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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4

[부여 박물관] 백제 중흥을 꿈꾼 서동요 주인공 백제 무왕

성왕이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긴 이래로 백제는 약 100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존재했었느데, 성왕, 위덕왕, 무왕, 의자왕 재위기간이 대부분으로 그 중 서동요 설화로 잘 알려진 무왕이 재위 기간 40여년으로 가장 길었다고 할 수 있다. 무왕대에는 신라와 자주 충돌하였며,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수나라.당나라와 교류하였다. 무왕대에는 신라 공격에 자주 군대를 동원하고 미륵사나 궁궐 남쪽 연못(궁남지)를 파는 토목공사를 많이 일으녀 국력이 많이 소모되어 백제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제 무왕과 관려된 유적으로는 삼국사기에 무왕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왕흥사가 있는데, 이 사찰은 최근에 출토된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출토된 청동사리함에 이 사찰이 위덕왕대에 577년에 세워졌다고 하며, 죽은 그의 아들을..

지역박물관 2012.06.08

익산 미륵사지 절터, 백제 최대 사찰의 흔적

익산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이 세운 당시 최대의 사찰로 황룡사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미륵사지의 구성은 독특하게 3개의 탑과 3개의 가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면부에는 신앙의 중심이 되는 탑이 중앙에는 목탑, 동.서쪽에는 석탑이 세워져 있고, 그 뒷편에도 3개의 금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이 있고, 그 뒷편으론 3개의 승방이 자리하고 있다. 승방의 규모로 볼때에도 상당한 인원들이 이 곳 미륵사지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그 규모가 조금씩 축소되어오다 없어진 사찰로 보인다. 미륵사지 동탑과 나란히 있는 목탑지. 미륵사지 목탑터는 이 사찰터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앙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목탑지 기단은 북편 중앙의 계단석, 기단 ..

절터 2010.10.01

익산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익산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는 이 절터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미륵사지에서는 건물의 규모를 말해주는 거대한 치미를 비롯하여 금동향로와 다양한 유리, 철, 청동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최근에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굴된 사리장엄은 아직 보존처리 중인 관계로 전시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에 전시된 유물만으로도 익산의 미륵사가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승방터에서 발굴된 치미. 치미는 고려시대 이후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건축요소로 건물을 장식하는 기능이 있다.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치미가 유명하며, 지금도 중국이나 일본 사찰 건물에는 치미를 볼 수 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금동향로 절터에서 발굴된 다양한 기와들 미륵사지에서는 다양한 유리가 발굴되고 있는데, 백제의 유리 가공..

지역박물관 2009.12.16

[익산 미륵사지] 2개의 당간지주

익산 미륵사지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9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2개의 당간지주가 있다. 원래 이 곳 미륵사지에 있던 2개의 석탑 앞쪽에 각각 하나씩 당간지주가 있는데 다른 사찰과는 다른 형식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 당간지주가 백제시대부터 있던 당간지주는 아니고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당간지주와 소수서원 입구에 있는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앞쪽에 위치한 당간지주. 전형적인 통일신라 당간지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장식이 거의 없지만 균형미가 있어 보인다. 미륵사지 서쪽 당간지주 기단부. 측면에서 본 당간지주 미륵사지 안쪽에서 본 당간지주 미륵사지 동쪽편 석탑 앞에 서 있는 당간지주 미륵사지 동쪽 당간지주 기단부 당간지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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