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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건물 50

상주 향청, 조선시대 지방관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자치조직

경북 상주시 옛 상주목 관아가 있던 도심에는 관아건물로서 유일하게 상주향청이 남아 있다. 1950년대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며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두고 있다. 이 건물은 향청의 지위가 향리로 격하된 조선중기 이후에 운용된 것으로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향청은 조선초 지방관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유향소를 일컫는 말로 지방의 자치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유향소는 지방관아에 소속된 아전을 비롯한 하급관리를 감찰하고 지역을 교화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그 유래는 고려의 사심관제도에 있다. 오늘날 지방자치조직인..

조선 관아 2013.10.17

상주 태평루, 상주목 관아 출입문인 문루

상주시 임란북천전적지 언덕으로 옮겨져 있는 옛 상주목 관아 출입문 문루인 태평루이다. 조선후기에 건립된 관아 출입문 문루로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정형화된 문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큰 편이다. 원래는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상주도심 왕산역사공원 부근에 있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도심이 정비되면서 상주향교로 옮겨졌다가 최근에 이곳에 임란전적지가 조성되면서 객사인 상산관 등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1층은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2층 누마루는 읍치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용도로 지어졌다. 상주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되는 고장으로 고려시대 전국 지방조직인 12목이 설치될때 상주목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초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낙동강 중류에 위..

조선 관아 2013.10.11

상주 침천정,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

상주시 북천 임란전적지에 옮겨져 있는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인 침천정이다. 앞면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정자 건물이다. 관아에서 운영하는 정자는 지방 수령이 중앙에서 방문한 관리나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거나 전쟁 등의 위급한 상황시 관내 주요 인사들이 회의를 하기 위한 장소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정자인 영남루, 죽서루, 촉석루 등이 관아에서 운영하는 정자인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반면에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침천정은 경치좋은 곳에 개인이 세웠던 정자와 비슷한 규모를 하고 있다. 이는 상주목 관아의 중심이 되는 객사건물이 상산관이 그 규모가 크고 웅장했기때문에 손님접대나 회의에는 객사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침천정은..

조선 관아 2013.10.10

상주 상산관, 상주목 객사로 남부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관아 건물 중 하나

경북 상주시 북천 임진왜란 유적지에 남아 있는 상산관은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의 건물의 중심이 되는 객사 건물이다.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장소이자,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 사신이 머무는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상주 상산관은 전주객사와 함께 조선시대 객사 건물 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건물로 궐패를 모신 정청이 앞면 3칸, 숙소로 사용되는 동익헌이 7칸, 서익헌이 4칸 규모이다. 고려시대 지방 통치체제가 정비되면서 처음 세워졌던 것으로 여러 차례 화재로 중수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객사를 비롯한 관아 건물들은 도심내 상주경찰사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낙동강 중류에 위치한 상주시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되는 고장으로 낙동강을 이용한 내륙수운, 백두대간..

조선 관아 2013.10.07

삼군부 총무당,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정부 청사 건물

서울 돈암동 서울 성곽 낙산 서쪽편 언던 아래 한성대학교 교정 옆에 있는 서울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조선시대 관청 건물 중 하나인 삼군부 총무당이다. 현재 육군사관학교에 교정에 있는 청헌당, 지금은 없어진 덕의당과 함께 삼군부 청사를 이르던 건물 중에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삼군부 청사는 구한말 고종때 지어진 건물이라 약 100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건축문화재로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구인 의정부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관아로서 의정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 당시 관아건물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건물은 앞면 7칸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근무했던 장소로 보인다. 삼군부 청사가 있던 광화문 앞 육조거리 서쪽에는 예..

조선 관아 2013.09.23 (1)

진주 촉석루, 남강의 풍치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누각

진주성 내에는 남강 바위 벼랑 위헤 장엄하게 솟아 있는 촉서루는 영남제일의 누각으로 아름다운 남강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경상우병영 주둔지로 경남지역에서 호남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지키기 위해 축성된 진주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역할을 하는 촉석루는 규모로 보아서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 삼척 죽서루 등과 함께 조선시대 관아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누각이라 할 수 있다. 이 누각은 원래 장대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규모를 크게 하여 경상우병마절도사나 진주목사가 지역내 유력인사들이나 중앙에서 방문한 손님들을 위해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진주는 군사조직인 경상우병영과 행정조직인 진주목이 별도로 설치된 곳으로 관아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지방으로 평양과 함께 기생들이 유명했으며..

