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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11

진천 농다리, 자연석으로 교각을 쌓은 전통 돌다리

진천 농다리는 진천읍을 지나 청원군을 거쳐 금강에 합류하는 미호천(세금천)을 건너는 오래된 돌다리이다. 다리가 있는 진천군 구곡리 마을은 상산임씨의 세거지로 이 다리는 고려 고종때 권신이었던 임연이 놓았다고 전해지는 다리라고 전한다. 자연석을 축대처럼 쌓아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장대석을 상판으로 올려놓은 구조로 그 형태는 일반적이 돌다리와 비슷하나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아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다리는 길이 93.6m, 너비 3.6m이다. 교각 사이의 폭은 80cm 정도이며, 원래는 28칸의 교각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24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자연석으로 쌓은 교각은 양끝을 뾰족하게 하여 물이 잘 흐르게 하고 있다. 천년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보수하면서 사용해 왔다고 하며, 웬만한 장마에도 무너지지..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홍예

보물 563호로 지정된 여수 영취산 흥국사 입구 계곡에 놓여진 대표적인 아치형 돌다리인 흥국사 홍교이다.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홍예로 이루어진 돌다리로 현재 알려진 다리 중에서는 아치의 높이가 가장 높고 길다.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는 산중 사찰 입구 계곡에 홍예 다리를 세운것은 바깥세상과는 다른 부처의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남아 있는 홍예 돌다리 중 상당수는 사찰입구에 세워진 다리이다. 이 다리는 계곡 양쪽 바위에 기대어 무지개 모양으로 잘 다듬은 화강석을 이용하여 홍예를 쌓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메꾸어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홍예의 한가운데에는 양쪽으로 용머리 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으며, 홍예 천장에도 물을 향하고 있는 용머리 조각이 있다. 여수의 명..

[창덕궁] 금천교 (보물 1762호),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

창덕궁 금천교(보물 1762호)는 태종 11년인 1411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돌다리이다. 창덕궁 앞을 흐르는 시냇물은 경북궁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고, 금천교는 정전인 인정전 정문인 인정문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조 바깥족 진선문 앞에 위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궁궐에 들어갈 때는 꼭 시냇물을 건너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시냇물이 풍수설에 의한 명당수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궐내각사 앞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금천교를 지나서 외조 출입문인 진선문 앞에 이르게 된다. 이는 기존의 법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적절히 순응하는 창덕궁만의 건물배치를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 금천..

창경궁 옥천교(보물 386호), 금천을 건너는 돌다리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보이는 장면은 금천을 지나는 옥천교와 정전인 명전전 출입문인 명정문, 홍화문과 명정문 사이의 답도, 명정문 사이로 보이는 조정과 명정전의 웅장한 모습일 것이다. 그 중 옥천교는 궁궐 앞을 흐르는 명당수인 금천을 건너는 돌다리로 보물 386호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금천은 국왕이 사는 궁궐과 바깥세상을 구분하는 상징적의 의미를 갖는 작은 개천으로 중국 자금성에서는 금수(禁水)라고 부르며, 조선에서는 금천(禁川)이라고 이라고 부른다. 창경궁 금천은 동궐의 후원에 있는 반도지, 춘당지 등을 거쳐서 창경궁 외조를 지나 청계천으로 흘러 내려간다. 보물 386호로 지정된 옥천교는 궁궐 입구 금천을 지나는 전형적 금천교의 형태로 2개의 아치를 놓고 그 위에 판석을 올려 ..

청계천 광통교, 종로와 남대문을 연결하는 도로 놓여 있었던 큰 다리

광통교는 원래 이름은 큰다리라는 뜻으로 대광통이었고 후대에는 광교로 불리웠다. 서울 종로에서 남대문으로 연결되는 도로에 놓여진 다리로 조선시대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들 중 가장 큰 다리였다고 한다. 이 다리는 조선 태조때 토교로 만들었다가 태종대에 큰홍수로 무너진 것을 석교로 다시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복원된 광통교는 원래의 자리는 아니고, 상류방향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광통교는 종로와 남대문을 연결하는 큰 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8차선은 큰 다리가 새롭게 놓여져 있다. 현재 광통교가 있는 곳은 청계천이 시작하는 청계광장과 가까운 곳으로 청계천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로 청계천을 이용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광통교를 축초하는데에는 조선 태조의 계비로 태종과..

