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불교 16

불교 석굴사원(石窟寺院)

석굴사원(石窟寺院)은 바위 굴을 뚫고 공간을 조성한 사원으로 다양한 종교에서 석굴사원을 조성했다. 불교에서 석굴사원은 인도에서 시작되었으며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다. 원래는 더운 지방에서 습기와 벌레 등을 피해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으로 오늘날 아파트같은 기능을 하는 공간이었다. 주로 큰 마을 부근이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다. 이후 불상을 모시고 벽면에 부조나 벽화를 장식하면서 장엄한 분위기가 강조되는 신성한 공간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석굴사원은 용문석굴, 운강석굴 등이 조성되었던 남북조시대 중국을 통해 불교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초기 불교사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산 용현리 마애석불과 태안 마애석불이 초기 백제의 석굴사원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석굴..

백제 왕실의 후원을 받아 창건된 부여와 익산의 사찰들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침류왕 때(384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東晉)에서 백제로 건너와 처음 전래되었다. 이후 백제 불교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많지 않지만 일반인들 사이에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성왕 때(526년) 겸익(謙益)이 인도로 방문 후 블경을 가지고 돌아와 범눈으로 된 불경을 번역하였다. 또한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불경과 불교문화와 관련된 인물들을 청했으며 일본에도 불교를 전하여 한국과 일본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왕대 이후 불교는 국가 중심적인 종교가 되었으며 국가의 발전을 비는 호국적인 성격의 계율종(戒律宗)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백제는 왕실의 후원으로 수도 부여에 많은 사찰이 세웠으며, 무왕 때에는 새로운 도읍을 건설할 목적으로 큰 사찰들이 세워졌다. 백제 사찰은..

통일신라 불교 해동 진언종(眞言宗)

밀교(密敎)는 비밀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문자나 언어로 표현된 현교(顯敎)를 초월한 최고의 가르침을 말한다. 인도에서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승불교로 다라니(陀羅尼)라 부르는 주문을 중시하며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과 이 주요 경전이다. 중국에서는 밀종(密宗), 한국과 일본에서는 진언종(眞言宗)이라고 하며 티벳불교도 밀교에 속한다. 한국의 밀교는 삼국시대 신라 명랑법사(明朗法師)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면서 본격적으로 전래되었으며 밀본(密本)도 선덕여왕의 질병을 치유하는 등 밀교 전파에 공헌하였다. 이후 혜통(惠通)은 당나라에서 선무외(善無畏, 637-735년)엑 정통 밀교를 배우고 돌아와 해동진언종을 열었다. 당나라에서 활동하며 인도를 다녀와 을 남긴 혜초(蕙草)도 대표적인 밀교 승려이..

통일신라 불교 법성종(法性宗)

법성종(法性宗)은 일체 만유(萬有)는 같은 법성을 가졌고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불교 종파로 삼론종, 화엄종, 진언종, 천태조 등 대부분 불교 종파의 교리를 포괄하고 있다. 삼국시대 원효(元曉)가 한국적인 불교로 시작하였으며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불교 종파를 형성했다. 경주 분황사(芬皇寺)를 근본도량으로 하고 분황종이고도 하며 해동종, 중도종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개성 왕륜사(王輪寺)를 본사를 했으며 조선초까지 존립하였으나 불교 종단으로 크게 번성하지는 못했다. 원효(617 ~ 586년)은 의상대사와 함께 한국 불교를 이끈 대표적인 승려로 서당화상(誓幢和尙), 고선대사(高仙大師)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 숙종 때 대성화정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대체로 원효대사(元曉大師)로 불린다...

통일신라 불교 계율종(戒律宗)

율종(律宗)은 북제(北齊)의 혜광(慧光)이 시작한 불교 종파로 계율을 중시하고 있다. 불교에서 계(戒)는 덕, 바른행동, 도덕, 계율 등을 말하여 넓은 의비로 도덕적인 행동 전체를 포괄한다, 중국의 계율종은 상부종(相部宗), 남산종(南山宗), 동탑종(東塔宗)으로 나뉘었으나 도선(道宣, 596~667)의 남산종이 크게 번성하였다. 한국의 율종은 계율종(戒律宗), 남산종 등으로 불리웠으며 신라 선덕왕 때 자장(慈藏, 590년~658년)이 종남산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였다. 백제는 겸익(謙益)이 성왕 때 인도를 방문하여 율부(律部)을 배우고 귀국하여 백제왕실의 후원을 받아 백제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 사료에는 자장이 계율종을 열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통일신라..

