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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8

고양 행주산성, 흙으로 쌓은 삼국시대 토성

행주산성은 한강 하류 북쪽편 낮은 야산인 덕양산에 자리잡고 있는 산성이다. 주변은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한강과 고양시를 관통하고 있는 창릉천이 천연해자를 이루고 있다. 행주산성은 한강유역 쟁탈전이 극심했던 한성백제기에서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삼국통일이 될때까지는 한강하구 수운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였지만,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던 조선시대에는 크게 중요시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다른 산성과는 달리 석축을 별도 쌓지 않고 삼국시대에 쌓은 토성을 보완하고 있다. 넓은 평야을 통제하기 위해 천연요새같은 지형에 쌓은 전형적인 삼국시대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임진왜란때 이 곳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기때문에 유명해진 곳이다. 행주산성의 토성은 요즘 도시 근교의 작은 산에 많이 조성된..

서울 풍납동토성 (사적11호, 풍납토성), 마을이 형성되었던 북쪽편 성벽

서울 풍납동토성(일명 '풍납토성')은 몽촌토성과 함께 백제가 터를 잡고 국가를 세운 하남 위례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이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2.7km에 이르는 읍성으로 삼국시대 초기 읍성국가의 성(城)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로 남쪽편 몽촌토성과 함께 당시로서는 큰 규모의 도시였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가 건국한 이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압박을 받아 웅진(공주)로 천도했던 5세기말까지 500연 가까운 세월동안 백제의 수도로 한강변을 끼고 있어 많은 배들이 정박했던 물류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성벽은 한강변 늪지와 평지였던 곳에 인위적으로 흙을 다져서 성벽을 쌓은 판축식토성으로 전형적인 백제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폭 40m, 높이 11m에 이르며, 당시로서는 대규모 토목공사..

서울 풍납동토성(사적11호, 일명 '풍납토성'), 성벽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남쪽과 동쪽 성벽

풍납토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일대 한강변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토성이다. 백제가 한강일대에 도읍을 정한 이래 수백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을 이루고 있는 도성 성격의 토성으로 인근에 있는 몽촌토성과 함께 초기 백제 토성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풍납토성은 둘레가 4km에 이르는 성곽으로 조선시대 읍성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지 않은 편이다. 고조선과 삼한시대 한반도 서남해안에 촌락을 이루면서 형성되었던 읍성국가들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편으로 강을 끼고 있어 물류가 편리하고 적으로부터 방어에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풍납토성 주변에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원래는 토성바깥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자연적인 해자구실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풍납토성은 1925년 홍수 한강변쪽 일부자..

파주 육계토성, 임진강 남쪽에 위치한 백제계 토성

임진강변 남쪽에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계 토성인 육계토성이다. 초기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지역으로 보이는 임진강 남쪽 파주의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삼국시대 유적이지만 농경지로 사용되었고 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구분을 하기 쉽지 않은 곳이지만 전체적으로 서울 올림픽 공원내에 있는 몽촌토성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이 육계토성의 북쪽편에는 고구려 성인 연천 호로고루와 당포성, 남쪽편에는 파주 칠중성이 자리잡고 있어 생생한 격전의 현장임을 느낄 수 있다. 이 곳은 임진강에서 수심이 가장 낮은 걸어서 도하할 수 있는 가여울이 있어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점이었으며,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임진강이 북쪽으로 돌출해 있는 지점으로 가여울과 서쪽편 두지나루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지점에 성을 쌓고 ..

용인 처인성, 몽고침입때 명장 김윤후가 몽골 장군 살리타이를 사살, 몽고 침입을 물리친 곳

용인시와 남쪽 안성시, 평택시와 경계가 되는 지점에 위치한 남사저수지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처인성입니다. 전체 둘레 425m의 작은 평지성으로 성벽은 토성으로 쌓았으면 별로 높지도 않고 견고해 보이지도 않은 성입니다. 이 곳이 몽골의 고려 침입시 가장 유명한 전투인 처인성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고려시대 명장 김윤후가 몽골 자군 살리타이를 사살함으로써 당시 세계 최고의 군대인 몽골 기마대를 물리친 곳입니다. 처인성의 전략적 위치는 용인 이남에서 서울방향과 연결해 주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중요해 보이기는 하지만 성벽의 규모로 보아 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만 역사적으로 고려가 몽골군을 격퇴한 장소로서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처인성은 용인 남사에서 서울 방향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교통 ..

서울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산책길

서울 올림픽공원은 88올림픽 경기를 위해서 만들어진 공원이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중심으로 다수의 실내경기장이 있고, 이 공원은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하였다. 아마도 다른 나라의 올림픽 공원에 비해서 뛰어난 점은 이 공원내에 이천년전 초기 백제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의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인 몽촌토성이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몽촌토성은 깨끗하게 정비되어서 많은 사람들에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올림픽공원의 몽촌토성 산책길을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후문 주변의 몽촌토성아래 산책길이다. 몽촌토성 주위로 깨끗하기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서 몽촌토성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올림픽공원내에 있는 몽촌토성 내부에는 넓은 잔듸밭이 조성되어 있다.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에서 가장 ..

한국의 풍경 2010.08.28

서울 송파 몽촌토성, 초기 백제 수도 위례성을 지키던 토성

서울 올림픽 공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초기 백제 시대의 토성이다. 88올림픽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와 같이 했던 곳으로 그 때문에 공원화되고 아주 깨끗학 정비되어 있다. 전체 둘레는 2.7 km라고 하며 조선시대 읍성 규모의 토성이다. 한 나라의 수도로서는 규모가 작다는 점 또한 맞는 말 같다. 그래서 백제 수도 위례성이라고 인정 받지 못하는 것 같다. 풍납토성과 함께 초기 백제 수도 위례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것은 맞는 것 같다. 지금은 올림픽 공원의 일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올림픽공원 동쪽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북쪽편에 있는 몽촌토성이다. 몽촌토성의 성벽을 소개할 때 많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범적으로 목책을 설치해 놓은 곳이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이 보이는 이..

경주 월성(반월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월성교(모형)

경주 월성(반월성)은 신라의 궁궐이 내부에 있었던 도성입니다. 삼국시대는 고려.조선과는 달리 전쟁이 많았던 시절답게 궁궐이 요새화된 성벽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반월성이라는 천연의 언덕위에 궁궐을 짓고 사방을 토성으로 쌓았으며 토성 아래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한 해자 시설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도 동쪽편 일부에는 물을 채워서 해자 시설을 하고 있으며 여러곳에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남쪽 해자에는 월성교라는 아름다운 부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동쪽편 임해전지와 연결되는 성문 주위 경주 박물관 방향으로는 해자시설을 복원해 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월성 전체를 이런 형태의 해자로 둘러쌓여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동쪽편 임해전지 방향 출입문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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