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고려시대 8

남원 용담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

남원 용담사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이다. 큰 바위에 부처의 형상을 부조로 새겨놓은 높이 6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다. 얼굴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힘차고 박력있는 표정을 느낄 수 있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비롯하여 고려 초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한 거대한 불상 중 하나이다. 조각으로 표현된 부분이 마모되어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고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도 양호한 편이다. 남원 용담사는 백제 성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출토된 유물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남원 용담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 얼굴 형체는 알아볼 수..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보물 294호)

경남 함양군 승안사 절터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 등의 모습을,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새겨놓은 통일신라말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머리장식으로 받침과 복발, 연꽃모양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과 탑신의 비례에서 보이는 조형미가 비해 떨어지는 편이며, 고려전기 특색을 보여주는 장식들이 여러곳 있다. 승안사(昇安寺)는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 북쪽에 승안산 기슭에 있던 사찰로 조선초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기록이 없다. 조선중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기단과 탑신 1층 몸돌에 부조를 새겨 놓은 통일신라 말 삼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부에는 부처, 보살, 비천..

제비원 석불로 불렸던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115호)

안동시 이천동 옛 국도변에 위치한 제비원 석불로 불렸던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115호)이다. 고려초 지방 호족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했던 거대한 석불 중 하나이다. 자연암석에 불상의 몸체를 선으로 새기고, 머리는 따로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머리에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다. 양 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어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을 배에 대고 있는 수인(手印)을 하고 있어 아미타여래로 여겨진다. 이곳 이천동은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연미사(燕尾寺)가 있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원(院)이 설치되어 제비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성주풀이’라는 민요에 가택신(家宅神)인 성주(城主)의 고향으로 설정된 곳이기도 하다. 제비원석불로 불렸던 ..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보물 506호),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여 만든 고려시대 석탑

담양의 명소 메타세콰이어길이 시작되는 담양 순창간 국도변에 위치한 남산리 오층석탑이다. 가장 오래된 석탑 중 하나인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 1층이기는 하지만 탑을 구성하는 탑신과 기단의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석탑은 석탑자체의 독특한 조형미를 가지는데 비해 정림사지석탑처럼 석재를 이용하여 목탑처럼 쌓은 석탑이다. 석탑이 있는 이곳은 담양읍내에서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당간지주와 오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이 곳은 고려시대에 많이 세워졌던 평지사찰로 주요 교통로에서 여행객들이 잠시..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의 불상, 불사와 발원

고려는 불교가 크게 흥성한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신라와는 달리 불상, 석탑 등은 화려한 문화재를 남겨 놓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신앙의 중심이 탑이나 불상 같은 상징물에서 불경 같은 것으로 변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고려시대에는 지방의 호족들이나 향리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철불상을 제작하거나 사찰을 건립하는 등 많은 불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경주 중심의 통일신라와는 달리 지방적인 색채가 강한 투박하면서도 지역색이 강한 토속적인 불상들이 많이 제작되면서 고려적인 특징을 갖는 많은 불교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다. 고려의 불상 국가와 왕실의 후원 속에서 성장한 고려시대의 불교는 민간에서도 현세적인 기복 신앙으로서 크게 융성하였다. 불상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예술품으로써 불화와 ..

중앙박물관 2012.02.13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거란, 여진과의 관계

거란은 고려와 비슷한 시기인 10세기 초에 일어난 북방민족으로 요나라를 건국하였다. 거란은 우리나라 남북국시대의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세력범위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송나라 및 고려와 상당 기간의 투쟁기와 평화시기를 거친 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멸망하였다. 금나라는 거란을 멸망시켰으며, 중국 대륙에 진출하여 북송을 멸망시킨후 상당 기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다 몽골에 멸망하였다. 거란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국보로 지정된 초조대장경 인쇄본이 있으며, 거란에서 만든 청동거울이 많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나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로 함경도 지역에 금나라인들이 세운 비석이 있으며, 다양한 도자기들 또한 남아 있다. 거란과의 관계 10세기 초 내몽골의 시라무렌 강 유역에서 일..

중앙박물관 2012.02.10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와의 교류

고려시대 중국에서는 오대십국을 통일한 송나라가 있었고, 북방에서는 거란,여진,몽골이 연이어서 크게 번성하였다. 고려와 송과의 관계는 북방 민족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발한 상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로는 신안 보물선 등에서도 나타났듯이 송에서 만든 도자기류가 많은 것으로 보이며, 인쇄관련 서적류, 청동 거울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宋)은 거란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와 통교하였다. 고려는 송으로부터 각종 서적과 예악.의학기술 등을 들여와 고려의 인쇄문화와 의료 및 각종 학문.사상과 의례를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비단.약재.악기.차.향료.상아.물소뿔 등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들을 주로 수입하고, 금.은.구리, 인삼.잣, 동물가죽, 마포, 화문석, 나..

중앙박물관 2012.02.10

용인 처인성, 몽고침입때 명장 김윤후가 몽골 장군 살리타이를 사살, 몽고 침입을 물리친 곳

용인시와 남쪽 안성시, 평택시와 경계가 되는 지점에 위치한 남사저수지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처인성입니다. 전체 둘레 425m의 작은 평지성으로 성벽은 토성으로 쌓았으면 별로 높지도 않고 견고해 보이지도 않은 성입니다. 이 곳이 몽골의 고려 침입시 가장 유명한 전투인 처인성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고려시대 명장 김윤후가 몽골 자군 살리타이를 사살함으로써 당시 세계 최고의 군대인 몽골 기마대를 물리친 곳입니다. 처인성의 전략적 위치는 용인 이남에서 서울방향과 연결해 주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중요해 보이기는 하지만 성벽의 규모로 보아 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만 역사적으로 고려가 몽골군을 격퇴한 장소로서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처인성은 용인 남사에서 서울 방향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교통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