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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릉 4

[중앙박물관 고려실] 무덤에 담긴 고려 왕실의 문화

조선왕조의 오백년의 왕릉과 신라천년의 왕릉은 대체로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있는 반면에 고려 왕조의 왕릉은 주로 북한지역에 개경부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 남한에는 주로 개경과 가까운 파주지역과 고려의 대몽항쟁기 수도였던 강화에 일부 왕릉들이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강화 지역의 왕릉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일부 실시되었는데 수차례의 도굴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려 왕실의 문화와 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려 왕릉은 통일신라 고분 방식과 유사하게 앞트기식 돌방무덤을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왕릉에 비해서 강화지역의 왕릉은 봉분은 약간 작게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에 담긴 고려 왕실의 문화 몽골과 항쟁하던 시기에 고려는 왕도를..

중앙박물관 2012.02.11

강화 홍릉(사적 224호), 무인정권기 대몽항전을 이끈 고려 23대 고종의 능

강화도의 주산인 고려산 남동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 23대 고종의 능인 사적 224호로 지정된 강화 홍릉이다. 고려 고종은 최충헌 집권기에 왕위에 올라 대몽항전을 거치면서 몽고에 항복하기까지 약 46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고종은 최충헌 일가가 집권하던 시기였기때문에 실권없었던 최씨정권을 몰아내고 몽고와 강화를 했던 그해에 죽어서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화에 묻혀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종의 재위기에는 무신정권기란 어려움도 있었지만 몽골이 동아시아는 물론 중동과 서구까지 그 영향을 미쳤던 세계사적으로도 격변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고려도 거란.몽골 등의 침입을 받아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인명과 문화유산의 손실도 상당히 컸던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국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팔만대..

강화 석릉(사적 369호), 최충헌 정권에 의해 폐위된 고려 21대 희종의 능

석릉은 고려 21대 희종의 능으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이 능은 조선시대 이후 방치되어 있다가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이 찾아내어 다시 봉분하였다고 한다. 희종은 신종의 아들로 무신정권 최충헌 집권기에 신종의 양위를 받아 1204년에 즉위하였고, 1208년 당시 내시 왕준명 등과 함께 정권을 휘두르던 최충헌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개성으로 돌아와 살기는 했는데, 복위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다시 교동도로 유배되어 죽었다고 한다. 석릉은 무신정권에 의해 폐위된 국왕의 능이라서 그런지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조성되지 못하고 강화도에서도 깊은 산중에 속하는 양도면 진강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석릉을 찾아가는 길은 양도면 카톨릭대학 인..

강화 곤릉 (사적 371호), 고려 대몽항쟁기 고종의 어머니 원덕태후의 능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마을 뒷편에 위치한 곤릉은 고려 강종의 부인인 원덕태후 유씨의 무덤이다. 고려의 대몽항쟁기의 대부분을 보낸 고종의 어머니로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고려가 강화로 천도했던 시기에 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에는 곤릉 이외에도 희종의 능인 석릉, 희종의 비 순경태후의 능인 가릉, 고종의 능인 홍릉이 남아 있는데, 홍릉을 제외하고는 강화군 양도면 일대에 고려귀족들의 무덤들과 함께 분포하고 있다. 곤릉의 봉분은 붕괴되어 각종 석물들은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고 '고려원덕왕후곤릉'이라고 적혀 있는 표석만 남아 있다. 능앞에는 고려시대 능제의 특징인 3단의 장대석단을 설치해 놓고 있으며, 조선왕릉의 정자각처럼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가 남아 있다. 강화군 양도면 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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