통일신라 불교 법상종(法相宗)

한국의 법상종(法相宗)은 과 을 주 경전으로 하는 한국 불교 종파로 통일신라 때 진표(眞表)가 금산사(金山寺)에서 신라 법상종을 열었다. 진표는 미륵신앙이 강했으며 이론적 성격이 강했던 중국 법상종과는 달리 실천적인 불교로 바꾸었다. 진표는 많은 제자를 가르쳤으며 통일신라 때 크게 번성하였다. 법상종의 대표적인 사찰로는 김제 금산사(金山寺), 속리산 법주사(法住寺),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등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사찰 규모가 상당히 크고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찰들이다. 은 인도 미륵보살이 지은 글을 당나라 현장이 번역하여 100권을 수록한 것으로 그중 15권에 해당한다. 법상종 사찰은 중국 시안 대자은사(大慈恩寺)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불경을 보관하던 목탑을 크게 중요시했으며 미륵신앙이 ..

통일신라 불교 화엄종(華嚴宗), 화엄십찰

한국의 화엄종은 의상(義湘, 625-702년)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화엄종 2대조사인 지엄(智俨, 602- 668년)에게 화엄종을 배운 후 670년 귀국하여 676년 왕명을 받아 봉황산에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면서 해동화엄종을 열었다. 화엄종은 을 근본경전으로 심원하교 광대한 불교의 세계관을 확립하였는데 천태종과 함께 중국 불교의 대표적인 교학이다. 의상은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는데 오진(悟眞) , 지통(智通), 표훈(表訓) 등 10명을 화엄십성(華嚴十聖)이라 한다. 화엄종은 통일신라말까지 뛰어난 승려들을 배출하여 통일신라 불교의 주류로 자리잡았으며 선종이 주류로 등장한 고려시대에도 그 세력을 잃지 않았다. 의상은 670년 귀국하여 양양 낙산사 관음굴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왕명을 받아 부석사를 창건했다고 ..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사굴산문(闍崛山門)과 조계종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문(闍崛山門)이다. 사굴산문은 범일(梵日, 810~889년)이 846년에 강릉 사굴산 굴산사(掘山寺)에서 처음 열었다. 범일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16년간 머물다 847년 귀국하여 굴산사를 창건한 후 40여 년간 머물면서 선법을 베풀고 제자를 가르쳤다. 범일의 제자 행적은 당나라에 유학한 후 귀국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구산선문 중 사굴산문이 가장 번창하게 되었다. 이후 고려 초 혜소국사 혜조(慧照)가 사굴산문을 이끌고 천태종에 밀려 위축되고 있던 선종을 크게 부흥시켰다. 그는 송나라에 유학하여 당시 유행하던 선풍(禪風)과 유교와 융합되는 경향을 체험했으며 왕명으로 송과 거란의 대장경 등을 가져오는 등 고려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사굴산문..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봉림산문(鳳林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봉림산문(鳳林山門)이다. 통일산라 말 원감대사 현욱(玄昱, 787~869)이 봉림산문을 처음 열었다. 현욱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13년간 머물면서 선법(禪法)을 배웠으며 837년 귀국하여 남원 실상사에 머물다 왕명에 따라 여주 고달사(高達寺)를 크게 중창하고 선법을 베풀었다. 현욱의 제자 진경대사 심희(審希, 855~923년는 김해지역 호족의 후원을 받아 창원에 봉림사를 창건하여 본격적으로 봉림산문을 형성하였다. 봉림사는 후삼국 전란 중에 지역 호족들이 몰락하며서 쇠퇴하여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으며 여주 고달사는 고려초 왕실의 후원을 받아 크게 번창하였다. 여주 고달사(高達寺) 여주 고달사는 창건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구산선문 봉림산파를 ..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성주산문(聖住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성주산문(聖住山門)이다. 통일산라 말 문성돵 때(846년) 무염이 보령 성주사에서 처음 열었다. 낭혜화상 무염(801~888년)은 무염은 태종 무열왕 8대손으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20여년 동안 머물면서 선(禪)을 배웠다. 845년 귀국하여 성주사에서 머물면서 베풀면서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다. 그중 현휘는 고려 태조에 의해 국사가 되었으며 충주 정토사에서, 대통은 제천 월광사에서, 여염은 양평 보리사에 머물면서 선법을 선양하였다. 성주산문은 고려초 왕실을 후원을 받아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한강 일대에 주요 사찰들이 위치하고 있다. 낭혜화상탑비 비문에는 낭혜화상의 업적을 자세히 적고 있는데 당대 최고 문인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 최인곤이 글씨를 썼다. 비..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실상산문(實相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실상산문(實相山門)이다. 통일신라 말 승려 홍척(洪陟)이 전북 남원시 산내문 입석리 지리산 실상사(實相寺)에서 실상산문을 열었다. 제자인 수철대사와 편운대사가 왕실의 후원을 받아 절을 크게 중창하여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크게 번창하였다. 실상산문을 연 홍척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종을 배웠다. 이후 귀국하여 지산에 머물면서 수행하였으며 흥덕왕과 선광태자의 초빙을 받았다. 제자 수철(秀澈, 815~893)은 당에 유학하지 않고 수척에서 선(禪)을 배워 홍척을 계승하였다. 수척은 신라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통일산라 말에 실상산문가 크게 번창하였다. 실상산문은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 크게 번창하였으나 실상사 외 실상산문과 관련된 사찰은 많지 않다. 남원..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동리산문(桐裡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동리산문(桐裡山門)이다. 통일신라 말 승려 혜철(惠哲, 785~861년)이 전남 곡성군 죽곡면 동리산 태안사(泰安寺)에서 동리산문을 열었다. 혜철은 경주 출신으로 영주 부석사에서 화엄(華嚴)을 배웠으며 813년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법(禪法)을 배웠다. 귀국 후 곡성 태안사에 머물렀다. 고려 건국과 도참설(圖讖說) 등에 큰 영향을 미쳤던 도선(道詵)을 비롯하여 후백제 견훤의 추앙을 받았던 경보 등이 동리산문을 계승하였다. 혜철, 도선 등 동리산문 주요 승려들은 화엄을 먼저 배우고 선법(禪法)을 계승한 것으로 볼 때 화엄종과 긴밀한 관계였던 것을 보인다. 동리산문을 대표하는 사찰로는 곡성 동리산 태안사(泰安寺)를 비롯하여 도선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광양 중흥사, ..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가지산문(迦智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가장 먼저 선종을 이끌었던 가지산문(迦智山門)이다. 가지산문은 개창조인 도의(道義)가 784년 당에 유학하여 중국 선종을 이끌었던 혜능(惠能)이 머물렀던 보단사(寶檀寺)에서 선종을 배웠으며 821년 신라로 돌아와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 머물면서 후학을 양성했다. 염거(廉居)는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렀으며 선풍을 확산하였다. 홍척(洪陟), 체징(替徵)이 염거에게 선법을 배웠으며 체칭은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아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에 머물면서 가지산문이 형성되었다. 체징은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강진 무위사에 활동한 선각대사가 법통을 계승하였다. 고려초 선종은 일시 침체하였으나 12세기에 학일(學一)이 운문사에 머물면서 다시 부각되었으며 13세기 후반 일연(一..

