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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7

장성 이진환 가옥과 백계리마을

장성군 장성읍 백계리에 남아 있는 전통주택인 이진환 가옥 사랑채이다. 이 가옥은 초가지붕을 얹은 주택으로 19세기 말부터 이집에서 사랑채로 사용해 왔던 건물이다. 원래 사당에 딸린 재실용 강당 건물으로 사용하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앞면 5칸의 꽤 큰 규모의 건물로 '-'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오른쪽편에 안채였던 것으로 보이는 주택이 있는데, 현대식 기와를 얹기는 했지만 원래의 안채의 모습과 구조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 가옥이 소재한 장성 백계리 마을은 내장산과 입암산에서 발원하여 장선군을 지나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황룡강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장성댐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 이 가옥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고택이 ..

고택_정원 2013.03.03

흥선대원군 사저 운현궁 노안당(老安堂), 구한말 정치의 중심 사랑방

운현궁 사랑채인 노안당으로 대원군이 직접 이름을 짓고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하여 현판을 달고 있는 건물이다. 이 곳 노안당은 흥선대원군이 일상에 거처한 곳으로 고종 즉위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 되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노안당'이란 현판은 '노자를 안지'하며 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이다. 노안당 건물은 구한말 당시에 유행했던 사랑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흥선대원군이 기거했던 건물임에도 일반 한옥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으며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우리나라 한식 기와집으로 처마끝에 각목..

궁궐_종묘 2011.11.29

의정부 수락산 입구 서계 박세당 사랑채, 조선후기 대표적인 중농주의 실학자

의정부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중농주의 실학자인 서계 박세당 선생의 고택이다. 원래는 안채,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양반가의 대 저택이었으나 한국전쟁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사랑채만이 남아 있다. 원래 저택의 규모가 상당히 컸었던지 지금도 여러동이 건물에서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2칸으로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누마루가 사랑채에 붙어 있다. 사랑채의 방향은 서향으로 뒷쪽으로는 수락산을 등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도봉산 봉우리들이 보이는 경치가 상당히 수려하고, 수락산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박세당 선생은 관직을 그만둔 뒤 이 곳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에 관련된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 ..

고택_정원 2010.09.25

안동 천전마을 의성김씨 종택, 사랑채와 행랑채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안동 의성김씨종택의 사랑채는 다른 주택과는 달리 안채의 왼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행랑채 대문을 통해서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왼쪽편을 돌아서 들어갈 수 있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연결해 주는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인다. 사랑채는 바로 옆에 있는 사당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정실과 경묘각을 바라보고 있는 구조이다. 사랑채 내부의 마루가 상당히 넓어서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 같아 보인다. 이 곳 천전마을 의성김씨 종택은 학봉 김성일이 지은 것이라고 하며, 기존 이지역의 양반 저택인 'ㅁ'자형 주택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학봉선생이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오면서 중국 상류층 주택을 참고하여 지었..

고택_정원 2010.09.11

강릉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 중사랑

강릉 선교장에서 외부 손님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인 사랑채 영역이다. 선교장 안채 동쪽편에 위치한 이 곳은 선교장 주인의 거처인 열화당을 중심으로 지체가 높은 인사가 묵을 수 있는 중사랑과 마치 콘도를 연상시키듯이 늘어서 있는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열화당은 구한말에 건립된 건물로 이 곳에 러시아 공사관 인사도 많이 묵었던지 공사관에서 러시아식으로 테라스를 선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강릉지역을 포함하여 관동지역이 많은 선비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피서지 또는 여행지였던 까닭에 선교장은 개인 저택이지만,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당히 많은 손님들이 묵을 수 있도록 작은 방들을 많이 배치해 놓고 있다. 선교장 사랑채인 열화당. 1815년에 건립된 건물로서 선교장 주인 남자의 거처로 앞면 4칸에 누마루와 테..

고택_정원 2010.09.11

[서울 창덕궁 후원] 연경당 사랑채, 선향재

연경당은 창덕궁 안에 지은 유일한 민가형식의 건물로, 사랑채의 당호가 연경당이다. 사랑채엔 안채가 이어져 있고 사방에 행각들이 연결되어 있다. 규모는 궁궐 전각으로서는 크지는 않지만 사대부집으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이다. 연경당의 본채인 사랑채. 이 사랑채의 당호가 연경당으로 일반 사대부 집의 형태를 빌어서 만들었다. 가까이서 본 사랑채 사랑채 동쪽에는 서재로 쓰인 선향재. 중국풍의 벽돌 건물로 서향을 하고 있는데, 특히 정면에 덧단 차양과 측면의 벽체가 눈길을 끈다. 사랑채 입구인 솟을 대문 주위에 있는 행랑채. 행랑채 내부, 조그마한 방. 사랑채 입구인 솟을 대문. 사랑채 입구의 솟을 대문 높이가 안채에서 들어오는 솟을대문이 보다고 높다는 것은 남성우위의 관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사랑채 마당에서 ..

궁궐_종묘 2010.09.07

소설 '토지' 무대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

대하소설 토지 전반부 갈등의 주역인 주인공 서희의 아버지이자 최참판댁의 주인인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라서 그런지 규모가 궁궐의 건물과 비슷한 구한말 한옥건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곳 사랑채 누각에 올라서면 앞으로 평사리의 넓은 들판과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하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의 아버지인 최치수가 머물던 최참판댁 사랑채입니다. 건물은 일반 주택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구한말에 유행하던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각이 딸린 사랑채로 누각에 올라서면 평사리 넓은 벌판과 섬진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곳 중에 하나입니다. 최참판댁 사랑채에서 방이 있는 쪽입니다. 최참판댁 사랑채에서 내려..

한국의 풍경 201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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