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불교 천태종(天台宗)
천태종(天台宗)은 <법화경(法華經)>을 소의경전하는 불교 종파로 남북조시대 처음 연구되었으며 수나라 때(594년) 지의(智顗, 538~597)이 처음 열었다. 수.당시기 생겨난 불교 종단 중 화엄종과 함께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 교학을 대표하는 종단이다. 일본에서는 사이초(最澄, 767~ 822년)에 의해 802년 전래되어 일본 불교를 이끌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은 시기인 고려 숙종 때(1097년)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 ~ 1101년)이 중국에서 천태학을 배운 후 귀국하여 해동 천태종을 열었다. 해동 천태종은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 불교였던 중국과는 달리 실천적 면을 강조한 선종에 가까운 불교로 발전하였다. 고려왕실을 후원을 받아 크게 번성하였으나 조선이 건국하면서 억압을 받아 선종으로 폐합되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옮겨 쓴 것으로 법화경 7권 중 마지막권이다. 고려 공민왕때 안동권씨 일가가 기전에 있던 법화경을 구해 봉정사에 시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 천태종은 고려시대 의천이 중국 유학 후 돌아온 개성 국청사(國淸寺) 주지가 되면서 처음 열었다. 이후 선종에 속했던 많은 승려들이 의천의 제자가 되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천태종 관련 사찰로는 개경 국청사를 비롯하여 고려초 천태학승 원공국사 지종(智宗)이 머물렀던 원주 거돈사((居頓寺)를 비롯하여 의천이 크게 중건했던 순천 선암사(仙巖寺), 칠곡 송림사(松林寺), 고려중기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요세(了世, 1163 ~ 1245년)가 머물련던 강진 백련사(白蓮社) 등이 있다.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선암사(사적 507호)는 통일신라 때 풍수지리설로 잘 알려진 도선(道詵)이 실질적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중기 의천이 머물면서 크게 중창하여 해동 천태종을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도선 진영(보물 1506호)와 의천 진영(보물1044호)가 전해오고 있다.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으며 이후 여러차례 중건되었다가 한국전쟁에 많은 건물이 불타고 현재는 20여동의 건물만 남아 있다. 고려시대 선종 중심사찰인 송광사와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고 있으며 현대 불교에서도 태고종 중심 사찰 역할을 하고 있다.
선암사는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이 자리잡았던 사찰답게 조계산 동쪽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계곡을 걸어가면 조선후기에 세워졌던 여러 아치형 돌다리 중에서도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승선교(보물 400호)와 그 앞쪽은 약간 작은 돌다리와 작은 정자인 강선루 등을 볼 수 있다. 선암사 입구에는 삼인당이라는 큰 연못이 있으며 대웅전이 있는 중심영역 바로 앞에 일주문이 세워져 있다.
선암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산지사찰의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주불전 앞에는 2기의 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불법을 강론하거나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인 강당이 앞쪽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을 문루 형태로 만들지 않고 낮게 만들어 중심영역 공간이 막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
대웅전 뒷편에는 팔상전, 조사당, 불조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그 뒷편에는 원통전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불전들을 둘러싼 담장이 만든 골목처럼 형성된 공간에는 선암매라 불리는 오래된 매화나무(천연기념물 488호)들이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선암사 사찰 뒷편 언덕에는 비교적 넓은 차밭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주위 동승탑(보물 1184호)와 북승탑(보물 1185호)가 세워져 있다. 선암사에서 300 m 정도 떨어진 대각암은 의천이 이곳에서 크게 깨달았다고 하여 대각암이라 한다.
원주 거돈사(居頓寺)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절터인 거돈사지(사적 168호)이다. 절터에서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과 탑비(보물 78호), 그리고 삼층석탑(보물 750호)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 원공국사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거돈사는 고려초 법안종 사찰이었지만 고려중기 천태종이 유행하면서 천태종 사찰이 되었다.
지종(智宗, 930~1018년)은 고려초에 활동한 승려이다. 고려 광종의 후원을 받아 중국 오월국(吳越國)에 유학하였다. 중국 천태종 중심사찰 국청사(國淸寺)에 머물면서 천태학을 배웠으며 <법화경>을 강의하여 명승을 떨친 고려초 대표적인 천태학승이다. 그의 행적과 업적을 새겨놓은 탑비가 원주 거돈사 에 남아 있는데, 최충이 지은 탑비 내용에 따르면 승탑과 탑비는 고려 현종 16년(1025)에 세워졌다고 한다.
절터는 중문, 탑, 강당, 승방, 회랑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통일신라 평지사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일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승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건물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곳에는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음을 알 수 있다.
칠곡 송림사(松林寺)
칠곡 송림사(松林寺)는 삼국시대 544년(진흥왕 5)에 승려 명관이 중국 진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이후 1092년 대각국사가 크게 중창한 것으로 볼 때 천태종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1858년에 크게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주에서 상주, 안동을 거쳐 한강유역으로 연결되는 중요 교통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벽돌로 쌓은 전탑이 세워져 있는 많지 않은 사찰 중 하나이다.
강진 백련사(白蓮社)
백련사는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만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통일신라 때 처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중기 원묘국사가 크게 중창하였다. 고려중기 불교개혁운동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사찰로 수신결사를 이끌었던 지눌의 송광사와 함께 불교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찰이다. 고려중기 이후 8명의 국사를 배출하였으나 고려말 왜구의 피해를 입어 거의 폐사되었으며 세종 때 효령대군의 후원을 받아 다시 중건되었다.
백련사 사적비(보물 1396호)는 고려중기에 조성된 원묘국사비를 받치고 있던 거북받침돌 위에 조선후기 지역 유력자들이 백련사를 중건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을 올려 놓았다. 원묘국사 요세는 고려중기 천태종을 중흥시켰며 불교개혁 운동인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이끌었다. 백련결사는 지방토호층과 민중들의 지지로 시작되었으며 무신집권기 최우를 비롯한 집권세력의 후원을 받았다.
단양 구인사(救仁寺)
단양 구인사(救仁寺)는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1945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현재의 사찰은 1966년에 현대식 콘크리이트로 지어진 건물이다. 전통사찰과는 달리 5층 높이이 대법당을 중심으로 콘크리이트로 지은 거대한 건물들이 소백산 계곡속에 들어서 있다.
대한불교천태종은 불교 27개 종단 중 하나로 1967년에 이곳 구인사에서 창종되었다. 고려시대 천태종을 창건한 대각국사를 종조(宗祖)로 삼고,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삼는다고 한다. 전통불교인 조계종이나 태고종과는 달리 신흥종교 중 하나로 전국에 200여개소의 사찰이 있으며, 신도수로 170여만명에 이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