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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3

창녕 신라진흥왕척경비 (국보33호), 진흥왕이 비화가야를 편입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

신라가 창녕지역 비화가야(빛벌가야)를 편입한 이후 진흥왕이 이 곳을 다녀간 후 기념으로 세운 기념비이다. 북한산, 함초령, 마운령비와 함께 진흥왕순수비로 여겨지는 비석으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자연석 앞면에 비문을 새겨두고 있는데 앞면은 닳아서 읽을 수 없고 후반부에는 수행하던 신의 명당이 나열되어 있어 당시의 행정조직, 신분제 및 사회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비문 내용중에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아낳아 척경비로 일컫고 있으나, 비분의 내용과 성격 등을 고려해 볼 때 북한산을 비롯한 다른 순수비와 동일한 성격으로 보는 의견이 많아 보인다. 창녕읍 공원에 위치한 진흥왕 척경비. 원래는 창원 동쪽편 화왕산 목마산성 기슭에 있는 것을 일제강점기에 이 곳으로 옮겼다고 ..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198호), 신라 진흥왕의 영토확장 정책 의지가 표현된 비석

고구려의 영토확장 의지가 담겨 있는 중원 고구려비에 대비되는 단양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단양신라적성비이다. 중원 고구려비, 장미산성, 온달산성 등 신라 진흥왕때 신라와 고구려 간의 투쟁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양 적성비가 위치한 적성산성은 경상도에서 중부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인 죽령 고개를 넘자마자 나타나는 단양의 중심지로서 전략적 의미가 상당히 높은 지역이다. 산성 아래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이 지역을 장악했다는 것은 충북지역 상당부분을 장악했다고 할 수 있기때문에 그 의미를 높게 사서 적성비를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단양 신라 적성비에는 440자 정도의 글자가 적혀 있다고 한다. 비문 내용은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운 지역민들의 공을 치하하는 내용이라고 하며...

서울 북한산성 비봉, 진흥왕 순수비 유지 (사적228호)

북한산 봉우리중의 하나인 비봉은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고 진흥왕이 순수비를 세운 곳이다. 그 만큼 한강유역을 장악함에 있어 북한산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비봉은 산봉우리가 험해서 올라가기는 쉽지 않은 곳이라 아래에서만 감상해 보았다. 비봉 아래에서 본 진흥왕순수비(복제품) 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오르기는 약간 위험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비봉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에 세워졌던 신라 진흥왕비의 옛 자리이다. 북한산비는 비석을 세운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져 오다가 19세기 전반에 추사 김정희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북한산비에는 진흥왕이 북한산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나온 여러 고을에 세금을 면제해 주고, 죄수들을 석방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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