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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특별전 4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산성도시를 세우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숙종대와 영.정조대에 남쪽 성벽 부근을 비롯하여 방어상 취약했던 지점에 옹성을 쌓는 등 많은 보완이 있었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한강 동남쪽 지역을 관장하던 광주목 관아를 옮기고 행궁을 건설하는 등 행정적으로도 보완이 있었다. 남한산성 행궁은 종묘와 사직을 갖춘 유일한 행궁으로 비상시 국왕이 거처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였다. 남한산성을 관장하던 광주목사는 원래부터 정3품의 높은 관직이었지만 병자호란 이후에는 광주부로 승격하여 종2품의 부윤 또는 정2품의 유수가 수장으로 있었으며,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군사조직인 수어청 수장인 수어사도 겸하게 되었다. 평사시 남한산성에는 약 천명 정도의 군사가 상주하였으며, 주민은 4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산성을 축..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병자호란 47일간 기록

남한산성은 수도를 방어하고 한강이남 주요 교통로를 지키기 위해 쌓은 천혜의 요새이지만, 병자호란 47일간 항전의 현장이자 치욕의 장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626년 청나라는 백마산성을 비롯하여 주요 공격로에 배치된 산성을 이용하고자 했던 조선의 방어전략을 무력화시키면서 이를 우회하여 무려 10여일만에 수도인 한양을 직접 공략하였다. 워낙 청나라의 전략과 군사적 능력이 출중하였던 까닭에 원래 강화도로 피신할 계획이었던 인조는 불가피하게 남한산성에서 농성을 하였으나, 식량의 부족과 청나라의 효과적인 공략으로 47일만에 항복하게 되었다. 병자호란은 17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크게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전쟁기간은 47일에 불과하기때문에 이 전쟁에서 개별 사건이나 인물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고, 당시 ..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남한산성의 축성과 무기류

남한산성은 광주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산성으로 삼국시대 한성백제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신라가 삼국통일 후 당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을 쌓은 주장성에서 오늘날과 같은 산성의 모습으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고려시대 대몽항전기에도 효과적으로 몽고군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천혜의 요새였다. 임진왜란 이후 북방에 등장한 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인조 2년부터 4년에 걸쳐 주변 지형에 따라 오늘날의 형태와 비슷하게 축조되었으며, 행궁과 관아시설, 4개의 대문과 장대 등을 갖추어 유사시를 대비하고 했다. 행궁은 서쪽의 청량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향으로 건축되었고, 중요 관청의 위치와 방향 및 도로 역시 행궁의 방향을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산성안에는 산성을 축조할 때 동원된 승려들..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통일신라시대 주장성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소재한 경기도박물관에는 2011년 가을에 '남한산성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 소재한 남한산성은 한강 이남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로 삼국시대 백제때부터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이 실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삼국통일 이후 문무왕대에 당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쌓은 주장성으로 둘레 8km 정도의 산성으로 현재 남한산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과 남한산성 행궁지에서 출토된 대형기와, 성벽에서 발견된 옛 성곽 유구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을 방어하기 위해서 남한산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천혜의 요새로 나라를 지키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도와 국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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