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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28

남한산성 우익문(서문), 한양과 연결된 성문

남한산성 서문은 우익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성문으로 남한산성 북동쪽 모서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성문이다. 산성의 성문과 연결되는 도로가 없고, 성문 앞은 경사면이 급해서 등산로로만 이용되고 있을뿐이지만, 한양에서 송파나루를 거쳐서 성문으로 통하는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기때문에 이 곳에 성문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문루와 출입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로가 없는 까닭에 출입문의 크기는 일반적인 성문에 비해서 작아 보인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지역 또한 이 서문 아래의 송파지역으로 산성내에서도 가장 전투가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성문은 일반적인 산성의 성문과는 달리 한양에서 피신한 국왕 일행이 가장 빨리 산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설치한 것으로 보이며, 산성이 처음 축조..

[서울 성곽] 숭례문(남대문, 국보1호)과 서소문까지 성벽

속칭 남대문이라고도 불리는 숭례문은 우리나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한양 도성의 정문이다. 숭례문은 1396년(태조 5)에 축조되어, 1447년(세종 29)에는 개수공사를 하였으며, 1961~1962년 사이 목재와 석재 등이 썩고 부서져 무녀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문루와 홍예를 헐고 중수하였다고 한다. 목조건축물을 중수한다는 것은 부서진 석재와 썩은 목재만 새것으로 갈고 다른 것은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옛 모습을 유지하기때문에 원래 건축물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점에서 최근에 방화로 숭례문 문루가 불타버리고 다시 복원되었다고 해서 국보1호로의 상징적 의미와 가치가 없어지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해체수리를 할때 발견된 상량운에서 1479년 (성..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중세 읍성 성곽

코르도바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존재했던 도시로 지금도 로마 신전과 다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서고트왕국의 지배를 거쳐서, 8세기 이슬람왕조가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으면서 번성을 누렸다. 코르도바는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중세 학문으로 중심지로서 고대 그리스의 학문적 성과들을 유럽인들에게 남겨준 스페인에서도 가장 유서깊은 도시이다. 스페인 동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을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있는 코르도바는 거대한 이슬람 사원인 메스키타를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으며, 오래된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코르도바는 과달키비르 강변을 중심으로 사방에 성곽을 쌓은 중세 읍성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중세시대에 쌓은 성곽들이 도시 곳곳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요새화된 도시인 톨레도나 그라나다와는 달리 코..

스페인(Spain) 2013.07.08

[서울 성곽] 흥인지문(보물1호), 구한말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한양도성 동대문

동대문이라 부르는 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서쪽 출입문으로 함경도에서 철원, 양주를 거쳐서 들어오는 길을 비롯하여 강원도에서 남양주를 거쳐서 들어오는 길, 영남지방에서 광주를 거쳐서 광나루, 송파나루를 건너서 들어오는 길 등이 동대문과 연결된다. 흥인지문은 태조대(1398년)에 한양도성을 처음 쌓았을 때 처음 지었던 것을 단종대(1453년)에 고쳐지었던 것을 구한말인 고종 6년(1869)년에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구한말에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당대의 건축양식의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자 한양도성의 성문으로 역사적, 건축적인 가치가 높고 국보 1호인 숭례문과 함께 상징적인 의미로서 보물 1호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화강석을 아치형으로 쌓은 홍예문이며, 문루는 조선시대 ..

순천 낙안읍성, 동문인 낙풍루와 주변 성벽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있었던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남해안 지역에서는 꽤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쳐서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던 곳이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평지에 장방형의 석축성을 쌓고 있다. 낙안읍성에 있는 동.서.남 3개의 성문 가운데 지금은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은 실제로 남해안이 있는 벌교지역과 연결되는 곳으로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병자호란 최대의 패배가 있었던 곳

남한산성 북문에 해당하는 전승문이다. 이 성문은 원래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부터 있었던 성문은 아니고 인조때 신축한 성문이라 한다. 이 곳의 이름은 '전승문'이라고 부르는데 이 곳이 병자호란 당시 가장 큰 패전이 있었던 장소라서 그 사실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붙혔다고 한다. 남한산성에서 북문은 서울 강동지역 한강유역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북문 아래쪽은 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을 관리하는 주요 방어시설인 이성산성과 고려초 크게 세력을 떨쳤던 광주지역 호족의 근거지인 하남 춘궁동과 연결된다. 정문격인 서문과는 달리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과 비슷한 규모로 지었으며, 이 쪽 방면으로는 계곡을 통해서 접근하기는 쉽지만, 계곡과 주변 지역이 경사가 있는 편으로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형을 하고 있다. ..

