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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건물 22

보은군 동헌, 고을 수령이 업무를 보는 건물

옛 보은군 관아터에 남아 있는 동헌이다. 동헌은 지방 수령이 업무를 보던 사무실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건물 내력은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으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순조때 크고 고쳐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7칸으로 오른쪽에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왼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 동쪽 1칸과, 안쪽을 높게 만들어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조선후기 관아 건물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은군 읍소재지 옛 관아터에 남아 있는 동헌. 앞면 7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왼쪽편에 앞면 4칸 규모의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대청마루 안쪽과 오른쪽 1칸을 높게 만들어 누마루와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조선후기 관아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대청마루 앞 통로 역활을 하는 툇마루. 뒷편에서 본 모..

조선 관아 2017.02.07

삼군부 총무당,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정부 청사 건물

서울 돈암동 서울 성곽 낙산 서쪽편 언던 아래 한성대학교 교정 옆에 있는 서울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조선시대 관청 건물 중 하나인 삼군부 총무당이다. 현재 육군사관학교에 교정에 있는 청헌당, 지금은 없어진 덕의당과 함께 삼군부 청사를 이르던 건물 중에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삼군부 청사는 구한말 고종때 지어진 건물이라 약 100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건축문화재로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구인 의정부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관아로서 의정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 당시 관아건물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건물은 앞면 7칸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근무했던 장소로 보인다. 삼군부 청사가 있던 광화문 앞 육조거리 서쪽에는 예..

조선 관아 2013.09.23

[창덕궁] 궐내각사 예문관, 국왕의 말과 글을 대필하는 국왕 보좌기관

궐내각사는 규장각을 홍문관, 예문관, 내의원 등 국왕을 직접 보좌하는 관청들인 모여있는 곳으로 창덕궁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이다. 경복궁에서도 경회루 앞의 수정전을 중심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관청들인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이들 건물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철거되고 없어졌던 것을 2005년 창덕궁 궐내각사가 먼저 복원되었다. 궐내각사는 정전인 인정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예문관과 내의원이 위치하고 있고, 그 앞쪽에 국정을 자문하는 홍문관이 자리잡고 있다. 예문관, 내의원 등은 정전 옆 작은 출입문을 통해 정전으로 출입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문관은 국왕의 말이나 글을 대필하는 기관으로 세조대에 집현전이 혁파되면서 도서출판의 기능은 홍문관으로..

조선 관아 2012.09.27

한국민속촌 관아 내아, 지방 수령의 거처

조선시대 관아 건물 중 지방 수령 사적인 거처로 살림집으로 지어진 건물을 내아 또는 내당이라고 부른다. 내아는 원래 고을 수령의 부인과 자녀들이 거처를 하는 곳이지만, 조선시대에 실제로 고을 수령이 가족과 함께 부임하는 경우는 드문 경우이며 주로 단신으로 부임하거나 나이가 어린 자식이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살림집인 내아 건물은 대부분 소박하게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내아에는 관청에 예속된 기생인 관기나 노비인 관노들이 함께 거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된 내아 건물은 앞면 5칸반의 규모가 큰 건물에 내외행랑채를 두고 있다. 본채 건물은 특이하게 'ㅓ'형 건물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데, 아마도 구한말에 많이 지어졌던 양반집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조선 관아 2011.04.25

김제 관아 내아, 동헌과 함께 남아 있는 고을 수령 살림집

김제 관아는 조선시대 관아를 구성하는 동헌, 내아, 정자가 남아 있고 부근에 관아에서 관리하던 중등교육기관인 향교가 있는 조선시대 지방의 행정 중심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역사적, 사회적 가치가 높아서 사적 482호로 지정된 곳이다. 김제는 정4품이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넓은 평야지대로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김제 내아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으로 김제군 동헌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ㄷ'자형 안채 건물만 남아 있는데, 현존하는 관아 건물 중 동헌과 내아가 같이 남아 있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현재의 규모로 봤을 때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이 작다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안채 외에도 여러동의 살림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

조선 관아 2010.11.23

김제 피금각, 관아 정원의 조그만 정자

사적 482호로 지정된 김제 관아에 들어서면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 살림집인 내아와 함께 작은 정자가 동헌 왼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피금각'이라는 현판이 달린 이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정자이다. 일반적인 정자처럼 넓은 대청마루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앞면과 옆면으로 가운데 1칸에만 방을 두고 있고, 사방으로 마루가 있는 특이한 구조의 정자이다. 아마도 고을 수령을 방문한 손님을 맞이하는 접대용 공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헌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약간 특이한 점이기는 하지만, 크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소박한 정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앞면3칸, 옆면 3칸의 정사각형의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는 김제관아에 있는 정자인 피금각. 피금각은 그 건축내력에 대한 설명이 없는 ..

