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삼층석탑, 빼어난 조형미를 보여주는 한국 석탑의 전형
삼국시대 백제는 목탑을 모방하여 석재를 가공하여 조립하는 짜맞추는 형식을 발전시켰으며, 신라는 중국 전탑을 모방한 모전석탑을 발전시켰다. 삼국 통일 후 신라는 두가지 양식을 절충하고 종합하면서 새로운 석탑 양식을 만들었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석탑을 대표하는 양식으로 이전 석탑에 외형을 간략화하면서 석탑의 구성 자재가 수가 크게 줄어들고 전체적인 비례나 조형미가 뛰어나다.
통일신라 삼층석탑은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고선사지 삼층석탑과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거쳐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그 형식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통일신라 삼층석탑은 대부분 불국사 삼층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후대의 삼층석탑은 외형적인 크기가 점차 작아지면서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후대에는 기단부가 단층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국보)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은 사천왕사 목탑과 함께 처음으로 2개의 탑을 세운 쌍탑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높이 13.4m로 현존하는 삼층석탑 중 가장 큰 규모로 상당히 크고 웅장하여 ‘두개의 탑’이란 의미가 저절로 느껴진다. 이 석탑은 목탑을 간략하게 구성한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의 시초가 되는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백제의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마찬가지로 목탑의 형태를 모방해서 간략하게 구현하였다. 후대의 석탑과는 달리 여러개의 석재를 조립해서 만들었다. 전체적이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 또한 우수한 편이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같은 돌로 다듬어 12매의 석재로 구성되었으며 그 위의 갑석도 12매로 구성되어 있다. 상층기단은 12매의 갑석과 8매의 갑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둥은 석재를 조각하여 그 형태를 보여주는 후대의 석탑과는 달리 별도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4~8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3층 몸돌만 하나의 석재로 되어 있다. 지붕돌은 낙수면부와 받침돌이 별개으로 돌로 각각 4매식 구성되어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한 목조건축의 특징이 잘 남아 있어 목탑을 모방한 초기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륜부에는 쇠로 만든 찰주가 남아 있다.
3층 몸돌에서 사리엄장구가 발견되었다.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가로 활동한 양지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천왕상이 있는 외함,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기와 수정사리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은 고선사 절터에 있던 석탑이다. 절터에서 원효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서당화상비가 발견되어 원효대사가 입적한 686년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10.2m의 상당히 큰 규모의 석탑으로 1층 몸돌에 문을 새겨 놓은 것 외에는 규모나 형태가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거의 비슷하다.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놓은 전형적인 삼층석탑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은 여러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3층 몸돌을 제외하고는 탑신 몸돌도 여러개의 돌을 짜 맞추어서 만들었다. 3층 몸돌은 사리함을 넣어둘 목적으로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완성한 불국사 삼층석탑으로 옮겨가는 양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석탑이다.
기단부는 아래단은 낮고, 윗단은 약간 높게 쌓았다. 하층기단 각면에는 기둥을 3개, 상층에는 2개씩 배치되어 있어 목탑의 형태를 모방하여 초기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0m가 넘는 거대한 석탑을 받치고 있지만, 안정감을 주고 있다.
탑신부는 3층 몸돌을 제외하고는 기단부와 마찬가지로 여러개의 돌로 짜 맞추었다. 탑신부 1층은 면석과 기둥이 별도의 석재로 구성되어있으며 2층의 4개이 석재를 조립하였으며 3층은 1개이 돌에 기둥을 조각해 놓았다. 각층 지붕돌을 8개의 석재를 조립하여 만들어 초기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탑신 1층 몸돌 각면에는 문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감실이 있는 목탑의 형태를 모방한 것이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에는 없는 부분이다. 감실이 있는 의성 탑리리오층석탑과 비교되는 부분으로 감실을 새겨 넣은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은 높이 7.3m로 이층으로 쌓은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렸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돌 밑면에 5단의 받침을 새겨놓고 있다.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이나 고선사지 삼층석탑에 비해서 그 규모가 작아지고, 형태도 단순해졌다. 전체적인 조형미나 조각수법 등의 우수하며,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가는 전환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금동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사리함 뚜껑에는 탑이 건립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들의 성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기단부는 1층은 낮고 2층은 높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기단부 2층 각면에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있는데 이전 석탑에 비해 기둥이 3개에서 2개로 줄어 들었다.