김해읍성 공진문, 김해읍성 옛터에 남은 유일한 성문

김해는 낙동강 하구 김해평야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옛 금관가야의 도읍지이다. 삼국시대에는 금관소경이 설치되었다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대체로 종3품 부사가 수령인 김해도호부가 설치된 지역이다.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던 역사적 배경과 우리나라 최대 성씨인 김해김씨의 본향인 까닭에 가야와 관련된 유적들은 많이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 유적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현재 김해는 김해향교와 김해관아 객사 후원, 최근 복원된 김해읍성 북문이 남아 있다. 김해읍성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우리나라 남서해안에 출몰했던 왜구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던 읍성 중 하나로, 김해의 지리적 위치가 일본과 가까운 까닭에 상당히 견고하게 쌓았던 읍성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 16년에 석성으로 축조된 김해읍성은 둘레 4,4..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左翼門)

남한산성은 한강 유역이 내려다 보이는 서장대를 중심으로 주변 산능선을 따라서 석축을 쌓은 둘레 8km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산성이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대문을 두고 있으며 좌익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동문은 광주지역과 연결되는 성문으로 한반도 중부내륙지방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동문은 산성내 행궁을 중심으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어서 좌익문이라고 부른다. 동문은 남문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가장 통행이 많았던 성문으로 광주에서 계곡을 따라 평탄한 길이 나 있기때문에 아마도 산성내 필요한 물자는 동문을 통해서 공급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동문은 지형적인 이유로 계단을 쌓고 그 위에 성문을 축조했기때문에 실제 우마차나 사람들의 통해은 남쪽편에 있는 제11암문을 이용했을 것..

남한산성, 남문인 지화문(至和門)

남한산성은 한성 백제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는 통일신라가 이 곳에 주창성을 쌓고 한강유역을 지키는 중요 산성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도 남한산성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성곽으로서 그 역할이 크게 중요시 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신했던 성으로 45일간 이곳에서 항전하였다. 지금에 와서 볼 수 있는 견고한 석축과 방어시설이 완비된 산성으로의 모습은 상당부분 숙종때 쌓은 것이며, 정조대에 크게 개축하였다고 한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4개의 성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성남에서 올라오는 출입문인 남문에 제일 큰 규모로 실제 남한산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송파나루와 ..

북한산성 대서문, 산성 정문격으로 제일 낮은 곳에 설치된 문루

북한산성에 설치된 14개의 성문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대서문이다. 이 성문은 고양시 북한산계곡을 통해서 북한산을 등반하는 가장 쉬운 코스 중 하나로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서울 북쪽 험준한 북한산 능선을 따라 쌓는 북한산성 중에서도 방어상 제일 취약한 곳으로 여겨졌으며, 일상적으로 북한산성을 출입하는 통로이기도 한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서문에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면 중성문을 만들어 놓고 있다. 대서문은 잘다듬은 크고 튼튼한 화강석으로 석축과 홍예를 쌓고 그 위에 문루를 올려놓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성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홍예좌우에는 동물머리 모양의 빗물을 빼내는 석누조가 설치되어 있고, 문루 앞쪽에는..

[서울 성곽] 홍지문, 오간수문, 탕춘대성

홍지문은 서울 성곽 북서쪽 출입문인 창의문을 지나서,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홍제천 계곡에 있는 성문이다. 조선중기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시 반란군이 반정을 모의한 세검정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반군이 경복궁으로 들어온 길에 있는 성문이다. 이 지역은 서울 성곽과 북한산성 사이에 있는 사각지대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 숙종때 쌓은 북한산성과 인왕산 성곽을 연결해주는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다. 홍지문은 숙종때 쌓은 성문과 홍제천을 막아 놓고 있는 오간수문이 연결되어 있으며, 홍지문이 있는 길만 평지이고 성문 좌.우로는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쌓아 놓고 있다. 현재의 성문과 오간수문은 일제강점기에 홍수로 떠 내려간 것을 1977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 세검정 상명대학앞 홍제천가에 세워진 홍지문. 1921..

