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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건물 6

[창덕궁] 인정전(국보 225호), 창덕궁과 동궐의 중심이 되는 정전

창덕궁 인정전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버린 이후 구한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조선후기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창덕궁의 정전이다. 인정전은 태종 이방원이 상왕이 되었을 때 거처할 궁전으로 창덕궁이 건립될 때 정전으로 세워진 건물로 당시에는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규모였다. 임진왜란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버린 것을 궁궐 정전의 형식에 맞게 현재의 규모로 앞면 5칸의 2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대에 화재로 불타버린것을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인정전은 일제강점기에 순조가 거처하는 궁궐의 정전으로 바뀌면서 내부에 마루를 깔고 전등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인정전은 궁궐 정전으로 인정문과 회랑으로 둘러져 있어 조정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원래 상왕이 머무는 이궁으로 건립한 까닭에 경복궁에 ..

궁궐_종묘 2012.10.09

[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 후궁들의 거처로 사도세자가 태어나고 정조가 승하한 곳

창경궁 내전의 중심건물인 통명전과 양화당 일대는 대비를 비롯하여 왕실이 어른이 거처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궁궐에 속한 많은 후궁들과 궁녀, 어린 왕실 가족들이 거처하는 왕실의 생활공간으로 궁궐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선전기에는 경복궁이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이 되기도 했지만, 창덕궁에 국왕이 주로 머물렀던 조선후기에는 동궐 중 창경궁과 서궐인 경희궁 일대가 궁궐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이다. 궁궐에 머물렀던 사람들로는 국왕과 왕비, 세자와 가족들, 어린 왕자들, 많은 후궁들, 대비를 비롯한 선왕대의 후궁 등과 이들에 딸린 많은 궁녀와 왕을 호위하는 내시 등을 들 수 있으며, 대부분 이들은 창경궁에 거처했다고 할 수 있다. 대비의 거처로 주로 쓰였던 양화당 아래쪽에는 이 ..

궁궐_종묘 2012.09.16

[창경궁] 숭문당과 함인정, 국왕이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건물

숭문당은 법전인 명정전 뒷편에 임금이 거처하던 문정전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 숭문전이 그 역할을 하는 곳으로 건물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조용한 분위기로 학문과 국사를 논의 하기에 적당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국왕이 주로 거처하며 정사를 논의하던 곳은 창덕궁이며, 창경궁 정전과 편전은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편전의 부속건물이라 할 수 있는 숭문당은 창덕궁에서 성균관으로 가는 길에 있으며, 궁궐 후원과도 가까운 까닭에 창덕궁에 비해서 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국왕이 정치를 벗어나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기 좋은 분위기를 하고 있어 많이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조는 이곳에서 성균관 유생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함인정은 명정전..

궁궐_종묘 2012.09.13

[경희궁] 편전인 자정전(資政殿)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편전인 자정전이다. 편전은 국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던 등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경희궁은 국왕이 많이 머물렀던 궁궐이 아니었기때문에 편전이기는 하지만 숙종이 승하하였을 때는 빈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가 임시로 보관되기도 하였다. 자정전은 편전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로 행각으로 둘러져 있다. 우물마루가 깔려 있는 경복궁 편전인 사정전과는 달리 정전처럼 내부 바닥에 전돌이 깔려 있고, 건물을 크게 꾸며 놓고 있지는 않다. 광해군대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경희궁 편전인 자정전을 들어가는 출입문인 자정문. 규모가 크지는 않고 소박해 보인..

궁궐_종묘 2012.08.17

[경복궁, 조선의 법궁] 건청궁 곤녕합과 옥호루,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

경복궁 건청궁은 고종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경복궁 후원에 지은 사대부 저택 형태로 지어진 궁궐이다. 경복궁 후원에 지어진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연못인 향원지와 함께 건청궁은 번잡한 경복궁을 떠나서 고종이 경복궁 시절에 주로 머물기를 좋았했던 장소이다. 건청궁의 사대부 저택처럼 만들어진 건물로 궁궐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상을 두지 않고 있으며, 건물 규모도 그렇게 크게 만들지는 않았다. 고종이 어린시절을 민간에서 보내다 궁궐로 들어오게 되어서 그런지 궁궐생활에 꽤나 답답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건청궁에서의 고종의 생활 또한 그렇게 편안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이 곳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운을 겪게 된 장소이기도 하다. 건청궁 내전은 일반 민간 저택의 안..

궁궐_종묘 2010.09.11

[경복궁, 조선의 법궁] 건청궁 장안당, 고종이 머물던 공간

경복궁 북쪽편 향원정이 있는 곳에 위치한 건청궁은 경복궁 중건 후 새로 지어진 궁궐 건물이다. 국왕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일반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건물로 국왕이 머무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서재인 관문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곤녕궁 앞에는 연못인 향원지를 파고 서쪽편에는 서재인 협길당을 지어서 하나의 별궁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이다. 건청궁은 이런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구한말 정치적 혼란기의 중심이 되는 장소였고, 이 곳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살해된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다. 건청궁이라는 이름은 북경 자금성에 있는 황제의 처소인 건청궁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이며, 당시 고종의 생각에는 중국은 상당히 발전된 나라라고 생각했던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고종..

궁궐_종묘 201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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