탑신부는 이전 석탑과는 달리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지붕돌 아래에는 5단의 받침을 새겨놓았으며 네귀퉁이를 살짝 들어올려 날렵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함 뚜껑에는 성덕왕이 부왕인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상 2구를 비롯하여 사리 등을 넣었다는 조성내력을기록해 두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
불국사 삼층석탑이 조성된 8세기 이후에는 기단의 기둥수가 줄어들고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이 하나의 석재로 만들어지며 그 높이도 줄어들면서 점차 정형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후 석탑의 양식은 지방으로 점차 지방으로 전파되면서 왕실과 귀족세력과 연결된 지방 사찰에도 삼층석탑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전성기를 대표하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는 김천 갈항리 동.서삼층석탑(국보),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국보) 등이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불국사 삼층석탑(국보)은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탑이라 하여 석가탑이라 불리었으며, 아사달의 슬픈 전설이 담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무영탑으로도 불린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완성한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올려 놓고 있다. 각부분의 체감비율은 간결하면서도 조형적인 미(美)가 뛰어나다. 기단부와 몸돌 각면에는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다른 조각이나 장식은 두고 있지 않다.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평이한 형태로 보이지만 높이 10.4m의 웅장한 석탑이다. 다보탑과 마찬가지로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당시인 8세기 중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단부는 자연석 위에 기단부를 올려놓았는데,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아랫단은 낮게 윗단은 높게 하여 안정된 느낌을 준다. 목조건축을 본 떠서 모서리와 각 면에 4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만들었는데 몸돌 모서리에 새겨놓은 기둥모양 외 별다른 조각상을 새겨 놓지 않았다. 지붕돌은 목탑의 처마를 본 떠서 구현했는데 모서리들를 치켜올려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상륜부 장식은 남아 있지 않아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 상륜부를 본떠서 새로 만들었다. 아랫 부분인 노반.복발.앙화는 원래 있던 것이다.
기단 주위에는 있는 연꽃 모양의 주출돌처럼 생긴 돌이 박혀 있는데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라고 한다.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신성한 영역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김천 갈항사지 동.서삼층석탑(국보)
김천 갈항사지 동.서삼층석탑(국보)은 경북 김천시 남면 금오산 서쪽에 위치한 갈항사절터에 세워져 있던 2개의 탑이다. 두개의 탑 모두 2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고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동탑은 높이 4.3m이고 서탑은 4m이다. 기단부는 모서리와 각 면에는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장식이 없고 정형화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석탑 각 부분의 비례와 세부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기단부 아랫층은 낮고, 위층은 높게 하여 탑신을 안정적으로 받치고 있다. 모서리와 각면에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다.
탑신은 1층 몸돌을 높게 만들고 있으며,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동탑 기단부에 통일신라 때(758년)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글로 새겨져 있는데 이두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탑에 모셔졌던 사리병과 법어 불경이 발견되었다.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국보)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국보)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이다. 높이 5.75m의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쌓아 올렸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장식한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탑을 이루는 각 부분의 비례가 적절하며 세부적인 조각수법도 뛰어난 걸작이다. 석탑 제작 기술이 최고조에 달했던 8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과 비교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경주 천군동 동.서삼층석탑(보물)
경주시 천군동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이다. 동탑은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서탑에는 머리돌 장식이 일부 남아 있다. 서탑은 높이가 7.7 m의 상당히 큰 규모의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기단부와 탑신 몸돌에 특별한 장식이 없다. 전체적인 비례와 웅장함에 있어서 전성기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보물)
경주시 건천읍 용명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 삼층석탑(보물)이다. 높이 5.6 m의 이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았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겨놓은 것 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이 구성이나 비례와 조각수법 등이 양호한 편이다. 지붕돌 받침은 5단으로 전성기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8세기 이후 통일신라 삼층석탑
8세기 이후 통일신라 삼층석탑은 세부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전체적으로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지붕돌의 받침이 5단이었던 것이 3, 4단으로 줄어 들거나 기단부 면석 기둥의 갯수가 줄어드는 등 세부적으로 간략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국보), 부석사삼층석탑(보물) 등이 이런 형태를 갖는 대표적인 석탑이다.
