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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덧널무덤 2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성립, 무덤의 변천과 껴묻거리용 와질토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삼국시대 이전의 유물들은 대부분 지배층의 무덤인 고분 발굴을 통해서 출토된 것들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삼한, 가야, 삼국의 고분들은 그 형태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이며 가야를 제외하고는 초기에는 대부분 평지에 무덤을 조성하고 있으며, 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구릉에 무덤을 조성하고 있다. 무덤은 초기에는 현재와 비슷한 나무로 된 널무덤이 주를 이루었으며 후대에 들어서면서 돌무지 덧널무덤,굴방을 만드는 석실분으로 변했으면 특이한 형태로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독무덤의 형태를 한 곳도 있다. 후대에 화장이 성행하면서 뼈항아리를 묻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의 껴묻거리 형태로 매장되었는데 묻힌자들이 권위와 지위를 말해 주고 있다. 금관을 ..

지역박물관 2011.10.01

경주 금척리 고분군(사적 43호), 경주 외곽에 소재한 삼국시대 신라 귀족의 무덤

사적 43호로 지정된 금척리고분군은 대구와 경주를 연결해주던 옛 국도가 지나가는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에 소재한 삼국시대 신라의 고분군이다. 건천읍소재지에서 경주방향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 이 고분들은 경주 시내 평지에 위치한 고분들보도 그 규모가가 작아서 삼국시대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척리 고분군은 박혁거세왕이 병을 고칠 수 있는 하늘로 부터 받은 금척을 숨기면서 40여기의 봉분을 조성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금척리 고분군은 모두 50여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현재 봉분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32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1950년대에 국도를 개설하면서 동서로 나누어져 있으며, 당시 훼손된 2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다고 한다. 그 뒤 몇차례 조사기 이루어지기는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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