[서울 성곽] 혜화문, 한양도성 동소문에 해당하는 성문

사직터널에서 산능선을 따라서 인왕산을 거쳐 북악산을 지나 창덕궁과 성균관대학 뒤쪽 능선을 지나서 의정부 방향 도로와 만나는 곳에 있는 혜화문이다.한양도성의 동소문에 해당하는 성문으로 의정부, 양주를 거쳐 함경도 방향으로 연결된 도로들이 한양도성으로 들어오는 혜화동 고갯길에 있던 성문으로 지금은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편 언던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성문과는 달리 원래부터 있던 성문이 아니라 90년대에 복원한 성문이다. 혜화문 안쪽으로는 혜화동 대학로가 있으면, 성곽은 다시 낙산 능선을 따라서 계속 이어진다. 한양도성의 동소문은 원래 의정부방향 도로 중앙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 등으로 현재의 위치인 동쪽편 언덕에 복원해 놓고 있다. 복원된 혜화문. 아치형 성문과 성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래 있었는 성루가 1..

[서울 성곽] 창의문(자하문), 한양도성 북소문에 해당하는 성문

창의문은 자하문이라고도 불리는 한양 도성의 서북쪽 방향에 위치한 성문이다. 세검정에서 청와대와 경복궁 방향으로 난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후기 인조반정때 반란군들이 세검정에서 출발하여 이 곳 창의문을 통해서 지나갔다고 하며, 60년대 북한에서 침투한 김신조 일당도 이 곳을 지나서 청와대를 기습할려했던 곳이다. 창의문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성문 중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에 속하며, 원래 이 길은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 풍수상 좋지 않다고 하여 폐쇄되기도 한 성문이다. 창의문 아래에는 1.21 청와대 습격 당신 순직한 경찰들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아래로는 이 곳의 청계천 발원지임을 말해주는 표지석이 있다. 인왕산길에서 북악산길로 가는 도로에서 보이는 창의문. 현재 창..

[실크로드 투루판] 교하고성 (자오허고성), 성문과 들어가는 길

중국어로 자오허 고성이라고 부르는 교하고성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두개의 하천 사이에 위치한 바위산 같은 지형 위에 세워진 성곽으로 중국 한나라시대 이 곳을 다스리던 차사전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지금은 교하고성 양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지만, 옛날에는 큰물이 흘렀다고 한다. 대부분의 문명이 강을 중심으로 생겼듯이 이 곳 교하고성 또한 투루판 분지에서 가장 물이 풍부했던 곳에 위치하고 있다. 두개의 강 사이에 있는 절벽위에 형성된 이 도시는 길이 1.6km, 폭 300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대부분의 고대도시들과 비슷한 규모를 하고 있다. 교하고성은 성벽을 인공적으로 쌓지 않고 자연절벽을 성곽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내부의 건물들도 대부분 벽돌을 쌓아서 건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를 파서 ..

중국(China) 2010.07.24

[실크로드 둔황] 만리장성 옥문관, 한나라때 서역으로 출발하는 관문

둔황시 서북방면으로 약 1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을 한무제때 흉노와 한나라간 투쟁의 중심지로써 한나라때 쌓은 만리장성이 있었던 곳이다. 옥문관은 투루판을 지나 천산산맥을 따라 중앙아시아로 뻗는 오아시스 북로의 첫번째 관문으로 이 옥문관을 벗어나면 중국땅을 떠나서 서역으로 나가는 것이자,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이 관문 바깥이 세상밖이라 여겼던 곳이이기도 하다. 옥문관은 '옥이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옥의 산지인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에 위치한 허텐이라고 곳에서 중국의 은.주 시대부터 옥을 수입해 왔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서역과 무역을 하고 서역을 경영하고자 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한무제때는 이 곳에 '옥문관도..