조선 관아 2013.07.12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경상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정청 건물

선화당(宣化堂)은 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의 정청으로 이름이 없거나 고유 이름이 있는 일반 동헌 건물과는 달리 감영 정청은 '선화당'이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선화당에서는 관찰사가 주관하는 주요 업무 및 중요한 송사, 재판 등이 행해졌다. 조선시대 감영에는 정청인 선화당을 중심으로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었지만, 대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던 까닭에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없는 편이다. 정청 건물인 선화당은 충청감영, 강원감영, 경상감영 선화당이 남아 있고, 객사는 전라감영 전주객사가 남아 있다. 조선초기 관찰사는 임기 2년(조선초는 1년)으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근무했기때문에 감영이 별도로 설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며, 경상감영은 경주, 안동, 상주 등이 감영역할을 하였다. 조선중기부터 관찰사가 한..

조선 관아 2013.04.19

인천도호부청사,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남아 있는 관아건물

인천시 문학동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남아 있는 옛 인천도호부청사이다. 객사 일부와 동헌 건물이 남아 있는데 원래 건물을 일제강점기 이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 건물에 많은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들은 인천도호부가 처음 생긴 조선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 기와 명문에 숙종대인 1677년(숙종3)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후기에 크게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시에서 최근에 옛 인천도호부 관아건물들을 문학경기장 건너편 인천향교가 있는 언덕에 복원하였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변형이 많이 되어서 그런지 옛 건물들을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남겨두고 새로운 건물들을 신축.복원해 두고 있다. 인천도호부는 이 지역에 있던 지방행정기구로 종3품 부사가 고을 수령이었다...

조선 관아 2013.04.04

태안 경이정, 태안을 지나가던 중국사신이 잠시 쉬어가던 관아 정자

태안군 태안읍 사무소가 있는 동문리 일대는 조선시대 태안군(현) 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관아건물로는 동헌과 관아에서 운영하던 누정인 경이정, 중등교육기관인 태안향교가 남아 있고, 객사를 비롯한 건물들이 있던 터에는 초등학교와 읍사무소가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바다와 조운을 담당한 연안항로를 지키는 수군으로 남.서해안에는 주로 수영과 그보다 낮은 조직인 방어사가 설치되었는데 태안에는 그 중 수군 방어사가 설치되었다. 방어사는 무관으로 고을 수령을 겸하면서 주변지역 수군조직을 관장하는 직위로 종2품에 해당하는 고관이었다고 한다. 태안읍사무소 앞 큰 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정자인 경이정은 원래 중국사신들이 안흥항을 통해 조선을 방문하면서 태안을 지나갈 때 휴식을 취하던 장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명나라..

조선 관아 2013.03.28

태안 목애당, 옛 태안군 관아 동헌

충남 서해안 끝자락 태안반도에 위치한 태안군은 조선시대 태안군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서산과 접한 동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서해 먼바다와 직접 맞닫아 있고, 남쪽으로는 천수만, 북쪽으로는 가로림만이 있다. 태안은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 갯벌은 적은 편이며 모래사장과 송림이 발달되어 있어 크고 작은 포구와 해수욕장들이 있다. 삼국시대 태안은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는 중요한 창구였으며, 불교를 비롯한 중국문물이 전래되는 중요한 접점으로 태안마애석불, 서산마애석불, 보원사절터 등에서 당시 교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태안이라는 지명은 고려 충렬왕때부터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태안군이 설치되었다. 태안은 관할지역이 넓지 않기때문에 태안군수는 지방관의 역..

조선 관아 2013.03.28

서산 관아문, 옛 서산군 관아 아문과 노거수

서산은 충남 서해안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가야산 서쪽편에서 태안반도 사이에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 고장으로 동쪽으로 당진.예산, 남쪽으로 홍성, 서쪽으로 태안군에 접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산시에는 충청병영이 있었던 해미현과 서령군이 있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서쪽끝 태안반도 끝 항구를 통해 중국과 교류하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삼남지방에서 세금으로 걷어들은 물자를 운반하던 조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고장이다. 남쪽의 천수만, 북쪽의 아산만을 통해 바다와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때문에 고려말, 조선초 왜구의 위협을 많이 받았던 곳이며, 병자호란 이전까지 서해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 해미읍성에는 충청병영이 설치되어 있었다. 서산시청을 비롯한 서산시 주요 관..

