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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교육기관 12

김해향교, 금관가야 중심지 김해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김해도호부 중등교육기관

낙동강하구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김해는 옛 금관가야의 도읍지로 고려시대 이래로 종3품의 부사가 수령인 김해도호부 설치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넓은 농토와 함께 조세운송과 물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낙동강 뱃길에서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고을이다. 김해에는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김해읍성을 쌓았고, 가까운 곳에 산성인 분산성을 두고 있다. 옛 김해도호부의 관아건물로는 객사 후원과 교육기관인 김해향교만이 남아 있다. 김해향교는 관아가 있던 읍성 북문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고을 향교와 비슷한 입지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해향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초인 태종대로 화재 등으로 여러차례 이전을 하여 영조대에 현재의 위치에 자라잡고 있다. 김해향교는 앞..

안성 양성향교, 옛 양성현 관아의 중등교육기관

양성현은 안성시 양성면 일대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때에는 서복홀, 신라 경덕왕 때는 적성이라 불렀다고 고려초부터 양성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개국초부터 현감이 고을 수령인 양성현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안성군과 통합되었다. 고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으로 양성향교를 제외하고는 옛 양성현 관아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인근에 덕봉서원이 있다.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이었던 양성향교는 양성현 관아가 있었던 양성면 소재지에서 1km정도 떨어진 낮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향교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1530년(중종25)에 세워졌으며, 조선후기에 1774년(1774)에 중창되었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뒷편에는 공자와 선현들을 모시는 대성전을 두고 있다. 현재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논산 노성향교, 조선시대 노성현 공교육 기관

충남 논산시는 일제강점기에 행정개편과정에 조선시대 노성현, 연산현, 은진현이 합쳐서 이루어진 고장이다. 금강하구 넓은 평야 지대의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장으로 농업생산이 풍부하고,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역사 이래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토지생산력을 바탕으로 유교문화가 활발했던 곳이다. 황산벌 평야지대 북쪽편 공주와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한 노성산성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노성현이라고 불렸으며, 노성산성 남쪽편 면소재지에 노성현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유교문화가 발전했던 곳으로 관아 유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후기 당파 소론의 영수인 윤증의 명재고택, 송시열이 세원 공자를 모신 궐리사, 충남을 대표하는 서원인 노강..

보령 화암서원, 토정비결 저자 이지함 선생을 모신 서원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 자리잡고 있는 토정 이지함 선생을 모신 화암서원이다. 화암서원이 위치한 곳은 보령시 동쪽 높은 산에서 발원하여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하천을 막은 청천저수지 안쪽편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서원은 1610년에 이지함의 문인 구계우가 주도하여 건립하였고, 숙종때 화암서원으로 사액되었다고 한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철된 것을 일제강점기에 복원되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을 청천저수지를 만들면서 195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토정 이지함(1517~1578년)은 주선 중기의 유학자로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인 서경덕 선행 문하에서 수양했으며, 포천현감.아산현감 등의 관직을 지냈면서 걸인.노약자.기민 등을 구제하였다고 한다. 유학..

포천 용연서원, 한음 이덕형을 모신 서원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자리잡고 있는 용연서원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조선중기 문신 한음 이덕형을 모신 사원이다. 이 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중요 서원 중의 하나이다. 현재의 서원건물은 강당과 사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서원이다. 원래는 동재.서재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사당만 남아 있던 것을 1986년도에 강당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전해줄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포천시에는 용연서원과 화산서원이 있으며, 포천시 가산면에 위치한 화산서원은 오성이라고도 불렸던 백사 이항복을 모신 서원으로 용연서원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조선시대 금강산으로 가는..

용인 심곡서원,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대표적인 서원

정암 조광조는 14세때 성리학자 김굉필 문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며, 과거에 급제한 이후 호조,예조,공조의 좌랑, 홍문관 승지, 부제학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유학자 정치를 구현하려는 중종의 신임을 받아서 다양한 개혁정치를 추진하였다. 이후 조광조의 개혁에 반감을 가진 중종반정 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세력의 역공을 받은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했다. 정암 조광조는 조선전기와 후기를 구분짓는 역사적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후대에 조선사회를 주도했던 사림세력을 추앙을 받았다. 정암 조광조를 모신 서원은 용인 심곡서원, 서울 도봉서원 등 전국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용인 수지신도시에 위치한 심곡서원은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묘소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적인 중요성으로 인해서 구한말 흥선대원군..