장흥 보림사 남.북삼층석탑(국보)
보림사 삼층석탑(국보)은 전남 장흥군 보림사 경내에 있는 2기의 삼층석탑이다. 탑은 대적광전 앞 마당에 석등과 함께 남북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남탑이 5.4m, 북탑이 5.9m로 크지 않은 규모이다. 2개의 탑은 구조와 크기가 똑같은 쌍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불국사 삼층석탑 이후 정형화된 통일신라 석탑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석탑들이다. 2층기단 면석이 기둥이 3개로 줄어 들었다. 탑신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지붕돌 밑변 받침은 5단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붕돌은 심하게 들려있다. 특히, 머리장식이 손상되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어 통일신라 석탑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층 기단을 아주 낮게 만들었으며, 위층 기단의 윗부분 받침돌을 얇게 만들었다. 모서리와 옆면에 기둥모양을 새겨두고 있다. 2층 기단에 새긴 기중이 4개에서 3개로 줄어들었다.
탑신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지붕돌은 모서리를 극단적으로 치켜올려 날렵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붕돌 아래 받침을 5단으로 하는 등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정형화된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상륜부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 있어 통일신라 석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보물)
부석사 삼층석탑(보물)은 주불전인 무량수전 동쪽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쌓아올린 높이 5.26 m의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드는 등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아래층 기단의 너비가 매우 넓고, 1층 몸돌 또한 높이에 비해 너비가 넓어서 장중해 보인다.
9세기 이후 후대에 들어서면 왕실의 약화와 지방세력의 할거 등으로 규모가 작아지고 정형화된 경향을 보이게 된다. 기단부를 구성하는 석재가 줄어들고 각면에 새겨진 기둥도 약화되며 지붕돌 받침의 층수도 줄어드는 등 세부적인 구성이 생략되거나 간략화된 모습을 보인다.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보물), 합천 월광사지 삼층석탑(보물),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이 이 시기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보물)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보물)은 2개의 탑이 배치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탑은 2층으로 된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탑의 구성이 불국사 삼층석탑과 거의 비슷하며, 2개의 탑 모두 상륜부 장식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다. 1층 기단에 새겨진 기둥이 3개로 줄어들었으며 지붕돌 받침도 5단에서 4단으로 줄어들었다.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주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석탑 중 하나이다.
기단부는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기단부 몸돌에는 기둥 모양 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1층 기단부 기둥장식이 4개에서 3개로 줄어들었다.
탑신은 기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었다.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으며, 지붕돌은 평평하게 만들었다. 지붕돌 받침이 5단에서 4단으로 줄어들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 두줄의 띠와 꽃무늬가 장식된 복발(覆鉢), 연꽃잎이 장식이 있는 앙화(仰花), 꽃모양 장식이 있는 보륜(寶輪)과 보개(寶蓋)가 제대로 남아 있다. 통일신라 석탑 상륜부를 설명할 때 기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합천 월광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경남 합천군 월광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높이 5.5 m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2기의 탑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약간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어 조성연대가 다를 것으로 추청되고 있다. 몸돌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약간 크다는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인 조형미나 세부 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이다.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경북 성주군 법수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높이 6 m로 비교적 큰 규모로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그 수가 3개로 줄어들었다. 통일신라 삼층석탑에 비해 1층 기단이 높게 만들었다. 해인사 부근 월광사지 삼층석탑과 비슷한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약간 불안정하게 보이며 전체적인 조형미는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부 각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기동모양을 새겨놓았다. 꼭대기 머리장식으로 노반(머리장식받침), 복발(그릇을 엎어놓은 모양의 장식), 보주(연꽃봉우리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있다. 실상사 동.서삼층석탑(보물)과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 남사리 삼층석탑(보물)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이다.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있으며 지붕돌은 밑면 받침 수가 4단으로 추녀 끝이 살짝 들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이나, 탑신은 형식적인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보물)
경북 안동시 주택가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높이5.79 m의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위층 기단은 경사를 두어 지붕돌같은 느낌을 준다. 1층 몸돌에는 얕게 문짝을 새겨 감실을 표현하고 있다. 탑신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지붕돌을 넓게 만들어 안정된 느낌을 준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경북 청도군 장연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2층 기단위에 삼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기단과 탑신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둔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은 없다. 전체적인 조형미나 세부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으로 높이 4,8 m 정도 높지 않은 편으로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 받침이 4단되어 있어 9세기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보물)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지(사적)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높이 3.8 m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탑신 몸돌에도 기둥모양을 새겼다.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편이나 전체적인 비례는 양호한 편이다. 석탑 규모가 작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말 9세기에 조성되었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령 성주사지 중앙삼층석탑(보물)