조선 관아 2013.03.26

서산객사,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관아 건물

서산군 관아를 구성하던 건물 중 가장 중요한 건물인 객사 건물이다. 원래 서산시청 내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구한말 근대 초등교육기관을 세울때 대부분은 기존에 손님이 묵는 숙소로 이용했던 객사건물과 객사터가 초등학교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고 동헌건물은 읍사무소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서산군의 경우는 객사건물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읍사무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서산객사는 앞면 8칸의 '-'자형으로 생긴 큰 건물이다. 보통 객사건물은 '궐패를 모신 가운데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익랑형식으로 약간 지붕이 낮은 숙소건물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건물은 전체가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며, 내부 구성은 다른 객사들과 동일하다. 건물이 지어진 형태로 볼 때 구한말에 크게 ..

조선 관아 2013.03.23

서산 외동헌, 옛 서산군수가 근무하던 관아 건물

서산시는 충남 서해안 태안반도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고장으로 동쪽으로 예산,당진,홍성과 접하고 있다. 북쪽의 아산만, 남쪽의 천수만 사이에 비교적 고도가 낮은 구릉지와 넓은 평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이 지역은 태안의 크고 작은 항구로 통하여 내륙지방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백제와 중국간의 교류가 많았던 지역으로 서산마애석불, 보원사지 등 유적지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해미현과 서산군이 있었다. 서산시청이 있는 서산읍은 조선시대 서산군 관아가 있는 곳으로 지금도 서산시청 주변에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외동헌, 객사, 아문이 남아 있다. 서산군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건물인 외동헌은 지방관아 건물로는 큰 편으로 앞면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단청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인..

조선 관아 2013.03.22

청주동헌, 조선시대 청주목사가 근무했던 관아 건물

청주목은 삼국시대 서원경이 설치되었던 청주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기구로 고려가 국가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기 시작한 광종대에 전국에 12개 목(牧) 중 갑오개혁으로 전국의 행정체제가 개편되기까지 유지되어 왔다. 청주에는 병자호란 이후 해미읍에 있던 충청병영이 옮겨와 상당산성을 중심으로 내륙의 군사적 거점이 되어왔다. 청주 구도심으로 대부분의 행정기관이 모여있는 상당구 남문로에는 객사가 있었던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 중 일부가 남아 있다. 중앙공원 뒷편에는 원래 충주목 관아 동헌이 있었던 자리에는 지금은 청원군청이 소재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KT지사가 들어서 있는데, 대체로 충주목과 충청병영에 속했던 많은 관아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원군청 본관 뒷편에 남아 있는 청주동..

조선 관아 2012.12.02 (1)

청주 망선루, 청주목 관아에 있던 공식 행사를 위해 세운 누각

충청북도 도청소재지가 있는 청주시는 삼국시대에 상당현과 서원소경이 설치되었으며, 가야가 멸망한 이후 김유신 장군으로 대표되는 가야후손들이 세력을 잡았던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원경이 설치되었고, 고려시대 이후로는 지방관제 중에서는 높은 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정3품 목사가 수령인 청주목이 설치되었다. 청주는 동쪽으로는 상당산으로 비롯하고 크고 작은 산들이 있고, 서쪽과 남북쪽으로는 금강 지류인 무심천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청주 구도심으로 상업의 중심지인 상당구 남문로 일대에는 조선시대 읍성 안 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조선후기에 충청병영이 청주로 옮겨오면서 청주목 관아와 충청병영 관아가 모여있던 지역이다. 그 중 관아의 중심건물인 객사가 있었던 장소인 중앙공원에는 관아 건물 중 충청병영 ..

