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는 진흥왕순수비, 남산신성비 등 국가정책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글자를 새겨 놓은 비석을 많이 활용하였는데, 이는 경주를 비롯한 특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라의 영역에서 고루 분포되고 있어 비석이 통치의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비석에서는 당시의 관직, 인물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서 사회 체제가 안정됨에 따라 국가 통치를 위한 비석의 필요성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며, 이때부터는 왕이나 특정 인물의 업적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세운 비석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며, 비석의 이런 특징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부처의 사리를 모신 석탑의 건립은 점차 줄어드는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