충남 보령시 성주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중앙 삼층석탑(보물)이다. 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위에 탑신 몸돌을 받치기 위한 괴임돌을 두고 있다. 탑신 1층 몸돌에는 감실 문짝이 새겨져 있는데 그 안에는 자물쇠와 짐승얼굴 모양의 문고리, 못머리 모양을 새겨 놓았다. 전제적인 비율이 적절하며, 날렵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잘 만들어진 석탑이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표현이나 조각 수법 등 등 정형화된 모습을 보인다.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9세기 통일신라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변형된 석탑의 형태로는 2층이었던 기단이 단층으로 간략화되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려 놓는 형태를 볼 수 있는 이는 목조건축물을 모방한 측면도 있다. 이런 석탑들은 여러개의 석재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기단부을 구성하고 있다. 반면에 자연암반위에 기단을 올려놓은 것도 있다.
문경 도천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김천 직지사 경내 세워져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으로 문경시 도천사 옛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1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9세기 이후 통일신라 삼층석탑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을 받치는 넓직한 바닥돌이 기단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기단과 탑신 1층 몸돌을 높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가 우수하며 조각수법 또한 양호한 편이다.
(전) 구미 강락사지 삼층석탑(보물)
경북 김천시 직지사 경내에 있는 강락사지 삼층석탑(보물은 구미시 선산읍 낙동강변 강락사 절터에 남아 있던 것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다. 1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단과 탑신에 기둥장식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1층 기단을 사용했지만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가 경쾌하고 조각수법 또한 뛰어난 편이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경남 밀양시 표충사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단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높이 7.7 m의 삼층석탑이다. 기단 모서리와 옆면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은 1층 몸돌을 상당히 높게 만들어 안정감보다는 상승감을 강조하고 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겨놓았다. 꼭대기에는 쇠막대기가 세워져 있으며 머리장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와 세부 조각수법이 양호한 편이다.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 (보물)
상주 화달리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 (보물)은 후삼국시대 사벌국 왕릉으로 전해지는 곳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아래층 기단을 생략한 단층기단으로 통일신라 후기 지역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을 크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불균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붕돌 네모퉁이를 높게 치켜 올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경주 남산 용장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자연암석을 1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2층기단과 탑신을 올려놓고 있는 특이한 삼층석탑이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정형화된 삼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위의 자연환경이나 경치와 함께 아름다운 조형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창녕 술정리 서삼층석탑(보물)
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절터에 남아 있는 서삼층석탑(보물)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높이 5.1m 의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부는 각각 8개의 돌을 짜맞추어 구성하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모서리와 옆면에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위층기단에는 기둥모양없이 안상을 크게 새겨 놓았다. 남쪽면에 있는 문짝모양은 후대에 새긴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1개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귀퉁이를 치켜 올려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꼭대기에 머리장식 일부가 남아 있다.
양산 통도사 삼층석탑(보물)
경남 양산시 통도사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높이 3.9 m의 작은 규모의 석탑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조각해 놓았으며,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3층으로 된 탑신은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 특별한 장식을 두고 있지 않다. 석탑의 양식적인 특징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인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부산 범어사(梵魚寺)에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탑은 이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쌓아 올렸다. 기단에는 기둥모양은 생략하고 간략하게 안상만 새겨 놓고 있다. 탑신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제작수법이 간단하면서 정형화된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초기의 석탑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