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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45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옛 종친부 자리

서울에서 도심 골목길 여행지로 부각되고 있는 북촌의 랜드마크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이곳은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앞에 자리잡고 있던 국군통합병원과 기무사령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경복궁 건춘문은 조선시대 왕실 가족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며, 그 앞에는 왕실 친인척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인 종친부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현대식 병원이 들어서고 한국전쟁이후 육군통합병원과 기무사령부가 자리잡고 있었다. 기무사령부가 떠나간 후 2010년 착공하여 3년간의 공사끝에 2013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미술관 건물들은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과 서울의 전통마을이라 할 수 있는 북촌의 특징으로 고려하여 지상3층 규모의 기존 건물들을 리모델링한 것 같은 분위기를 주면서 전시공간에..

서울 효자동.창성동 골목길, 경복궁 서쪽 영추문 바깥쪽 동네

조선 제1의 법궁인 경복궁 서쪽편은 인왕산 자락 아래 서촌이 일부로 한성부 북부 12방 중 하나인 순화방으로 지금의 효자동,궁정동, 창성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궁궐과 가까운 곳으로 북촌과는 달리 권문세가보다는 궁궐과 관청에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관리를 비롯하여 중인층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다. 특히 효자동은 경복궁과 가까이 있어 궁궐을 출입하면서 궁밖에 살았던 출입번 내시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지역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해방이후에도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와 경복궁이 가까이 있어 개발이 제한되어서 그런지 일제강점기 이후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 많이 남아 있고,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는 큰 건물이 많지 않은 지역이다. 서울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70년대 이전 서울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좁은..

한국의 풍경 2013.12.09

[경복궁, 조선의 법궁] 궁궐 출입문인 북문 신무문, 서문 영추문, 동문 건춘문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출입하는 문으로는 정문격인 남쪽 광화문이 있고,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북쪽에는 신무문이 있다. 현재는 광화문과 신무문을 통해서 경복궁을 출입할 수 있고, 동.서쪽의 건춘문과 영추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 중 신무문은 청와대 정문과 연결되는 문으로 최근에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경복궁 전체를 한번 둘러보고 건청궁과 집옥재, 향원정 일대에서는 최근에 개방된 신무문을 통해서 잠깐 바깥으로 나가서 청와대 정문과 신무문 바깥 모습을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경복궁 출입문 중 정문인 광화문은 삼문의 형식에 2층 문루를 올려 놓고 있으며, 나머지 동.서.북쪽 출입문은 단문의 형식에 1층 문루를 올려놓고 있는 구조이다. 북경 자금성과 비교해보면 자금성 정문은 5개의 출입문이..

궁궐_종묘 2010.11.01

[경복궁, 조선의 법궁] 공목재, 영사재 등 태원전 부속 전각들

태원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건물이지만, 원래 목적은 조선 왕실에서 발생하는 국상을 위해서 세워졌다고 봐도 무방한 건물이다. 조선시대 국장이라는 것이 대상은 왕과 왕비라서 많지 않은 것 같지만, 국장 기관이 3년상에 이르기때문에 기존 궁궐전각을 이용할 경우 번거로운 점이 많고 국장기간동안 운영되는 관청들이 있었기때문에 많은 업무공간이 필요해서 경복궁 중건시에는 이 곳에 태원전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로 해서 조선시대에는 경복궁과는 별도로 창덕궁을 두고 있었으며, 경복궁이 불타버린 조선후기에는 창덕궁 옆에 있던 창경궁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승하한 경우 국장의 사유가 발생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국장을 준비하는 임시관청인 도감을 설치하는 것이다...

궁궐_종묘 2010.10.31

[경복궁, 조선의 법궁] 태원전,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션던 건물

경복궁 제일 뒷편으로 걸어들어가면 새로이 단장한 일군의 건물군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셨던 태원전이다. 구한말 경복궁을 중건할 때 국왕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태원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 곳 태원전은 평상시에는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국장이 있을때 빈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보통 국왕이 승하했을때 시신을 모신 관은 빈전에 안치하면서 국장절차가 시작되며 왕릉을 조성하고 발인할 때까지는 5개월이 소요된다. 그 이후에는 신주를 삼년상 기간동안에 혼전에서 모시는데, 그 장소가 경복궁에선는 태안전이 그 역할을 한다. 실제로 고종이 이 태안전을 세운 이후에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한 기간은 많지 않았던 것 같고, 일제강점기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건물인 관..

