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숙종대와 영.정조대에 남쪽 성벽 부근을 비롯하여 방어상 취약했던 지점에 옹성을 쌓는 등 많은 보완이 있었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한강 동남쪽 지역을 관장하던 광주목 관아를 옮기고 행궁을 건설하는 등 행정적으로도 보완이 있었다. 남한산성 행궁은 종묘와 사직을 갖춘 유일한 행궁으로 비상시 국왕이 거처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였다. 남한산성을 관장하던 광주목사는 원래부터 정3품의 높은 관직이었지만 병자호란 이후에는 광주부로 승격하여 종2품의 부윤 또는 정2품의 유수가 수장으로 있었으며,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군사조직인 수어청 수장인 수어사도 겸하게 되었다. 평사시 남한산성에는 약 천명 정도의 군사가 상주하였으며, 주민은 4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산성을 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