조선 관아 2010.11.19

전주 구도심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전주객사(全州客舍)

전주의 구도심 중앙에는 조선시대부터 이곳이 전주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주객사가 자리잡고 있다. 보통의 다른 유적지와는 달리 도심 중앙에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이 전주의 전통을 알려주고 있다. 이 전주객사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마도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방관청 건물로는 가장 큰 건물이다. 객사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사신이 묵는 숙소로 지방의 거점도시에 마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전주객사는 건물의 규모는 웬만한 서울의 궁궐보다도 규모가 큰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전주객사에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는데 이것은 전주객사를 일컫는 말로서,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풍패는 한고조 유방의 고향으로 한고조 유방이 중국뿐만 아니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랑을..

조선 관아 2010.09.21

[나주목 관아] 나주객사 금성관

나주목의 규모를 잘 보여주는 건물인 나주 객사인 금성관 건물이다.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로 통제영 객사인 통영 세병관이나, 여수 진남관보다는 작지만, 전주 객사와 비슷한 규모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관청건물로 개조되어 사용하다가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서쪽 날개 건물은 원래부터 있던 건물로 보이며, 동쪽 날개 건물은 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비슷한 건물들을 보면 동쪽 날개 건물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주 객사인 금성관. 중앙에 위패를 모시는 건물이 있고, 양쪽 날개에 손님이 묵는 방이 있다. 나주 객사인 금성관. 금성관 편액 금성관 내부. 넓은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금성 서쪽 날개 건물. 앞면 5칸의 건물로 2칸은 방, 3칸은 마루로 사용되고 있다. 나주 객..

조선 관아 2010.09.21

강릉 임영관지 객사, 고려 공민왕이 쓴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

강릉 임영관지는 고려시대부터 강릉지역 관아가 있었던 건물터로 기록에 의하면 고려태조 19년인 936년에 강릉을 동원경이라 칭하고 임영관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강릉은 조선초에는 대도호부였다가 국방상 큰 위험이 없었던 까닭에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그 이후 강릉부로 구한말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태백산맥 동쪽 동해안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대가 있는 곳으로 삼국시대 이래로 이 지역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현지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강릉은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옛날부터 피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고관, 선비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접대하느라 아주 바빴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의 객사에서는 객사를 사용할 수 있는 직위를 설명하지 않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그 직위를 설명해..

조선 관아 2010.09.21

[서산 해미읍성] 호서좌영 객사

서산 해미읍성은 충남 서해안 지역의 왜구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새운 읍성으로, 조선 전기까지는 충청병마도절제사가 머무르던 곳이며 왜구의 침입이 없어진 조선 후기에는 해미현 관아가 옮겨왔다고 한다. 해미읍성 관아 건물로는 객사, 동헌, 내아를 볼 수 있는데 원래부터 있었던 건물은 아니고, 건물터에 현재의 건물을 복원했다고 한다. 읍성내에 있는 작은 동산 아래에 관아 건물들이 모여 있다. 해미읍성 북쪽편 동산 아래에 객사를 비롯한 관아 건물들이 모여있다. 해미읍성 객사. 복원된 건물로 문화재적인 가치는 없으나, 옛날 관청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미읍성 객사는 앞면이 5칸이나 되는 건물로, 도절제사가 머물렀던 관청 건물답게 다른 지역의 객사보다 크다. 객사 양쪽 날개부분에는..