궁궐_종묘 2010.10.30

경복궁 수정전 (집현전 자리)

경복궁 수정전은 경회루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다. 이 자리에는 원래 집현전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종이 집현전에 대해서 얼마나 우대하고 있었던지를 잘 알 수 있다.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 바로 옆에 경복궁에서도 경치가 제일 좋은 경회루 앞에 학자들을 위한 집현전을 세웠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학자들에게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복궁 수정전 앞에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과 건물과 잘 어울립니다. 물론 앞의 화장실 표시는 약간 비호감입니다. 친절한 안내는 좋지만 궁궐내에 너문 눈에 띄게 표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면에서 본 경복궁 수정전입니다. 지금으로서는 크게 보이지 않지만 타 건물에 비해서 결코 작은 건물은 아닙니다. 경복궁 수정전 건물 뒤로 돌..

조선 관아 2010.09.20

[고궁박물관] 철거 광화문 주요 부재와 북관대첩비

경복궁 외조가 시작되는 흥례문 서쪽편에는 고궁박물관 마당에는 법천사지광국사 현모탑과 함께 얼마전까지 경복궁 정문 역할을 하다 철거된 옛 광화문 주요 부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경복궁 제모습 찾기의 일환으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된 광화문이 옛날 콘크리이트로 지은 광화문과 그 모습이 비슷한 점으로 봐서 비록 콘크리이트로 지었지만 원형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광화문의 옛날을 추억하는 단초로서 광화문을 이루고 있는 주요 요소들의 일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바람직한 전시라고 보여진다. 북관대첩비는 일제에 의해 일본으로 옮겨진 임진왜란 승전비로 2000년대에 일본으로 반환받았다가 원래의 위치인 북한으로 다시 돌려준 것이라고 하며, 현재는 그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주심포. 광화문 문루의 기둥 상부에 있는 공포부..

지역박물관 2010.09.13 (4)

[경복궁, 조선의 법궁] 건청궁 곤녕합과 옥호루,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

경복궁 건청궁은 고종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경복궁 후원에 지은 사대부 저택 형태로 지어진 궁궐이다. 경복궁 후원에 지어진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연못인 향원지와 함께 건청궁은 번잡한 경복궁을 떠나서 고종이 경복궁 시절에 주로 머물기를 좋았했던 장소이다. 건청궁의 사대부 저택처럼 만들어진 건물로 궁궐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상을 두지 않고 있으며, 건물 규모도 그렇게 크게 만들지는 않았다. 고종이 어린시절을 민간에서 보내다 궁궐로 들어오게 되어서 그런지 궁궐생활에 꽤나 답답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건청궁에서의 고종의 생활 또한 그렇게 편안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이 곳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운을 겪게 된 장소이기도 하다. 건청궁 내전은 일반 민간 저택의 안..

궁궐_종묘 2010.09.11

경복궁 풍기대, 조선시대 기상관측 기기

조선시대에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재는 장치로 풍기를 사용했는데, 이 유물은 풍기를 꽂았던 팔각형 기둥대로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경복궁 풍기대에는 풍기를 꽂는 구멍이 있고 그 구멍에는 물이 고이지 않게 구멍을 뚫어 배수구를 만들었다. 경복궁에는 교태전 뒤쪽 향원정 가는 길 중간에 풍기대가 설치되어 있다. 경복궁 풍기대는 솥같이 생긴 화강석 대 위에 팔각형 기둥을 세운 단순한 모양으로 제일 위쪽에 깃발을 꽂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궁궐에서 바람의 세기를 측정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발달된 기상관측 활동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하단부에는 용머리 모양의 그림이 새겨져 있고, 솥발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구름 문양이 새겨진 팔각기둥 경복궁 풍기대. ☞ 경복궁 풍기대 (보물) 조선시대 바람의 세기..

[경복궁, 조선의 법궁] 건청궁 장안당, 고종이 머물던 공간

경복궁 북쪽편 향원정이 있는 곳에 위치한 건청궁은 경복궁 중건 후 새로 지어진 궁궐 건물이다. 국왕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일반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건물로 국왕이 머무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서재인 관문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곤녕궁 앞에는 연못인 향원지를 파고 서쪽편에는 서재인 협길당을 지어서 하나의 별궁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이다. 건청궁은 이런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구한말 정치적 혼란기의 중심이 되는 장소였고, 이 곳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살해된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다. 건청궁이라는 이름은 북경 자금성에 있는 황제의 처소인 건청궁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이며, 당시 고종의 생각에는 중국은 상당히 발전된 나라라고 생각했던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고종..

