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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고분군 6

[부여박물관] 능산리 절터 출토유물에서 보여지는 백제의 대외교류

백제는 성왕대에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빈번하게 교류하면서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양나라 무제를 위한 대통사를 창건하였으며 유학에 정통한 학자와 장인,화가 등을 초빙하기도 하였으며, 불교경전 들을 얻어 오기도 했다.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능산리사지에는 당시 중국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 남조와 백제와의 교류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대 이후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능산리 절터에서는 수당의 영향을 받은 흑갈유 벼루나 자기편을 비롯하야 남조에서 많이 사용한 호자, 서역과 북위에서 많이 만들어진 소조상을 비롯하여 서역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제품들도 출토되고 있다. 또한 능산리절터에서는 백제에서 사용된 항아리, 사발, 등잔,..

지역박물관 2012.06.05

[부여박물관] 위덕왕과 능산리사지,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고분과 백제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사지는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절터이다. 백제는 사비성을 도읍으로 하던 시기에 많은 사찰들을 건립했지만 그 중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이다. 이 사찰은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지어졌다는 의견되 있지만, 대체로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원 원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여러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를 비롯하여,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

지역박물관 2012.06.01

부여 백제문화단지, 능산리절터에 있던 사찰을 재현해 놓은 능사

능산리사지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소재한 백제의 마지막 왕릉이 있는 능산라고분군 옆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성 도성인 부여나성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으로 다른 왕릉들과 마찬가지로 백제의 큰 위협이었던 신라를 비롯한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주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능산리사지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능사로 이 곳에서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다.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사찰의 규모는 황룡사나 익산 미륵사에 비해서 작은 편으로 선왕들의 명복을 비는 원찰 또는 능사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사찰이라고 할 수..

부여 능산리사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백제 성왕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찰

백제의 대표적인 고분군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수도 사비성을 둘러싸고 있던 부여나성 사이의 공간에 위치한 능산리사지이다. 이 절터에서는 1990년대 이후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이 절의 창건연대와 내력이 적힌 사리함인 백제창왕명석조사리함이 발굴된 곳이다. 1990년에 오랜 기간에 걸쳐서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절터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정비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보이며, 현재 보수공사의 모습의 보면 옛절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곳 능산리사지는 전형형적인 백체 사찰의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1탑, 1금당과 강당,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의 규모는 익산미륵사지 등에 비해 크지는 않은 편이며, 능산리 고분군을 지키는 원찰의 의미를 갖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현..

절터 2010.10.01

부여 능산리 고분군, 백제 마지막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학자들에 의헤 6기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1965년에 다시 2기의 고분이 발견되어 총 8기의 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산리 고분군들은 일찍 그 존재가 확인되어서 도굴이 먼저 이루어졌기때문에 발굴시 출토유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능산리 고분군은 능산리형돌방무덤으로 불리는 백제후기에 조성된 대부분의 무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아마도 당시에 법률적으로 봉분을 조성하는데 규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최근에 조성한 의자왕 부자의 가묘까지 합쳐서 백제왕릉원이라고 불리고 있다. 부여 능산리고분군 전경. 능산리산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

부여 능안골 고분군, 백제 후기 귀족들의 무덤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산리고분군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볼 수 있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안골 고분군이다. 이 고분들의 모양새를 보면 최근의 무덤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때문에 지나가다 보면 어느 집안의 선산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로 고분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는 무덤들이다. 모두 60여기의 고분이 있다고 하며, 많지는 않지만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고분군 앞에 있는 안내표지판을 보면 겉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내부는 다양한 형태의 석실들로 이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능안골 고분군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평이하게 생긴 무덤처럼 보인다. 약간 시대가 앞선 가야나 마한지역의 경우 귀족들이나 왕이나 큰 구분이 없이 거대하게 봉분을 조성하고, 부장품도 풍부한 경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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