조선 관아 2012.11.29

순천 낙안읍성 내아, 고을 수령이 머물던 살림집

낙안읍성은 전남 순천시 낙안벌판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옛읍성이다. 읍성에는 100여 가구의 주민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초가마을이 있고, 옛 낙안군 관아 건물인 낙악객사, 동헌, 내아, 문루 등이 남아 있다. 현재의 기준으로 지금 남아 있는 읍성내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조선시대 이곳은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이었던 약간 큰 규모의 고을이자, 이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읍성 관아 건물 중 객사는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하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동헌과 내아는 옛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건물이다. 그 중 내아 건물은 마당이 넓고, 본채 외에는 부속건물을 두지 않는 구조이다. 본채는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으며, 'ㅁ'자형으로 이루어진 다른 지방 관아의 내아와는 달리 개방된..

조선 관아 2012.10.18

순천 낙안읍성 동헌, 낙안군수가 근무하던 읍성내 동헌 건물

낙안읍성은 옛 낙안군 관아가 있던 읍성으로 낙안군은 전남 순천시 낙안면.외서면과 보성군 벌교읍 일대를 관할하던 옛 고을의 이름이다. 조성시대 지방행정 단위 중에서는 중간 정도 규모로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던 곳이다. 관아가 있던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관아를 비롯하여 성벽과 내부의 마을의 모습도 원형에 가깝도록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지역 중심지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낙안은 서남쪽을 제외하고는 산으로 둘러싸은 넓은 분지가 평야를 이루는 곳으로 관아가 있는 낙안읍성는 평야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낙안읍성은 동문에서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아전들을 비롯하여 관아와 관련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민가와 상점들있고,..

조선 관아 2012.10.16

순천 낙안객사, 낙안읍성에 남아 있는 고을을 방문하는 중앙관리들을 위한 숙소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가 있었던 낙안읍성은 조계산 남쪽자락에서 남해안 순천만까지 이어지는 낙안벌판의 북쪽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 왜구의 침입이 극심할 때 처음 토성을 쌓았던 것으로 인조대 낙안군수를 역임한 임경업 장군이 현재의 모습처럼 석축성으로 중수하였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 그 원형에 가장 가깝게 남아 있게, 실제 주민들도 당시의 초가주택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등 조선시대 지방 관아를 중심으로 읍성의 모습을 실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마을이다. 낙안읍성에는 조선시대 관아를 이루고 있던 객사, 동헌, 내아가 원래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객사는 외국 사신이나 왕명으로 지방을 방문하는 중앙의 관리들이나 귀빈들을 위한 숙소로 지어진 건물이다. 본래의 기능은 객사 중앙 대청마..

조선 관아 2012.10.15

[창덕궁] 궐내각사 검서청, 규장각 검서관들이 근무하던 관청건물

조선시대 궁궐 건물배치에 있어서 남북을 축으로 외조, 정전이 있는 외전, 국왕의 일상 집무공간인 편전, 국왕과 왕비, 왕실가족의 처소인 내전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궁궐 중심축의 정전을 중심으로 동쪽편은 세자의 거처 및 집무공간인 동궁을 비롯하여 그 뒷편으로는 궁궐에 거주하는 후궁들을 비롯하여 왕실가족 거처공간이 마련되고, 서쪽편으로는 국왕을 보좌하는 직속관청들이 들어서 있는 궐내각사가 형성되어 있다. 창덕궁도 마찬가지로 정전인 인정전 동쪽편으로 궐내각사들이 들어서 있는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이 정전 바로 옆에 있고, 바깥쪽으로는 정조가 세종대의 집현전을 참조하여 만든 규장각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창덕궁 궐내각사 중 금천 서쪽편에는 규장각 부속건물로 출판될 서적의 교정과 서..

조선 관아 2012.09.24

광주 남한산성 관아 건물인 침괘정과 천흥사종이 걸려 있었던 종각

광주부가 있었던 광주부에는 행궁을 비롯하여 많은 관청들과 성벽을 관리하던 사찰과 큰 마을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없지고 관아건물로는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연무당과 연못인 지수당,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지만 관아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침괘정 정도만이 남아 있다. 조선 영조대에 지어진 침괘정은 문헌상 기록으로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건물의 형태는 온돌방과 마루바, 회랑 역할을 하는 툇마루로 구성되어 있는 집무실로 사용했던 관아 건물로 보인다. 아마도 부근에 무기를 제작하는 공방과 창고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한산성 행궁 앞 광장에는 산성내에 시간을 알려주는 종각이 설치되어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국보 280호로 지정된 천흥사 종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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