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영문 2

청주 충청병마절도사 영문, 조선후기에 세워진 병영 출입문

충청북도 도청소재지인 청주시는 삼국통일에 큰 기여를 한 김유신 장군의 출신지역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5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이 설치된 곳이다. 고려초에는 호족세력이 강했던 지역 중 하나로 청주목이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조선후기에는 충청도 내륙지역의 국방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서산 해미에 있던 충청병영이 이곳으로 옮겨졌다. 충북도청과 청원군청이 있는 청주 구도심 중앙공원은 조선시대 청주목 관아 객사가 있던 곳으로 객사건물은 남아 있지않고, 객사 누각 건물인 망선루, 충청병영 출입문을 비롯하여 척화비 등이 남아 있으며, 뒷편 청원군청내에는 동헌 건물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병영은 각도의 육군을 지휘하는 책임을 맡은 종2품 무관인 병마절도사가 머무르는 곳으로 충청도, 경상좌.우도, 전라..

조선 관아 2012.11.27

강화 선수돈대, 석모도 앞바다를 지키던 돈대

조선은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패배 이후 북방민족으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기 조선 숙종대에 강화도 전역을 요새화하여, 강화유수부가 소재한 지역에 강화산성을, 그 바깥쪽에 외성을, 해안에는 돈대를 구축하여 해안경비를 강화하였다. 강화 해안의 돈대는 숙종대인 1679년 병조판서 김석주가 건의하고, 강화유수 윤이제의 주도로 전국의 승병들을 동원하여 해안 주요 요지 49곳에 돈대를 설치하였다. 이후 보강을 통해 구한말까지 53돈대를 운영 했다고 한다. 돈대는 해안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에 50명 이내이 병력이 머물면서 적을 감시하고 방어하던 요새로 그 형태는 원형, 사각형 등으로 다양하다. 돈대는 병자호란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방어시설 형태로 화포와 총을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 후포항 뒷..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