조선 관아 2010.09.21

안성객사(安城客舍), 고려 주심포계 양식이 남아 있는 건물

경기도 안성에 자리잡고 있는 안성객사입니다. 객사는 국왕의 궐패를 모시고,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중앙관리가 잠시 머무는 숙소역할을 하는 곳으로 각 지역마다 해당 지역의 규모에 걸맞는 규모의 객사를 갖추고 있습니다. 안성은 전국에서 평균에 가까운 규모의 지역으로 전형적이 객사를 갖추고 있습니다. 원래는 안성읍내에 있던 것을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성객사는 고려시대부터 있어 왔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려의 주심포계 양식이 남아 있는 많지 않은 건물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안성읍에서 중부고속도로가 있는 죽산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자리잡고 있는 안성객사입니다. 원래는 안성 읍내에 있었으나, 일제시대부터 여러곳이로 이전했다가 지금의 안성도서관 앞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면..

조선 관아 2010.09.21

평택 팽성읍 객사, 조선시대 객사의 전형적인 모습

팽성읍은 평택남쪽 안성천 주변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다. 팽성은 원래 초나라 항우가 도읍으로 정했던 곳과 같은 이름으로 중국 중원에서 물류의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 이 곳의 성격이 그 곳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팽성은 원래 평택현의 별칭으로 일제강점기에 경부선 철도부설로 인해 행정기능은 철도역부근으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평태이라고 함은 이 곳 팽성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시골의 조그만 소읍으로 팽성읍이 남게 되었다. 평택현 관아 건물 중에는 현재 팽성객사와 평택향교만이 남아 있으며, 이 곳 팽성읍객사는 일제시대 이후에 양조장, 주택 등으로 사용되었다가 1994년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객사 건물은 동.서헌이 3칸씩, 가운데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중대청..

조선 관아 2010.09.21

창녕 객사, 벽면과 창호가 없는 특이한 객사건물

창녕 도심공원인 만옥정 공원에 있느 창녕객사는 다른 지역의 웅장한 형태로 남아 있는 객사와는 달리 이 건물은 일반적인 객사에 비해 건물의 높이가 매우 낮고 건물의 배치도 알려진 바가 없어 매우 크고 권가가 있던 일반적인 객사와는 다른 모 습을하고 있다. 이 건물은 좌.우 익사는 없어지고 주 건물만 남은 것으로 보이는데 벽재나 창호도 없으며, 얼핏 보기에는 누각과 같은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마루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매우 특이하게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앞편 4칸, 옆면 3칸으로 이루어진 창녕객사. 좌.우에 측랑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측면에서 본 창녕객사. 이 건물은 벽면과 창호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데, 원래부터 없었는지 후대에 이전.보수..

조선 관아 2010.09.21

인천도호부청사 동헌, 도호부사 집무공간

인천도호부 관청건물 중 도호부사의 집무공간인 동헌이다. 지방 관청 건물배치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객사의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동헌이라고 불린다. 인천도호부 부사는 종3품의 직급으로 지방수령 중에서 목사다음으로 높은 지위이다. 인천도호부 동헌은 앞면 5칸의 건물로서 가운데 3칸은 도호부사가 소송을 비롯한 일상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으로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좌우에 응접실 용도의 온돌방이 있다. 동헌 앞 마당에는 민원인들이 재판을 받는 공간으로 우리나라 어디를 가던지 동헌마당에는 곤장대가 설치되어 있다. 현재의 동헌 건물과 마당사이에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으며, 원래 이런 공간배치는 약간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이 곳 건물들이 복원된 건물들이라 원래의 모습과 다르게 지어진 것이 아닐까 ..

조선 관아 2010.09.21

[나주목 관아] 금학헌, 나주목사내아

나주 객사 서쪽편 동헌이 있던 곳 안쪽에는 나주목사 내아인 금학헌이 자리잡고 있다. ㄷ자형 집으로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되며,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나주군수 사택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지금은 숙박과 교육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원형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내부에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주해 온 관청 건물이다. 나주 동헌 정문인 정수루를 들어서면 왼쪽편에는 시장이 있고, 오른쪽 편에는 나주목사 내아였던 금학헌을 볼 수 있다. 보통 권세가의 경우에 솟을 대문을 많이 사용하는데 비해 목사 내아는 솟을대문없이 일반적인 출입문을 사용한다. 나주목사 내아는 ㄷ자형 건물로 중앙에는 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방과 부엌이 있다. 나주목사 내아 건물 가운데 부분. 3칸의 마루가 중앙에 있다. 양쪽 건물에..

