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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 11

부여 부여현(扶餘縣) 관아 내아(內衙), 부여현감이 거처하던 살림집.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성을 지키던 부소산성 아래 부여읍 관북리는 옛 백제왕궁터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부여현 관아가,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부여박물관이 있었던 곳이다. 옛 부여박물관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조선시대 관아터에는 국왕의 궐패를 모시는 객사, 부여현감의 공식 업무공간인 동헌, 살림집인 내아(內衙)가 남아 있다. 내아(內衙)는 현감이 살던 살림집으로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본채만 남아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의 ‘-’자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그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백제시대의 주춧돌과 기단석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내아 뒷편에는 부여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모신 사당인 도영강당(道江影堂)이 있다. 옛 부여현 관아 건물터 동쪽편에 위치한 내아. ..

조선 관아 2015.06.01

대구 경상감영 징청각, 관찰사가 머물던 거처인 내아

대구시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은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관아건물들이 해체되면서 대구시와 경북도를 관할하는 많은 관청건물들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원래 경상감영에는 응향당, 제승당, 응수당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옛 관아 건물로 관찰사 집무공간이었던 선화당과 살림집인 징칭각이 남아 있다. 선화당 뒷편에 위치한 징칭각은 관찰사가 머물던 살림집으로 1601년(선조34)에 대구에 감영이 설치될때 세워진 건물로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06년(순조6)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일제감정기에 감영을 해체하고 감영에 경북도청이 설치될 때 많은 건물들은 없어졌지만 징칭각은 사무실로 개조하여 사용했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 이곳에 중앙공원을 조성하면 대청마루만 있..

조선 관아 2013.04.15

인천 화도진 관아, 구한말 한미수교통상조약이 체결된 역사적 장소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 있던 화도진은 구한말 병인양요를 거치고, 일본과의 조약으로 제물포가 개항된 이후 인천을 통해 드나드는 선박을 감시하고 해안방어를 위해 설치한 포대들을 관리하기 위한 관청이다. 진(鎭)은 주로 해안이나 내륙수운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조직으로 진영(鎭營)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화도진은 인천항과 주변 연안항로를 운행하는 선박을 감시하고, 외국 군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세운 군사조직으로 기존에 있던 진(鎭)과는 달리 규모가 큰 편이다. 이 곳에서는 1882년 고종의 전권대사였던 신헌과 미국의 전권대사 슈벨트 제독 사이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화도진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군제가 개편될 때 폐지되었다. 화도진 공원의 관아 건물은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1988..

조선 관아 2012.10.22

순천 낙안읍성 내아, 고을 수령이 머물던 살림집

낙안읍성은 전남 순천시 낙안벌판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옛읍성이다. 읍성에는 100여 가구의 주민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초가마을이 있고, 옛 낙안군 관아 건물인 낙악객사, 동헌, 내아, 문루 등이 남아 있다. 현재의 기준으로 지금 남아 있는 읍성내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조선시대 이곳은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이었던 약간 큰 규모의 고을이자, 이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읍성 관아 건물 중 객사는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하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동헌과 내아는 옛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건물이다. 그 중 내아 건물은 마당이 넓고, 본채 외에는 부속건물을 두지 않는 구조이다. 본채는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으며, 'ㅁ'자형으로 이루어진 다른 지방 관아의 내아와는 달리 개방된..

조선 관아 2012.10.18

원주 감영감영 내야, 강원관찰사가 머물던 생활공간

강원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원주시 도심에 소재한 강원감영 관아건물 중 남아 있는 내아 건물이다. 내아는 관찰사의 살림집에 해당하는 건물로 일반적인 지방관청의 내아와는 달리 건물규모도 상당히 작고, 단촐해 보인다. 내아가 위치한 곳도 관찰사 집무공간인 선화당과 바로 붙어 있다. 이는 일반적인 지방관아의 내아가 가족들이 거처하는 살림집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감영 내아는 관찰사가 머무는 숙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와 마찬가지로 직위도 높고, 나이도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부임지에는 단신으로 부임하고, 근무기간 동안 감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라 관할 구역에 있는 고을들을 돌아다니면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사 실제로 살림집의 필요성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감영 내..