안양 만안교, 정조대왕 화성행차를 위해 놓은 조선후기 홍예 돌다리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삼막천에 세워져 있는 조선후기를 대표한 돌다리인 만안교이다. 이 다리는 정조대왕이 수원 화산에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고 참배를 자주하였는데 이를 화성행차라고 한다. 원래는 과천을 거쳐 수원으로 가는 길이 일반적인 경로인데 고갯길이 많아서 현재의 경부선 철도길과 비슷한 경로로 시흥을 거쳐서 수원으로 행차하였다고 한다. 이때 행차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다리가 안양 만안교이다. 조선후기 부흥기라고도 할 수 있는 영.정조대에는 조선사신들이 북경을 오가는며 청나라의 문물을 많이 받아 들였는데, 만안교 또한 청나라의 다리 건축방식을 참조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 석재로 쌓은 만안교는 교각사이에 아치형의 홍예를 하고 있어 무지개다리 또른 구름다리라고 한다. 다리의 폭은 마차2개가 교차하여 ..

보령 대천 한내 돌다리, 대천천을 건너는 조선시대 돌다리

보령시내를 관통해서 흐르는 대천천 하류에 있었던 조선시대 돌다리인 '한내 돌다리'이다. 지금은 원래의 위치에서 옮겨져 대천천 고수부지 공원에 복원되어 있다. 이 다리는 대천천 이남지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교통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다리라고 한다. 폭 2m 정도로 우마차가 지나갈 수 있는 조선시대 교통로에서는 중요했던 다리이다. 17세기경에 만들어진 한내 돌다리는 현재는 12칸이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긴다리로 추정되고 있다. 큰 화강석을 가공한 장대석으로 받침돌과 상판을 만들었으며, 상당히 교각의 높이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상당히 튼튼해 보이는 다리이다. 장대석으로 교각과 상판을 단순하게 만든 다리로 토목기술적으로는 우수하다고 보기 힘든 평이한 다리이다. 1992년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석재..

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 1336호), 홍예가 아름다운 돌다리

고성 건봉사는 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시대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조선 세조가 직접 방문하여 원찰로 지정한 사찰로 왕실과 관련이 많은 사찰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금강산 유람길에 있었던 명소이자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한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던 건봉사 전각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리고 지금은 옛 사찰의 흔적으로 불이문과 능파교만이 남아 있다. 보물 1336호로 지정된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불이문 옆 능파교신창기비에 적혀 있는 기록에 의하면 숙종 30년인 1707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산중 계곡을 건너기 위해 설치된 다..

고성 육송정 홍교(보물 1337호), 대표적인 조선시대 아치형 돌다리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에 위치한 보물 1337호로 지정된 육송정 홍교는 아치형으로 쌓은 대표적인 조선시대 돌다리이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 경계에 위치한 다리는 조선시대 강릉 이북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던 간성군 관아에서 조선시대 4대 사찰이었던 금강산 건봉사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립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슷한 형태의 다리인 건봉사와 홍파교와 비슷한 시기인 조선 숙종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다리는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을 건너는 다리로 길이 12.3m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석축을 쌓아 만든 홍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로의 폭은 약 2m 정로로 우마차 1대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이다. 육송정 홍교가 있는 ..

서울 살곶이다리 (전곶교, 사적160호), 조선전기에 만들어진 가장 큰 다리

살곶이는 중량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한양대학교 동남쪽편 개울 부근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곳 살곶이 부근 뚝섬지역에 풀이 많아서 국가에서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었다고 하며, 기병들의 열병식이 이 곳에서 행하여졌다고 한다. 조선초 태종이 광나루에서 매사냥을 하고 살곶이에 있는 낙천정과 풍양이궁을 수시로 행차했기대문에 세종이 이 곳에 다리를 놓게 하였으나 완성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서울동쪽과 동남쪽지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주요 교통로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길이어서, 많은 사람의 민원에 의해서 성종때 이 다리를 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하천을 보면 강폭이 조금 있고, 물도 깊어 보이는데 배로 건너기도, 걸어서 건너기도 애매한 지형을 하고 있어 다리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보..

북경 이화원 (颐和园, I-ho Yuan), 배운전(排雲殿) 돌다리

이화원 배운문을 들어서면 중국 전통의 궁궐 격식에 따라 동.서로 흐르는 물이 있고, 그 위를 건너는 돌다리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한 석조 건축물로서 많은 장식들이 꾸며져 있다. 하단의 아치형을 이루는 석축은 하중을 지지하기 위한 구조물로서 화강석으로 만들고, 난간을 비롯한 장식들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금천이라고 불리는 작은 하천(사실은 연못이지만) 위로 아치형의 돌다리가 놓여 있다. 이 것은 궁궐이 외부세계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돌다리 아래 석축은 튼튼하 화강석으로 쌓고 있으며, 아치를 비롯한 장식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물에 비친 아치형이 상당히 아름답다. 돌다리 상부는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한 대리석 난간이 있어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중국(China) 2009.08.2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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