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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 3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230호), 목은 이색이 대장경을 인쇄하고 대장각을 세운 내력을 적은 비석

여주 신륵사 경내 동쪽편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남아 있는 비석인 보물 230호로 지정된 '신륵사 대장각기비'이다. 이 비석은 고려말 유학자이자 조선의 건국에 반대했던 대표적인 충신이었던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장경을 인쇄하고 보관하기 위해 대장각을 세우면서 그 내력을 적은 비석이다. 비석은 연꽃무늬를 새긴 대석위에 대리석에 글씨를 적은 비몸을 세우고 양쪽에 기둥을 댄 다음 그위에 지붕을 놓은 형태로 조선초기 비석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대장경을 보관하던 대장각은 2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아마도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정자처럼 지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앞쪽에 세워진 다층석탑, 삼층석탑과 함께 신륵사를 대표하는 건물로 이정표 역할을 했던 건물이었던 것..

[중앙박물관 고려실] 개혁군주 공민왕

고려말 공민왕은 대표적인 개혁 군주로 원나라가 쇠퇴해자 친원파를 숙청하는 한편 영흥 일대를 회복하는 등 반원 정책을 추진하고 여러 제도적인 면을 개혁하였다. 물론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고려는 멸망하게 되었지만, 그의 정신은 후대 사람들이 높이 사서, 그의 신당이 조선 종묘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조선의 건국이 후손이 없었던 공민왕을 승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원나라 노국공주와의 깊은 부부애로 인해서 그 초상화는 노국공주와 함께 그려져 있다. 또한 공민왕의 지원을 받은 목은 이색을 중심으로 한 성균관 학자들의 성리학에 대한 연구는 후에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개혁군주 공민왕 원나라가 정치 불안 등으로 쇠퇴해 가자 고려 공민..

중앙박물관 2012.02.20

영덕 영해면 괴시마을, 목은 이색 선생 유적지/생가터

영덕 북쪽인 영해면 소재지에서 대진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李穡)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고색창연한 영양 남씨 집성촌인 괴시전통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괴시마을의 형세로 보아서는 이 곳이 이 지역에 중심적인 부호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똑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괴시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곳이 목은 이색선생의 생가터이자 유적이고, 지금은 영덕군에서 그 유적지를 잘 조성해 놓고 있다. 영덕 괴시마을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목은 이색선생 유적지 지금 재현해 놓은 목은 이색 선생 생가의 모습. 옛날 사람들의 살던 한옥들은 예상외로 규모가 크지 않다. 목은 이색 선생 생가터임을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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