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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문자전 8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문서에 보이는 신라 마을의 모습, 일본 정창원 문서

한반도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문헌상으로도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존재했고, 기자나 위만의 존재가 있었고, 중국에서 한반도 연안을 거쳐 일본으로 연결되는 해상무역이 활발히 이루졌기때문 낙랑지역을 비롯하여 창원 다호리, 김해 예안리 유적 등에서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기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자를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한자를 사용한 기록은 고대국가에서 부터 목간이나 토기를 비롯한 생활용품에 새겨진 명문,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기록한 비석의 형태로 많이 남아 있다. 반면에 한나라에서 발명된 종이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반도에 도입되었으나 종이에 적혀진 문서의 형태로는 남아 있는 유물을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중앙박물관 2011.11.26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이두와 향찰의 발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우리나라에 한자가 수용된 이후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두, 향가, 향찰, 속자, 구결 등 다양한 형태로 방법들이 만들어졌는데, 보통 이를 통털어서 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으로 삼국시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고려때에는 이서라는 형태로 하급관리들이 공문서나 관용문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이두는 넓은 의미로 한자를 차용해서 음을 표기한 것을 통칭하며, 현재의 일본어 또한 이두와 비슷한 개념의 문자라 할 수 있다. 이두는 신라초기부터 사용되어 진 것으로 보이며 서동요, 제망매가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이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신문왕때 설총이 기존의 이두사용법을 정리하여 크게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두의 사용은 삼국유..

중앙박물관 2011.11.22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사상,종교와 문자

고대국가에서 국가나 집단간의 교역을 위한 경제적인 동기와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거나 통치를 위해서 문자의 사용이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자의 기원 또한 길흉화복을 점치는 행위에서 그 내용을 기록하는 갑골문자 등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종교적인 행위가 당시에는 지배계층의 통치를 위한 정치적인 활동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고대국가에서 통일신라까지 시기의 문자 기록 중 상당수는 종교적인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은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며, 가장 오래된 문서 또한 붓으로 쓴 사경이다. 삼국시대에는 종교적인 내용이 담긴 목간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중국의 능묘제도가 받아들여진 이후에는 개인의 업적을 칭송한 묘지비..

중앙박물관 2011.11.20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글자가 새겨진 토기와 기와

삼국시대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했던 흔적들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돌에 글을 새긴 비석일 것이다. 비석에서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후대에 만들어진 역사서 등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반면에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한 문자는 화물이나 물건의 꼬리표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던 목간이나 그릇, 건축에 사용한 벽돌이나 기와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기와나 토기는 전국적으로 많이 발견되는편인데, 주로 제작연도나 제작자, 제작경위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런 유물들 중 지명이나 마을이름 등이 적혀 있는 것에서 당시 이런 물건들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집..

중앙박물관 2011.11.18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목간과 글자가 새겨진 생활용품

목간은 글을 적은 나뭇조각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문서라고도 할 수 있으며 책(冊)이라는 한자의 어원이 된다. 대개 나무를 폭 1cm, 길이 20~30cm, 두께 3mm 정도로 끈으로 묶어서 사용했는데, 지금의 책과 비슷한 크기라고 할 수 있다.논어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저서들이 적혀 있는 목간들이 중국에서도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목재가 잘 부패하지 않는 사막이나, 뻘에 묻혀 있던 상태로 많이 발견된다. 목간은 우리나라에서 여러지역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경주 안압지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에 적혀진 목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목간은 고조선때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중.일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에서는 교역을 위한 경제적인 목적으로 한자..

중앙박물관 2011.11.17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의 비석

비석은 어떤 인물이나 사건 등을 기념하기 위해 돌.목재.철재 등에 글자와 조각 등을 새겨 넣은 기념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돌에 글자와 조각상을 새겨놓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비석과 같은 형태의 기념물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의 함무라비법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게 단초를 제공해 준 로제타스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석들이 남아 있다. 동양에서 비석은 주로 돌에 글자를 새긴 석비의 형태로 중국 주나라부터 시작되어 한대와 당대를 거치면서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을 갖춘 전형적인 석비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비석 중..

중앙박물관 2011.11.16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의 문방구

한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로 문자생활을 사용했던 문방구로는 기본적으로 종이,붓,먹,벼루가 구한말 이후 새로운 필기도구들이 등장하기까지는 사용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문방구가 이후와 다른점은 글자를 적는 필기도구로서 목간, 죽간 등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목간은 종이가 발명대기 이전인 진한(秦漢)시대와 그 이후에도 종이와 함께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간은 끈으로 엮은 얇은 나무판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으로 책(冊)이라는 글자의 어원이 되며,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도 상당히 오랜기간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도 문자가 도입된 이래로 목간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창원 다호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붓과 지우개 역할을 했던 칼에서 알 수 있듯이 교역을 위한 실무적인 목적에서 먼저 사용되었던 것으로..

중앙박물관 2011.11.12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문자의 수용

한반도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로 중국과 비슷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고조선은 전국시대부터 중국 연나라와 교역이 활발했으며, 명도전이나 오수전 등의 화폐들이 중국과의 교역통로에 위치한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또한 전국시대나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많은 연나라지역 사람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조선으로 망명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조선으로 망명했다는 기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고조선은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문자를 사용했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문자 사용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조선시대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발굴되고 있는 문자와 관련된 유물들은 주로 한.중.일 해상교역로에 분포해 있는 삼한지역..

중앙박물관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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