[진주박물관] 서부경남지역의 불교 유적과 유물

서부 경남에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명산 중 하나인 지리산이 자리잡고 있다. 지리산은 삼국시대 이래로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많은 사찰들이 자리 잡았다.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화엄10찰 중 하나인 화엄사를 비롯하여 통일신라말부터 지방호족세력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융성한 선종계열 사찰로 실상사, 단속사, 쌍계사 등이 있었으며, 고려말 결사운동을 주도했던 송광사와 선암사 등이 지리산 일대에 자리잡았다. 지금도 지리산 주변을 비롯하여 서부경남지역에는 많은 사찰들이 있지만, 통일신라.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였다가 폐사된 사찰 또한 적지 않았으며, 많은 유물들이 절터에서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절터로 합천 영암사지, 거창 천덕사지, 함양 승안사지, 산청 단속사지와 석남사지 등이 있다. 신앙의 산..

지역박물관 2013.08.23

[경주박물관 미술관] 신라의 불교 미술

신라에 불교가 받아들여진 것은 고구려를 통해서 눌지왕때인 5세기 중엽이었으나 실제로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된 것은 법흥왕 때인 527년 이차돈의 순교에 의해서이다. 이전까지 신라인들은 고분에 껴묻거리와 경주 낭산으로 비롯하여 지배계층이 신성시 여겼던 숲 등을 통해서 고유의 신앙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에서 불교는 왕실과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호국불교의 성격을 갖고 있다. 내물마립간 이후 찬란하게 꽃피웠던 황금문화는 불교가 국가적인 종교로 자리를 굳히면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립간시기에 대릉원 일대 고분을 조성하는데 쏟았던 노력과 열정을 경주 각처에 사찰을 건립하는 데 쏟음으로써 화려한 불교 유물들을 오늘날까지 남겨 놓고 있다. 당시 신라..

지역박물관 2011.10.29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 발해의 불교

발해지역에서는 많은 불교 관련 유적이 출토되고 있으며, 그 중 수도였던 상경의 절터에 있던 석등이 가장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유물들로 보아 발해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불교였고, 상류층부터 하류층 서민까지 불교가 생활 속에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앙박물관에는 발해관련 유물의 진품은 전시되어 있지 않고, 일제 강점기에 발해의 수도였던 헤이룽장성 상경부를 조사.연구했던 일본 도쿄대에서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연해주 지역은 러시아 과학원에서 발굴작업을 하여 크고 작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부처상, 지린성 훈춘시에 만든 석회암으로 만든 부처상으로 일본 도쿄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석가와 다보 두 여래상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표현하였다. 광배에 연꽃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

중앙박물관 2011.06.1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