궁궐_종묘 2010.09.10

[경복궁, 조선의 법궁]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경복궁 후원격인 향원정 연못 북쪽편에는 중국풍의 건물은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들은 전통적인 궁궐 건물 배치에 따라서 지은 건물은 아니고, 고종이 경복궁 중건한지 20여년이 지난 1888년에 지은 건물이다. 전통적인 조선의 궁궐건물 양식은 아니고, 구한말에 중국풍으로 개조된 창덕궁의 국왕 침전인 희정당같은 건물처럼 창덕궁에 있었던 건물이라고 하며, 1891년에 경복궁 후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집옥재는 고종의 서재 용도로 지은 벽돌건물로 가장 중국풍에 가까운 건물로 넓은 마루가 있는 건물로 외국사신을 접대하던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팔우정은 팔각형 지붕을 가진 정자로 전통적인 한국의 정자는 창호를 두지 않으며, 정자 마루에 앉아서 바깥 경치를 감상하면서 연회를 하는 것이 보통이..

궁궐_종묘 2010.09.09

[경복궁, 조선의 법궁] 광화문, 2010년 새로이 복원된 경복궁의 정문

2010년 들어서 문화재 관련 큰 이벤트 중 하나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이 제위치에 원형대로 복원이 된 사실일 것이다. 광복절이후 공사중이라서 가려졌던 가림막이 사라지고, 원래 모습의 광화문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복원된 광화문을 도로에서 본 첫 느낌은 바뀐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원래 콘크리이트로 지었던 광화문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고 방향만 경복궁 근정전을 중심으로 한 축에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콘크리이트로 지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석축 성문에 전통적인 궁궐 건축의 자재인 금강송으로 지었다는 2층의 문루에서 궁궐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삼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성문 위에는 2층 문루가 세워져 있다. 원형대로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 모..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근정전,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법전

경복궁 근정전은 법궁인 경복궁에서도 중심의 되는 법전으로 우리나라 궁궐을 대표한 건물이다. 19세기에 중건된 건물이지만 조선의 궁궐 건축 기술이 집약된 건축물로서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앞면 5칸, 옆면 5칸의 이층건물이지만 내부는 단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이층의 월대 위에 세워진 건물이다. 근정전은 경복궁 삼조 중 치조(治朝)의 중심으로 국왕이 신하의 하례를 받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자리로서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는 건물로 공식적인 행사시에만 사용하던 건물이다. 경복궁 근정문을 들어서면 가운데에는 삼도가 있고, 좌우 양쪽으로 신하들이 서는 자리를 표시해 주는 품계석, 그리고 그 바깥쪽으로 행각들이 들어서 있다. 경복궁 근정전은 2층 월대 위에 세워져 있어 국왕의 권위를 더 높혀 준다. 근..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근정전 월대, 4신상, 12지신상, 무쇠 드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에서 근정전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법전으로 2층으로 된 월대 위에 세워져 있다. 월대 앞으로는 신하들이 하례를 올리는 조정이 있고, 월대를 올려다 보게 하면서 권위를 높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월대 정면에는 답도가 있는 계단이 있고, 상단 월대에는 국왕을 상징하는 청동향로가, 그 아래로는 화재를 대비한 무쇠 드므가 계단 옆으로 설치되어 있다. 월대 난간 곳곳에는 방위를 나타내는 사신상과 12지신상이 놓고 있으며 계단 주위로 상스러운 동물상을 세워 놓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의 이층 월대. 중국 자금성과는 달리 배수구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비로 인해 손실될 염려가 적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근정전 1층 월대. 월대 일층 계단에 설치된 화재에 대비해 ..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근정전 월대 계단과 답도

