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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4

경주 관문성(사적48호), 만리성이라 불렸던 왜(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울산과의 경계에 쌓은 12km이르는 장성

경주와 울산을 연결하는 국도7호선을 중심으로 두도시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 있었던 삼국시대 성벽인 관문성이다. 이 성은 왜구가 신라의 수도 경주에 침입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보기드문 장성(Wall)형태의 성벽이다. 경주시 외동읍 서쪽 해발 765m의 치술령 줄기 남쪽에서 시작해서 경주시 녹동리 마을과 해발 250m정도인 순금산 정상부 아래를 지나, 경주에서 울산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동천을 지나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아래까지 길게 이어진 전체 12km 정도의 큰 규모의 성곽이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성덕대에 각간 원진이 39,262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한다. 성벽은 길이 40~50cm로 다듬은 돌을 5단 내지 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았는데, 위로 쌓아 올리면서 ..

[실크로드 둔황] 옥문관 주변 한대 만리장성(한장성)

한나라 무제때 장건이 개척한 실크로드 관문인 옥문관 근처에 남아 있는 한나라 만리장성이다. 새원(塞垣)이라고 불린 이 곳의 한나라 만리장성은 지금으로 2,100년 전에 지은 장성으로 만리장성의 원형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만리장성 성곽은 지역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쌓고 있는데, 이 곳 둔황지역은 주변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갈대와 모래자갈을 섞어서 쌓고 있는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지역의 특징에 따라서 오늘날까지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남겨 놓고 있다. 비록 남아 있는 모습은 명대에 쌓은 북경 주변의 만리장성에 비해서 보잘 것 없지만, 당나라 때까지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곳의 만리장성은 한무제때 명장 곽거병,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 후한때 명장 반초, 고구려인 후손으로 서역을..

중국(China) 2010.07.14

[실크로드 둔황] 만리장성 옥문관, 한나라때 서역으로 출발하는 관문

둔황시 서북방면으로 약 1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을 한무제때 흉노와 한나라간 투쟁의 중심지로써 한나라때 쌓은 만리장성이 있었던 곳이다. 옥문관은 투루판을 지나 천산산맥을 따라 중앙아시아로 뻗는 오아시스 북로의 첫번째 관문으로 이 옥문관을 벗어나면 중국땅을 떠나서 서역으로 나가는 것이자,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이 관문 바깥이 세상밖이라 여겼던 곳이이기도 하다. 옥문관은 '옥이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옥의 산지인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에 위치한 허텐이라고 곳에서 중국의 은.주 시대부터 옥을 수입해 왔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서역과 무역을 하고 서역을 경영하고자 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한무제때는 이 곳에 '옥문관도..

중국(China) 2010.07.14

[만리장성 거용관] 천하제일웅관, 북경의 관문

만리장성에서 팔달령 장성과 함께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북경의 관문인 거용관이다. 거용관은 천하제일웅관이라고도 불리며 물이 흐르는 계곡과 팔달령에서 이어진 산길이 평지로 들어오는 입구에 설치된 옹성이다. 이 곳은 중국 황제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 보이며, 성 안에는 행궁과 같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거용관 옹성에는 3층의 문루가 설치되어 있어며, 만리장성에서 가장 웅장하다는 의미로 '천하제일웅관 天下第一雄關'이라는 현편이 걸려 있고, 옹성내부에는 작은 사당이 설치되어 있다. 옹성 주위에는 여러 망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동쪽편으로는 계곡을 가로목은 수문도 설치되어 있다. 만리장성 너머에서 북경으로 들어오는 길은 이 길이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보이며, 팔달령에서 이 곳 거용관까지 웅장한 성벽으로 둘려싸여..

중국(China) 201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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