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진전되어 지방세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불교의 유행으로 불교식 장례문화인 화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많은 유물들이 껴묻거리로 묻혔던 거대한 고분은 더이상 조성되지 않고, 껴묻거리도 형식적인 모습으로 간소화 된다. 이런 연유로 경주로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은 그 이전시대에 비해서 많이 출토되지 않는 편이다. 반면에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사찰이 조성되면서 불전을 크게 건축하고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승려의 사리를 모시는 승탑이 많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시대 부산은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던 삼국시대와는 달리 중앙집권하에서 하나의 작은 지역으로 양주(지금의 양산)에 속한 동래군으로 편재되었다. 부산의 통일신라 유적으로 화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