었으며, 고리자루칼 등 각종 장신구 등도 만들었다. 삽.괭이.낫을 비롯한 철제 농기구는 농업생산력을 증대시켜 국가체제 안정에 도움이 디었으며, 칼.화살촉.창 등의 철제무기는 다를 나라와 전쟁할 때 쓸모가 있었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고리자루큰칼(백제 4~5세기, 천안 용원리, 복제), 고리자루큰칼(백제, 안성 도기동), 고리자루큰칼(백제 4~5세기, 용인 마북동)
고리자루큰칼(백제, 천안 용원리, 복제), 쇠칼(백제, 김포 양촌리, 복제)
쇠창(백제, 가평 달전리, 복제)
쇠칼(백제, 가평 대성리), 큰칼(백제, 군포 부곡동), 고리자루큰칼(백제, 군포 부곡동)
화살통꾸미개(백제 4~5세기, 복제)
판갑(백제, 안성 망이산성, 복제)
쇠칼(백제, 안성 도이동), 물미(백제, 군포 부곡동),
불미(1.군포 부곡동)
쇠투겁창(1,2,3.김포 양촌읍, 4.서울 우면동, 5.안성 도기동, 6.하남 덕풍동)
쇠화살촉(백제, 군포 부곡동), 쇠화살촉(백제, 김포 양촌읍)
쇠화살촉(백제, 가평 대성리), 쇠화살촉(백제, 하남 미사리), 쇠화살촉(백제, 용인)
백제의 철제 농공구
농기구는 밭을 갈거나 일구고 제초.수확할 때 쓰인다. 백제 사람들은 밭을 갈거나 일굴 때 주조괭이, 쇠도끼, 따비, U자형삽날, 쇠스랑, 살포 등을 사용하고, 제초.수확할 때에는 호미, 낫 등을 사용하였다. 쇠스랑은 출토량이 많지 않으나 주요한 농기구의 하나이다. 살포는 논둑의 물고를 트거나 막는데 사용하였는데, 큰 칼과 함께 지방 수장층의 무덤에 출토되는 예가 많다. 신라에서는 살포가 주로 실용적인 농기구로서 무덤에 부장되었으나 백제에서는 의례와 관련되어 지방 수장층의 권위를 나타냈다. 지금까지 서울 및 경기지역에서는 하남 미사리, 의정부 민락동, 화성 석우리 먹실 등지에서 백제의 밭유적이 확인되었다. 공구는 손칼, 쇠끌, 집게, 가위, 망치 등이 있다. 손칼은 나무손질 뿐 아니라 목간의 글씨를 지울 때에도 쓰였다. 다양한 공구의 사용은 기술을 동반한 수공업의 발달을 의미한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쇠끌(1. 가평 대성리, 2.화성 발안리, 3.가평대성리, 4.서울 풍납토성, 5,6.군포 부곡동)
쇠못(화성 발안리), 낚시바늘(가평 대성리), 큰 바늘(서울 풍납토성), 쇠못(가평 대성리), 고리달린 송콧(가평 대성리)
쇠손칼(1.군포 부곡동, 2.용인 두창리, 3. 서울 풍납토성, 4.가평 대성리, 5.김포 양촌읍, 6.화성발안리, 7.군포 부곡동, 8.용인 두창리)
쇠낫(1.하남 덕풍동, 2.서울 우면동, 3,4.군포 부곡동, 5.김포 양촌읍, 6.서울 풍납토성
쇠삽날(백제 3~4세기, 서울 풍납토성), 쇠삽날(백제, 가평 대성리)
살포(4~5세기, 공주 순촌리)
쇠도끼(1.군포 부곡동, 2.서울 풍납토성, 3.김포 양촌읍, 4.용인 두창리, 5.김포 부곡동, 6서울 풍납토성, 7~8.가평 대성리, 9~10.서울 우면동
백제의 말갖춤
발걸이(백제 5세기, 공주 수촌리, 복제), 발걸이(백제 4~5세기, 천안 용원리, 복제),
안장(백제 4~5세기, 천안 용원리, 복제)
말띠꾸미개(백제, 화성 사창리)
족쇄(백제 4~5세기, 서울 몽촌토성, 복제)
편자(백제 4~5세기, 서울 몽촌토성, 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