경복궁 근조정을 지나면 근정전의 위엄을 말해주는 이층으로 된 월대가 있고, 그 중앙으로는 국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길인 답도를 볼 수 있다. 근정전 답도 가운데에는 봉황무늬가 새겨진 소맷돌이 있고, 그 좌.우로는 해태가 새겨져 있고, 그 양쪽으로 계단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의 답도는 근정문에서 근정전으로 오르는 계단에만 설치되어 있고, 근정전 뒷편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국왕이 머물던 편전인 사정전에서 근정전까지는 국왕이 가마를 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근정전 정면에 있는 2층월대를 오르는 계단. 가운데에는 답도가 있고, 좌.우 양쪽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를 오르는 답도. 국왕이 가마를 타고 오느는 길로 가운데에는 소맷돌이 양쪽으로는 해태상이 있다. 봉황무늬가 새겨진 ..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근정전 앞 조정, 품계석, 행각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법전인 근정전 앞 마당을 조정이라고 부르며 국왕이 신하의 하례들 받는 등 공식적인 국왕의 정치가 이루어지느는 곳이다. 근정전 앞 조정 양쪽에는 신하들이 직위에 따라서 서는 위치를 알려주는 품계석이 동.서 양쪽으로 줄지어 있으며 동쪽은 문신, 서쪽은 무신이 서는 자리이다. 그리고 이 조정은 44칸의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옛날 사극에 많이 들어수 있는 '조정에 출사한다는' 말에서 나오는 '조정'이 품계석이 있는 이 곳을 말한다. 중국 자금성 조정에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품계석이 없었다. 근정전 앞 마당을 조정이라고 부르며 가운데에는 삼도가 있으며 좌.우로 국왕 하례시 관헌들이 서는 위치를 알려주는 품계석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 앞 조정의 삼도. 가운데는 국왕이 지나가는 길이고 동쪽으..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근정문, 공식행사가 열리던 치조(治朝)로 들어가는 문

경복궁은 외조, 치조, 연조의 삼조로 구분되면,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로 국왕이 신하의 조례를 받던 근정전 일대의 공간을 치조라 부른다. 근정전이 있는 치조를 출입하는 문을 근정문이라 하며 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정문 좌.우로는 신하들이 출입하던 일화문과 월화문이 있다. 근정문은 1층으로된 계단을 통해서 들어오게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국왕의 가마가 지나던 답도가 있다. 근정문 앞은 일상적인 국왕 주관의 행사가 진행되던 외조가 있으며, 국왕의 즉위식을 거행하던 곳이기도 하다. 경복궁 흥례문을 들어서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금천이 있고, 영제교를 건너면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 영역이 시작된다. 경복궁 치조(治朝)가 시작되는 출입문인 근정문. 근정문은 2층 누각형태의 건물로 근정문 앞에서 주로 옥외에서 실..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근정문 앞 외조(外朝), 유화문, 기별청, 행각들

경복궁 정문에서 내조 출입문인 근정문까지의 공간을 외조라 부르며, 그 공간 중앙에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금천이 흐르고 있다. 외조에는 국왕을 보좌하는 관청들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근정전 앞 외조에서는 국왕이 주관하는 일상적인 실외행사가 이루어졌다. 근정문 앞 외조는 행각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편에서는 국왕을 보좌하던 관원들이 출입하던 유화문과 행사관련 업무를 보던 기별청이 자리잡고 있다. 경복궁 근정문 앞. 외조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국왕이 주관하던 실외행사가 이루어 지던 곳이다. 행사시 2품 이상의 관원들만 영제교 북쪽 공간에 설 수 있었다고 한다. 근정문 앞 외조를 둘러싸고 있는 행각들. 경복궁 궐내각와 빈청을 출입하던 유화문. 유화문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건물인 기별청.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외조(外朝)를 흐르는 금천과 영제교

경복궁 근정문 앞 외조(外朝)는 교서 반포 등 국왕이 주관하는 일상적인 실외 행사가 이루어지던 장소이다. 외조 가운데에는 서에서 동으로 금천이 흐르고 그 가운데에 금천교인 영제교가 자리잡고 있다. 일제가 총독부 건물을 만들면서 다른 장소로 옯겼던 것을 최근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정상적인 궁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금천은 중국 자금성에서는 금수라고 부르며 아마도 유교적인 격식에 따라서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금천은 물이 말라 있는데 물을 채웠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경복궁 외조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는 금천과 영제교. 경복궁 외조 금천은 서쪽에서 흘러들어 동쪽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금천을 건너는 다리인 금천교인 경복궁 영제교. 이 영제를 건너서부터가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_종묘 201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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