중국(China) 2010.07.14

[수원 화성] 동문격인 창룡문

창룡문은 수원 화성의 동문으로 군사지휘소 역할을 했던 동장대와 인접해 있는 성문이다. 보통 성곽 출입문의 경우 북쪽에 통행이 많지 않고 동.서 문이 출입이 많은 것이 보통이다. 수원 화성의 경우 서울 방향의 출입문인 북문격인 장안문이 정문역할을 하는데다 창룡문 주변에는 군사훈련을 하는 동장대가 위치하고 있어 일반인이 출입을 꺼렸을 것으로 보이는 출입문으로 장안문이나 팔달문에 비해 성문의 높이도 낮고 단층 문루가 설치되어 있다. 옹성에도 별도의 출입문을 두지 않고 통로만 만들어 놓고 있다. 수원 화성 동문이 창룡문. 군대가 주둔하고 훈련하던 동장대 주변에 위치한 까닭에 창룡문을 드나드는 도로가 발달해 있지 않고, 주위에 치성같은 방어시설을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창룡문 문루는 팔달문이나 장안문처럼 2층 누..

[수원 화성] 화서문, 수원화성의 서문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으로 1896년 (정조 20면)에 완공된 성문으로 약 200년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화서문은 축성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팔달문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화선문은 화성 남쪽 서해안 방향으로 연결되는 길이 출발하는 곳으로 그 중요도에 있어서 정문격인 팔달문보다 낮았던 것으로 보이며, 성문의 크기가 작아 보인다. 화서문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이자 정조대왕의 최측인 채제공이 썼다고 한다. 팔달산 성벽길을 따라서 걸어 내려오다 서북각루에서 잠시 쉰 후, 평지에 도달하면 수원화성의 서쪽 출입문인 화서문과 화서문을 지키는 망루 역할을 하는 공심돈을 볼 수 있다. 화서문 부근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수원화성은 큰 돌을 쌓은 석성을 기본으로 하여 암문, 옹성, ..

[수원 화성] 팔달문, 사통팔달 수원화성 남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능침을 화산 부근으로 이전하고 이곳에 있는 읍성을 현재의 팔달산 부근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된 당시 최대 규모의 신도시이다. 당대의 실학자 정약용, 채제공 등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로 하여 조성한 수원화성은 지금도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고, 의궤 등에 수원화성 축성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아주 독특한 성곽이다. 그 중 팔달문은 그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통팔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수원화성의 남문이자 정문의 역할을 했던 성문이다. 서울을 남대문인 숭례문 주변에 남대문 시장이 있듯이 이 곳 팔달문 주변으로는 지동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꿋꿋히 자리잡고 있다. 팔달문은 아마도 북경에서도 제일 유명한 만리장성인 팔달령 만리장성에..

[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남고문(남문)

나주 읍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남고문은 나주 시내 중심가 도로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성문이다. 나주 도심부를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남고문은 읍성 성문 중 가장 먼저 복원된 성문으로 마치 서울의 숭례문을 연상시키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점문과는 달리 옹성이 없고, 도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읍성 밖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옹성은 없고 성문 위에 2층 문루가 있다. 읍성 안쪽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옆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문루에 오르는 계단이 있고, 성벽은 남아 있지 않다. 나주읍성 남고문은 나주시대를 관통하는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나주읍성이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이전 또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초..

[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동점문(동문)

나주는 영산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도시로서 호남지역 중심도시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나주에는 읍성이 있었고, 관아 건물 및 향교 등 지방관청이 있는 도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나주읍성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지고, 곳곳에 기초석만 일부 남아있는 상태였다가 최근에 남고문과 동점문이 복원되었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읍성 동쪽 방향 출입문으로써 광주지역에서 영산강을 따라서 오던 사람들이 출입하는 출입문이다. 복원이 완료된 나주읍성 동점문. 최근에 복원한 성문이라서 그런지, 실제 읍성에 사용되는 자재를 사용해서 제대로 복원이 이루어진 것을 보인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전면부에 옹성이 있으며, 옹성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자연석을 적절한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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