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효창공원(사적330호), 백범 김구선생과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는 도심공원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선생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해방이후 귀국하면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묘역을 이곳에 마련하고, 이후 임정요인 중 이동녕.차이석.조성환 선생의 묘역도 조성되었다. 이후 백범 김구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가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곳에 그의 묘역이 마련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 묘역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 이후 독립운동가의 묘역은 더 이상 조성되지 않았고, 현재는 안중근 의사를 위한 가묘가 삼의사 묘역에 마련되어 있다. 효창공원은 도심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찾는 곳으로 독립운동가 묘역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묘역의 격이 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시민들과 가까운곳에서 애국지사들이 함께 할 수 있으며, 그들의 삶은 되돌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곳으로 사적 330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곳은 정조의 맏아들로 5살때 요절한 문효세자의 무덤이 효창원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는 문효세자의 어머니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 숙의 박씨의 자녀인 영온공주의 무덤이 있었던 곳으로 정조의 후손들이 주로 묻혔던 장소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능역 중에서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변에서 숲이 우거졌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문효세자를 비롯한 왕실 인사의 무덤들은 고양 서삼릉으로 옮겨지면서 1940년대에 효창공원으로 바뀌었다. 원래 효창원이 있었던 면적은 많이 축소되었으며, 능역이었던 곳에 효창운동장, 숙명여대 등이 들어섰다.
효창공원, 사적 330호, 1940년, 서울 용산구 효창동
이곳은 조선후기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처음에는 효창묘라 하였다. 그 후에도 왕가의 묘를 몇 기 더 모셨고 1870년(고종7)에는 효창원으로 승격되었다. 본래 효창원은 청파동과 효창동 일대의 수림이 울창한 지역에 있었다. 그런데 일본 군대가 불법으로 주둔하면서부터 이곳을 훼손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일제 말기(1945년3월) 묘들을 서삼릉으로 강제로 옮기고 이곳을 효창공원으로 만들었다. 광복 후 김구 선생이 이봉장, 윤봉길, 백정기 등 삼의사의 유해를 옮겨 이곳에 모셨고, 1948년에는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의 유해를 이곳에 모셨다. 1949년에는 김구 선생의 유해도 이곳에 모셨다. 삼의사 묘역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나란히 모셨다. 삼의사 묘역 앞에는 1990년 순국선열 7위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를 건립하고, 이곳에서 매년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13일 합동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출처:서울시청>
효창공원 출입문인 창렬문(彰烈門). 도심공원 출입문이지만 백범 김구선생을 비롯한 독림운동가 묘역이 있는 점을 고려하여 사당 외삼문의 형식을 하고 있다.
창렬문을 들어서면 왼쪽편 언덕에 이봉창.윤봉길.백창기 의사를 모신 묘역인 삼의사의 묘역과 백범 김구선생 묘역이 있고, 오른편 언덕에 임정요인인 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독립운동가 묘역을 공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은 동양적인 의미에서 격이 낮아 보이기는 하지만, 공원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은 생활속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삼의사의 묘역 앞에 세워져 있는 기념조형물
삼의사의 묘,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이다. 묘역은 백범 김구선생이 주서하여 마련한 곳으로 많은 시민들이 가까이서 그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로 공원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1946년 김구 선생이 해방후 귀국하여 이들을 위한 묘역을 이곳에 마련하여 안장하였다. 삼의사묘 한쪽에는 안중근의사 유해를 찾으면 안장할 가묘가 마련되어 있다.
백범 묘역으로 가는 산책로
효창공원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백범 묘역
소박한 분위기를 하고 있는 백범 묘역
의열사
이곳은 애국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과 임정 주석 김구 선생,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선생의 삼의사 등 7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년 4월13일 합동추모제전을 봉행하고, 해마다 연례적으로 제전을 봉행해 오고 있다. <출처:서울시청>
백범 묘역 아래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과 임정 주석 김구 선생,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선생의 삼의사 등 7인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 의열사가 있다.
의열사는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대에 건립하였다.
의열사 바깥에는 백범 김구선생을 기념하는 백범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그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각종 자료들과 컨벤션센터로 이루어져 있다.
기념관 내부에 있는 백범 김구선생 조각상
기념관 전시실 내부
백범기념관 아래에는 1960년대에 지은 효창운동장이 있다.
효창운동장 내부
이봉창의사 동상
이봉창(1901~1932) 의사는 1932년 일본 천황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다. 의사는 서울 용산 문창보통학교 졸업 후 용산역 전철수로 일하다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에 저항하여 사직하고 일본에 건너가 노동에 종사하였다.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선생과 함께 일본 천황 폭살계획을 세워 1932년 1월8일 도쿄 요요키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 천황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해 9월 의사는 일본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당시 중국 신문인 국민일보에서 의사의 애국적 기개를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봉창의사 기념사업회와 동상건립위원회는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해 1995년 10월 이 동상을 세웠다. <출처:백범기념관>
이봉창 의사 동상.
백범묘역에서 언덕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원래 효창원은 조선왕실 능역으로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울창한 숲이었으며, 지금도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도심에서는 비교적 숲이 울창한 편이다.
언덕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활동하다 죽은 사람들을 위한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북한반공투사위령탑
효창공원은 위락시설은 거의 없고 조용히 숲속을 산책하기 좋은 도심공원이다.
효창공원내 휴식공간
휴식공원내 최근에 설치한 운동기구들. 흔한 도심공원의 풍경이다.
효창공원 내 산책로와 숲
효창공원 동쪽 언덕에 세워져 있는 원효대사 동상
원효대사 동상 아래로는 청소년들을 위한 농구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효창공원 동쪽도 원래 효창원 능역이었는데, 조선왕실의 후원으로 설립된 숙명여대가 자리잡고 있다.
농구장과 같인 있는 작은 배드민턴 경기장
효창공원 동쪽 언덕에 있는 임정요인 묘역 주변 산책로
임정요인의 묘역
임정요인 묘역에는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임정요인 묘역이 있는 효창공원 동쪽편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