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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12

북한산성(사적162호) 중성문, 대서문과 행궁 사이에 쌓은 중성 출입문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서문과 북한산성 마을이 있던 등운각갈림길을 지나서 계곡을 따라서 등산로를 한참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성문이 중성문이다. 중성문은 북한산 노적봉과 중취봉 사이에 쌓은 중성에 설치된 성문이다. 이 중성문 안쪽이 북한산성 내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 별도로 중성을 축조한 이유는 이곳이 지형이 평탄하여 대서문이 적에게 공략당할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 중간 병목같은 위치에 중성을 쌓고 성문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중성문을 들어서면 북한산성 계곡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설치된 정자인 산영루를 비롯하여, 북한산성을 거처간 관리들의 공덕비들이 세워져 있는 비석군이 있고, 그 안쪽에 국왕의 피신처로 마련한 행궁을 비롯하여 식량과 무기를 저장하던 창고, 북한산성 승병들을 지휘하던 ..

서울 북한산성, 계곡 입구에서 등운각 갈림길까지 등산로와 북한동 주민들이 살았던 흔적

북한산 등산로 중 가장 많은 등산객이 이용하는 길은 아마도 북한산성계곡이 시작되는 북한산성입구일 것이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북한산성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등운각 갈림길에서 백운대로 오르는 길과 계곡을 따라서 계속 올라 대남문 부근 문수봉을 비롯하여 북한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봉우리들을 오를 수 있다. 등산로는 북한산계곡을 따라서 오르는 길과 북한산성 정문인 대서문을 통해서 오르는 자동차길을 이용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등산객은 계곡의 정취를 느끼면서 걷기 위해 계곡길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산성입구에서 등운각 갈림길까지는 2011년 이지역이 정비되기 전까지는 많은 주민들이 살았던 산성마을이 있었다. 대체로 숙종대 북한산성이 건설되면서 산성내 병사들이 주둔하고 승병들을 위한 크고 작은 사찰들이 생기..

한국의 풍경 2013.06.04

서울 북한산성계곡, 등운각 갈림길에서 행궁터까지

북한산성계곡은 문수봉에서 발원하여 북한산 서쪽으로 흘러내려오는 약 6 km에 이르는 큰 계곡으로 북한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북한산성계곡을 따라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와 함께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로 북한산에 산재한 대부분의 봉우리들과 연결되는 큰 길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숙종대 한양의 취약한 방어력을 보완하기 위해 쌓은 북한산성을 이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한 거대한 산성이며, 계곡 주변에는 비상시 국왕이 머물 수 있는 행궁을 비롯하여 산성을 지키는 군사들이나 관료들이 머물고, 식량 등을 저장하는 관아 건물, 북한산성을 지키고 성곽을 수리하기 위해 동원된 승병들을 위한 많은 사찰들이 계곡 주변에 산재해 있다. 북한산성은 사방으로 여러 성..

한국의 풍경 2013.05.24

북한산 태고사, 고려말 원증국사 보우가 창건한 사찰

북한산성내 행궁 아래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태고사는 고려말 공민왕때 국사를 지낸 원증국사 보우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이 절은 북한산에 있던 중흥사 주지로 있던 원증국사 보우가 개인적으로 수도하기 위해 세운 작은 암자로 그가 입적한 이후 태고암이라 불렀다. 북한산 봉우리들과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태고사는 고려말 이후 거의 폐사되었다가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을 쌓고 관리하기 위해 승병들이 거처할 도량으로 중흥사와 함께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131칸의 비교적 큰 규모로 중창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된 이후 대웅전과 요사채만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태고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북한산성내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신도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사찰..

전국 사찰 2013.05.15

북한산 중흥사지, 북한산성 승군을 총지휘한 승대장이 머물던 사찰 절터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있던 중흥사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사찰 중 가장 큰 사찰이었다. 중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원증국사가 머물때 중수하면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리 크지 않았던 사찰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숙종이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산성을 지키고 수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승군들이 머물 수 있도록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사찰이 1915년 대홍수로 무너지기전까지 136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중흥사에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11개의 사찰을 지휘하던 승대장이 머물던 승영으로 승대장은 전국 승병을 지휘하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고 한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로 호국불교로서 ..

절터 2013.05.13

북한산성 행궁터, 산성에 마련한 국왕의 임시 거처

조선시대 행궁은 왕이 임시로 머무는 별궁이다. 행궁은 전쟁 등 국가 비상상황시 왕이 잠시 피난할 때 머물거나 지방 순시나 휴양 등을 위해 지방관아에 설치한 임시 처소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행궁으로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조성한 강화행궁, 남한산성 광주행궁 등이 있고, 왕이 온천에서 휴양을 하기 위해 설치한 온양행궁과 이천행궁, 왕이 능묘에 참배를 하기 위한 화성행궁, 전주행궁 등이 있다. 행궁은 기본적으로 지방관아 기능을 유지하면서 국왕의 침소, 수행원을 숙소, 임시정부를 유지하기 사무실용도 건물 등을 추가하여 일반적인 관아보다는 건물규모가 큰 편이다. 또한 강화행궁의 규장각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서나 서적 등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두기도 한다. 서울 북한산성내 동장대가 바라 보이는 상원봉 아래..

