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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4

논산 돈암서원(사적383호), 김장생을 모시는 기호지방을 대표하는 서원

논산 돈암서원은 조선 중기 유학자로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김장생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1660년(현종1)에 사액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돈암서원은 보물로 지정된 강당 건물인 응도당이 출입문 왼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출입문 정면에 강학공간인 또다른 강당인 양성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양성당 왼쪽편에 장판각과 정의당이, 오른편에는 고직사가 배치되어 있고 뒷편에 사당인 유경사를 두고 있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사당에는 김장생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인 김집,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과 송준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원래 돈암서원은 인근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지대가 낮고 홍수때 물이 잠기는 경우가..

논산 연산 고정리마을,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조선중기 유학자 김장생 세거지

충남 논산군 연산면 고정리마을은 지금은 황산벌참살이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마을로 조선중기 이후 조선사회의 주류세력이었던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사계 김장생의 세거지이기도 하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제자이자,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의 스승이기도 한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이이를 모신 자운서원을 비롯하여 논산의 돈암서원 등 그를 모시는 서원이 전국각지에 있다. 연산 고정리마을은 김장생의 선조이 김약채가 조선초에 이곳에 자리잡은 마을로 세조대의 김국광에 이르러 많은 공을 세워 훈구공신의 반열에 오른 집안으로 대대로 높은 벼슬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유력 가문의 세거지이지만, 후손들이 주로 서울에서 벼슬을 많이 해서 그런지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안동 하회마을처럼 후손..

고택_정원 2012.02.10

논산 모선재(慕先齋), 조선중기 유학자 김장생의 선조를 모시기 위한 재실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중기 기호지방 유학자를 대표하는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재실인 모선재(慕先齋)이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한옥으로 전통 한옥 건물 중 현재까지 많이 남아 있는 형태 중 하나이다. 이 재실은 18세기에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인근에 있는 사계 김장생을 모신 돈암서원이 지어진 이후에 그의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민도리집 한옥으로 오론쪽 1칸은 부엌, 가운데 2칸은 온돌방, 왼쪽 1칸은 대청마루를 하고 있으며,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있다. 건물 왼쪽에 앞편 3칸의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진 별도의 건물이 있고, 출입문 솟을대문 양쪽은 광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보물 1569호), 노강서원 강당과 함께 기호지방을 대표하는 서원 건축

돈암서원은 율곡 이이 선생의 제자로 조선중기 유학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김장생을 중심으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기 있는 서원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 때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로 노강서원과 함께 기호지방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던 곳에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원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었던 곳에 후학들이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려 1634년(인조12)에 건립한 서원이다. 보물 1569호로 지정된 돈암서원 강당인 응도당은 서원에서 유생들이 학문을 논하던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사당과 나란히 배치된 다른 서원이나 향교와는 달리 직각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은 1880년에 돈암서원이 현재의 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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