공주향교, 충청감영에서 운영하던 향교

옛 충청감영과 공주목이 있었던 공주의 공식 교유기관인 공주향교이다. 옛 감영이 있던 공주사대부고에서 금강방면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주택가 위치하고 있다. 금강 중류에 위치한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는 조선시대 충청도의 중심지이자 금강 수운, 호남지역과 서울간의 교통로에 위치한 아주 큰 고을이자, 충청도 관찰사사 근무하던 충청감영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공주라는 큰 고을에 위치한 공주향교는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나주향교나 전주향교는 그 규모에 있어서 한양의 성균관에 비길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 곳 공주향교는 웬만한 군현에 소재한 향교와 비슷한 규모로 보인다. 공주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뒷쪽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다. 유생들이 ..

홍성 홍주향교

홍성군은 충남 서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충청 서해안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인 홍주목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중 정3품의 높은 관직인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인 목(牧)은 지방행정단위 중에서는 가장 큰 곳에 속하며 대부분 이름끝에 주(州)를 달고 있다. 아마도 충남서해안 지역 대부분의 고을이 직속은 아니지만 관할지역과 비슷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홍성군은 옛 홍주목과 결성현이 합쳐진 것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인근의 공주와 일본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홍성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홍주향교는 홍주목 관아가 있었던 읍성인 홍주성에서 북쪽편에 위치한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서 목사가 근무하던 동헌과는 많이 떨어져 있다. 홍주..

홍성 결성향교

결성현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과 결성.서부.구항.은하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결성현 읍치는 현재 결성읍성이 있었던 자리인 결성면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다. 결성현은 천수만에서 홍성군과 예산군을 포함하는 내포평야를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초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을 때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던 고을이다. 결성현에서 관장하던 교육기관이었던 결성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해왔었던 지방교육기관으로 현재의 위치로는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결성읍성을 현재의 결성면 소재지에 세우게 되면서 이전하였다고 한다. 향교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결성면 소재지에서 북쪽편으로 약간 떨어진 구릉지에 세워진 이 향교는 공자와 성현들을..

남원향교, 남원도호부 관할의 큰 향교

남원향교는 조선 태종때 처음 창건된 남원지방의 향교로 처음에는 남원성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잦은 홍수로 인해서 세종 때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남원성 동북쪽 약간 언덕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향교는 향교의 학규를 비롯하여 유생들들 내무생활규범 등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어 조선시대 지방사회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남원향교는 향교 중에서 면적은 넓지 않지만, 건물로는 공자와 제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무.서무,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사마재와 전사청, 그리고 웅장한 문루를 두고 있는 규모가 큰 향교이다. 남원향교는 대성전이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재건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고종때 중건한 명륜당이 약간 내력이 있는 건물로 보인다. 나머지 ..

김제향교, 김제군 관아 가까이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김제평야가 있는 지역으로 농업사회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중의 하나이다. 김제 향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 강당인 명륜당과 문루인 만화루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사당인 대성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강당과 문루는 일제강점기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인근에 옛 조선시대 김제군 관아 건물이 남아 있으며, 관아와 향교를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관청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김제향교는 김제관아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위치한 김제향교.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은 벌판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평야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향교이다. 호남지역 벌판에 있는 향교는 땅이 넓어서인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명륜당 앞..

김포향교, 김포현의 중등교육기관

김포공항 서쪽편에서 강화도가 있는 서해안까지가 현재의 김포시이다. 조선시대의 김포현과 통진현이 합쳐진 곳이 현재의 김포시이고, 현재 김포시청을 중심으로 김포현이 존재했었다. 김포현은 남쪽으로는 부평부, 북쪽으로는 통진현, 서쪽으로는 서해안, 동쪽으로는 양천현과 경계를 이루는 영역이다. 옛 김포현의 흔적인 관아 건물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관청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김포향교는 원래 김포장릉 부근에 있었다고 하며, 장릉의 조성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들은 그 내력이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봐서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건물또한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구한말에 세워진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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