조선 관아 2013.05.08

고양 북한산 태고사 원증국사 승탑(보물 749호)과 탑비(보물 611호)

북한산성 계곡에서 중심이 되는 행궁터 아래에 위치한 태고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승탑과 탑비가 있다. 승탑의 주인은 고려말.조선초에 중흥사 머물면서 공민왕의 왕사를 지내는 등 큰 영향을 미쳤던 승려 보우이다. 그는 어린나이에 양주 회암사에 출가하여 여러 사찰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중국에 유학을 하기도 하였다. 공민왕때 신돈의 뒤를 이어 왕사가 되었으며, 고려 우왕때 이곳 태고사에서 입적하였다고 한다. 태고사는 원래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중흥사에 딸린 작은 암자로 지금도 불전과 요사채를 갖춘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사찰은 태고사 아래쪽에 위치한 중흥사로 고려말에 크게 중수하였다고 하며,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이 축조.보강되면서 승병들이 ..

북한산성 대서문, 산성 정문격으로 제일 낮은 곳에 설치된 문루

북한산성에 설치된 14개의 성문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대서문이다. 이 성문은 고양시 북한산계곡을 통해서 북한산을 등반하는 가장 쉬운 코스 중 하나로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서울 북쪽 험준한 북한산 능선을 따라 쌓는 북한산성 중에서도 방어상 제일 취약한 곳으로 여겨졌으며, 일상적으로 북한산성을 출입하는 통로이기도 한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서문에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면 중성문을 만들어 놓고 있다. 대서문은 잘다듬은 크고 튼튼한 화강석으로 석축과 홍예를 쌓고 그 위에 문루를 올려놓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성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홍예좌우에는 동물머리 모양의 빗물을 빼내는 석누조가 설치되어 있고, 문루 앞쪽에는..

서울 북한산성,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

북한산성에는 지금은 고양시쪽 입구에만 일부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남쪽의 대남문은 아주 높은 지대에 성문이 있다. 북한산성 성벽을 따라서 서울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으며, 삼국시대 한강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유용했으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군사적으로는 별로 유용성을 보여주지 못한것 같아 보인다. ☞ 북한산성 주요 유적지 1. 대남문, 청수동 암문, 문수봉, 2. 성벽을 따라 걷는 대성문, 대동문 3. 북한산 계곡에 자리잡은 중성문, 4. 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비봉 북한산성의 남문인 대남문입니다. 문수봉 아래 구기동으로 가는 고갯길을 막고 있습니다. 멀리 비봉 근처에서 바라본 대남문 북한산 동쪽의 대동문 주위 북한산성의 정문격인 대서문의 취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계곡 한가운데 세운 중성문 북한산성이란 이름은 삼국..

[서울 북한산성] 대동문에서 대성문까지

북한산성 중에서 성벽이 능선을 따라 가장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는 구간입니다. 정릉, 수유리 등 서울의 동쪽에서 북한산을 등반하게 되면 통과하게 되는 성문들입니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산성의 성벽을 느낄 수 있고 서울의 동쪽 부분의 경치를 멀리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북한산성 안쪽에서 본 대동문입니다. 북한산성 바깥쪽에서 본 대동문입니다. 대동문 바깥 쪽에서 본 성벽 북한산성 성벽 대동문 현판과 문루. 북한산성 성곽길. 이런 형태로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있다. 이 성곽은 워낙 높은 능선에 있어서 쌓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군데군데 위치한 치. 가파른 언덕길. 능선을 따라서 이어진 북한산성 성벽, 문수봉까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성벽위서 내려다본 서울시가지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대동문..

[서울 북한산성] 대남문, 청수동 암문

북한산성은 서울의 북쪽에 자리한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이다. 그래서 북한산성의 성벽들은 대부분 해발 500m이상의 능선을 따라서 쌓았고 그 중 구기동을 통해서 올라가면 문수봉 옆 고개길에 있는 대남문을 만날 수 있다. 북한산성 성문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대남문입니다. 문수봉 바로 아래에 있는 고개에 있습니다. 성문을 통해 등산객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남문 성문 대남문 문루와 현판 문수봉 방향으로 성벽이 계속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동문에서 대남문으로 연결된 성벽, 이 쪽 성벽이 제일 완벽하게 북한산성 성벽을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북한산성 성벽 대남문 성벽 위의 풍경입니다.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북한산을 감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먼곳에서 바라본 대남문입니다 문수봉과 비봉 사..

서울 북한산성 비봉, 진흥왕 순수비 유지 (사적228호)

북한산 봉우리중의 하나인 비봉은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고 진흥왕이 순수비를 세운 곳이다. 그 만큼 한강유역을 장악함에 있어 북한산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비봉은 산봉우리가 험해서 올라가기는 쉽지 않은 곳이라 아래에서만 감상해 보았다. 비봉 아래에서 본 진흥왕순수비(복제품) 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오르기는 약간 위험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비봉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에 세워졌던 신라 진흥왕비의 옛 자리이다. 북한산비는 비석을 세운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져 오다가 19세기 전반에 추사 김정희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북한산비에는 진흥왕이 북한산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나온 여러 고을에 세금을 면제해 주고, 죄수들을 석방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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