조선 관아 2011.05.15

한국민속촌 관아 내아, 지방 수령의 거처

조선시대 관아 건물 중 지방 수령 사적인 거처로 살림집으로 지어진 건물을 내아 또는 내당이라고 부른다. 내아는 원래 고을 수령의 부인과 자녀들이 거처를 하는 곳이지만, 조선시대에 실제로 고을 수령이 가족과 함께 부임하는 경우는 드문 경우이며 주로 단신으로 부임하거나 나이가 어린 자식이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살림집인 내아 건물은 대부분 소박하게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내아에는 관청에 예속된 기생인 관기나 노비인 관노들이 함께 거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된 내아 건물은 앞면 5칸반의 규모가 큰 건물에 내외행랑채를 두고 있다. 본채 건물은 특이하게 'ㅓ'형 건물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데, 아마도 구한말에 많이 지어졌던 양반집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조선 관아 2011.04.25

김제 관아 내아, 동헌과 함께 남아 있는 고을 수령 살림집

김제 관아는 조선시대 관아를 구성하는 동헌, 내아, 정자가 남아 있고 부근에 관아에서 관리하던 중등교육기관인 향교가 있는 조선시대 지방의 행정 중심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역사적, 사회적 가치가 높아서 사적 482호로 지정된 곳이다. 김제는 정4품이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넓은 평야지대로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김제 내아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으로 김제군 동헌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ㄷ'자형 안채 건물만 남아 있는데, 현존하는 관아 건물 중 동헌과 내아가 같이 남아 있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현재의 규모로 봤을 때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이 작다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안채 외에도 여러동의 살림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

조선 관아 2010.11.23

부평도호부 청사 내아, 초등학교로 변한 전형적인 지방 관아

부평도호부는 지금의 인천 부평구, 계양구 지역을 다스리던 지방행정기관으로 북쪽 계양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부평은 인천에 속해있지만 원래는 인천과는 구분되는 별도의 행정기관으로 지금도 인천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구한말 경인철도가 부설되면서 부평의 중심이 현재의 부평역부근으로 바뀌었지만 실제로 부평의 중심지는 계산구 부평초등학교가 있는 옛 부평도호부 청사 주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가 구한말에 초등학교를 설치하면서 대부분의 지방관청을 초등학교로 바꾸었는데 대표적으로 여수의 좌수영객사인 진남관이 오랫동안 학교 건물로 사용되었고, 많은 곳의 객사건물들 또한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다가 헐어버리고 새로운 교사건물을 지어서 실제로 옛 관청건물 중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이 곳 부평도호부 청사도 많은 건..

조선 관아 2010.09.21

[나주목 관아] 금학헌, 나주목사내아

나주 객사 서쪽편 동헌이 있던 곳 안쪽에는 나주목사 내아인 금학헌이 자리잡고 있다. ㄷ자형 집으로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되며,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나주군수 사택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지금은 숙박과 교육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원형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내부에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주해 온 관청 건물이다. 나주 동헌 정문인 정수루를 들어서면 왼쪽편에는 시장이 있고, 오른쪽 편에는 나주목사 내아였던 금학헌을 볼 수 있다. 보통 권세가의 경우에 솟을 대문을 많이 사용하는데 비해 목사 내아는 솟을대문없이 일반적인 출입문을 사용한다. 나주목사 내아는 ㄷ자형 건물로 중앙에는 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방과 부엌이 있다. 나주목사 내아 건물 가운데 부분. 3칸의 마루가 중앙에 있다. 양쪽 건물에..

조선 관아 2010.09.21

[서산 해미읍성] 내아(內衙), 해미 현감겸영장이 거주하던 관사

해미읍성 동헌 서쪽편, 객사 뒷쪽에는 해미 현감겸영장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인 내아가 있다.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200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문화재적인 가치보다는 조선시대 관청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는 건물이다. 전면5칸의 일자형 주택으로 부엌과 3개의 방,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절제사라는 높은 지위에 비해서 관사 건물은 소박하고 단촐하게 지었다. 해미 현감겸영장 숙소인 내아. 동헌에서 내아로 들어오는 출입문. 작지만 솟을대문으로 해 놓고 있다. 내아는 동헌보아 아래쪽에 있어 계단으로 내려온다. 내아 출입문에서 본 모습 부엌 내아 건물에는 3개의 방이 있고, 대청마루는 없는 반면 사랑방이 옆으로 있다. 내아 부속건물로 유일하게 창고가 있다. 부지 면적..

조선 관아 2010.09.21

[화성행궁] 화성유수 거처인 복내당, 대장금 촬영지

화성행궁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이자 실제 이 곳을 집무를 보던 화성유수 가족이 거처하던 내아이다. 화성행궁의 성격자체가 국왕이 잠시머무르는 행궁의 성격과 수원화성을 책임지던 화성 유수의 집무공간이었던 까닭에 이 곳 화성행궁 복내당은 화성유속 가족들이 거처하던 주택과 행궁을 방문하는 국왕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숙식을 지원해야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래서 복내당은 행각들이 상당히 많고, 국왕이 잠시 거처하던 봉수당과 장락당이 바로 붙어 있다. 아마도 정조대왕 시절에는 화성유수부 가족들이 거처하는 공간이었지만 실제로 거처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국왕을 보필하는 인원들이 이 곳 복내당에 머무러면서 행사를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화성유수 내아인 복내당. 건물자체로는 커지 않고 일반 저택과 비슷한 형..

조선 관아 201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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