조선 관아 2010.09.21

강릉 임영관지 칠사당

강릉 관아인 임영관지에 건물로서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인 칠사당이다. 이름으로는 사당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관청건물로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용도로 쓰인 건물로 보인다. 보통 조선시대 관아는 객사와 동헌, 내아를 기본으로 하여 이방청, 작청 등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는 건물부터 여러 종류의 건물이 있는데, 이 곳 칠사당은 시대에 따라서 다른 용도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에 불타버린것으로 다시 지었다고 하며, 군영 등의 용도로 사용하다가 1950년대까지 시장 관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반 관아 건물 형태와 가정집의 형태가 섞여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강릉 임영관지의 칠사당 전경. 이 건물은 시대에 따라서 용도가 변함에 따라 계속 그 형태가 변해온 것으로 보이며..

조선 관아 2010.09.21

인천도호부청사, 복원된 인천도호부청사 건물군

인천도호부는 인천지역을 관할하던 지방관청으로 지방수령 중에서 높은 편에 속하는 종3품 도호부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원래의 위치는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문학초등학교로 변신해 있으며, 지금도 동헌일부와 객사가 남아 있다. 보통 지방관청은 객사를 중심으로, 지방수령이 근무던 동헌, 숙소인 내아를 비롯하여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던 이방청 또는 작청 등이 있으며, 주변에는 지방 공공교육기관인 향교가 배치되어 있다. 현재 복원된 인천도호부청사는 객사, 동헌 그리고 출입문이 아문이 향교 동쪽편에 복원되어 있어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복원된 인천도호부청사. 출입문격인 아문이 앞쪽에 있고, 객사와 동헌이 나란히 있다. 이 곳에는 전통문화체험 등 다양한 행사와 여러 민속자료들을 체험할 기회를 주고 있다. 입구에 나란히..

조선 관아 2010.09.21

강릉 객사문, 대표적인 관청 건물

강릉 객사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관청 건물 중에서 가장 유래가 깊고 만든 수법이 뛰어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의 하나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에다. 강릉객사가 있는 임영관은 고려 태조가 강릉에 세운 지방관청 건물로 지방관청 중에서는 유래가 상당히 오래된 곳으로 임영관을 이루고 있던 건물들은 대부분 헐리고 객사문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복원이 이루고 있다. 강릉객사문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객사 출입문으로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의 특징인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건축의 수법이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고, 그 수법도 뛰어나기 때문에 문화재로서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강릉 임영관지 객사 출입문인 강릉객사문은 그 모습이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안정적이고 단아하며..

조선 관아 2010.09.21

[나주목 관아] 나주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

나주목 관청 건물의 중심이 되는 나주 객사 금성관 서쪽편에는 나주 목사가 근무하는 동헌이 있었던 자리가 있고, 그 뒷편으로 아직까지 나주목 내아가 남아 있다. 객사, 동헌, 읍성, 향교 등 지방관청을 구성하는 요소가 나주에는 많이 남아 있어 나주목 관아 전체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그 중 나주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는 객사 출입문인 망화루 앞을 지나는 도로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나주 객사인 금성관 정문을 나서면 서쪽편에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가 있다. 정수루는 2층 누각으로 전체가 개방되어 있다. 정수루 편액 동헌 안쪽에서 본 정수루 정수루 옆 도로에 있는 비석 정수루를 들어서면 나주목 내아에 있는 오래된 고목을 볼 수 있다. 조선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우복용이 지은 것으로, 나..

조선 관아 2010.09.21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정독도서관에 있는 조선시대 관청 건물

종친부는 조선시대 국왕의 친인척인 종친들을 관리하고, 관련 업무를 하던 관청으로 원래는 민속박물관과 건춘문이 있는 경복궁 동쪽편에 있던 것을 1980년대에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정독도서관 마당 동쪽편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는 육사 교정에 있는 삼군부 건물과 함께 조선시대 관청 건물 중 남아 있는 3동의 건물 중 하나로, 조선시대 관청의 모습을 실제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종친부 건물은 본채인 경근당과 별채인 옥첩당, 그리고 두 건물을 연결해 주는 복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근당은 앞면 7칸으로 목조건축물 가운데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건물이다. 경근당에는 국왕의 어진 등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 사무공간은 별채인 옥첩당에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종친부는 경복..

조선 관아 201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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