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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39

파주 적성향교, 적성현 관아에서 설치한 중등교육기관

파주 적성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시대 적성현 관아에서 설립한 중등교육기관이다. 향교는 삼국시대 군사요충지였던 칠중성 아래 위치하고 있다. 적성향교는 한국전쟁때 소실되었던 것을 1975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만 복원되었고,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는 복원되지 않았다. 파주시 적성면 일대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칠중현을 설치하였고, 신라에는 중성, 고려때부터 적성이라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동쪽으로 마전군, 서쪽으로 장단부와 파주, 남쪽으로 양주와 경계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은 북쪽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남쪽 감악산을 비롯하여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이다. 주변 지역이 넓지는 않지만..

상주향교,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

상주향교는 조선시대 지방통치조직 중 큰 규모였던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이다. 상주목 관아가 있던 상주 구도심 왕산공원에서 약 1.7km 떨어진 옛 상주읍성 남쪽에 위치한 남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상주 향교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조선초 세종8년(1426)에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대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고을 규모에 걸맞게 향교 중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를 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 향교에서 남산중학교를 설립하여 향교가 중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 학교가 이전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향교는 조선후기에 서원에 밀려 중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선현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위상이 축소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전국대부분의 향교는 제사기능만..

김포 통진향교, 옛 통진현 중등교육기관

조선시대 한강하구 김포지역을 관장하던 통진현 관아가 있었던 월곶면소재지에는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인 통진향교가 남아 있다. 이 향교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려중기 인종대에 처음 세워졌다. 현(縣)단위 고을의 향교로서 그 규모는 크지 않으며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동재와 문루인 풍화루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것을 최근에 복구하였다고 한다. 경사진 지형에 앞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 뒷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형태로 볼 때 명륜당과 동재의 규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조선후기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제사기능만 남은 전형적인 지방향교의 형태를 하고 있다. 통진현은 한강하..

태안향교, 태안군 관아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선시대 공립중등교육기관

태안은 충남남도 서해안 태안반도 대부분이 포함된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태안군이 설치되었다. 태안읍에 위치하는 해발284m의 백화산이 비교적 높은 산으로 대부분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안은 중국.한반도.일본을 경유하는 해상교역로가 존재했던 고대 이래로 중요한 지역으로 삼국시대 백제는 태안을 통해서 중국 남북조와 교류했으며, 그 흔적은 태안마애석불, 서산마애석불을 비롯하여 서산지역에 남아 있는 여러 고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태안군 관아에서 운영했던 공립중등교육기관이었던 태안향교는 태안군 관아가 있던 태안읍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향교는 보통 관아가 있는 읍치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태안향교는 객사가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태안초등학교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담양향교, 조선시대 담양도호부 공립교육기관

담양향교는 담양도호부에서 운영하던 공립 중등교육기관이다. 담양군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나무숲 죽녹원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지만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 향교가 세워진 것은 조선이 건국되던 시기인 1938년(태조7)이라고 한다. 현재의 향교 건물들은 대체로 숙종대에 다시 지어진것을 여러차례 고쳐지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죽녹원 대나무숲과 함께 담양도호부 관아와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담양향교는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제법 큰 고을이었던 담양도호부의 위상에 걸맞게 대성전에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강당 건물도 꽤 큰 편이며, 누마루처럼 문을 열면 주변 경치가 한눈에 ..

담양 창평향교, 옛 창평현 중등교육기관

담양군 고서면 교산리에 위치한 창평향교는 조선시대 창평현 관아에서 운영하던 공립 중등교육기관이다. 창평향교는 조선초 정종대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성종대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다고 하는데, 그후에도 수차례 중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증암천이 흐르는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경사지에 세워졌으며, 대성전, 내삼문, 명륜당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경사진 언덕에 세워져서 향교마당은 넓지 않은 편이지만 언덕에 세워져서 전망이 꽤 좋은 편이다. 창평현은 담양군 남쪽지역인 창평면.고서면.대덕면.남면.수북면 등을 읍치로 하던 조선시대 지방행정구역으로 일제강점기에 담양도호부와 합쳐서 담양군이 되었다. 주로 영산강 이남 창평천과 증암천 유역의 넓은 ..

장성향교, 옛 장성도호부 공립교육기관

장성군 장성읍 성산리에 소재한 장성향교는 조선시대 장성도호부 공립교육기관이다. 장성향교는 장성읍 소재지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장성읍 소재지가 일제강점기에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기차역과 가까운 현재의 위치로 옮겼기때문이다. 원래 장성도호부 관아는 향교에서 800여m 떨어진 성산초등하교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장성읍 지역에는 장성현이 있었고 남쪽에 진원현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지역이 피폐해져서 2개의 현을 합쳤다고 한다. 이때 장성향교와 진원향교가 합쳐져서 오늘날의 장성향교가 되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내류지역의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장성군 북쪽에 입암산선을 쌓고 읍치를 성산으로 옮기면서 향교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의 향교 건물 또한 이때 세워진 것..

파주 교하향교, 옛 교하현 공립교육기관

파주시 교하읍은 고려시대까지는 교하군, 조선시대에는 교하현이 있었던 지역이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두개의 강 사이에 있다고 해서 교하(交河)라는 이름이 붙었던 지역으로 그 범위는 넓지 않지만 한강 하구지역을 지키는 군사적인 요지였기때문에 오랫동안 독립적인 고을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주시청이 있는 금촌동 서쪽편 지역이 옛 교하현에 속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관아는 현 교하읍사무소와 교하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하현 공립 중등교육기관이었던 교하향교는 교하읍에서 약간 떨어진 파주시 금촌동 공릉천변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탄현면 갈현리에 있던 것을 영조대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의 향교 건물은 조선후기에 새로 지은 건물로 당시는 향교의 교육기..

경기도 광주향교, 남한산성에 있던 광주부 관아에서 설치한 공립교육기관

경기도 광주는 고려 성종때 전국에 설치한 12개 행정구역 중 하나인 광주목이 설치된 지역으로 그 범위는 현재의 광주시,성남시, 서울의 강남지역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한성 백제의 수도가 있었던 지역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이성산성을 중심으로 한강유역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던 시기에도 광주호족은 전국의 유력 호족 가운데에서도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지역이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광주목은 인조대에 광주부로, 숙종대에는 광주유수로 승격되었다. 원래 광주의 중심지역은 현재 하남시 춘궁동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병자호란 이후에 관아를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하남시 춘궁동 일대에는 통일신라시대 산성인 이성산성과 고려초기 절터이 춘궁동사지가 있으며,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김해향교, 금관가야 중심지 김해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김해도호부 중등교육기관

낙동강하구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김해는 옛 금관가야의 도읍지로 고려시대 이래로 종3품의 부사가 수령인 김해도호부 설치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넓은 농토와 함께 조세운송과 물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낙동강 뱃길에서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고을이다. 김해에는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김해읍성을 쌓았고, 가까운 곳에 산성인 분산성을 두고 있다. 옛 김해도호부의 관아건물로는 객사 후원과 교육기관인 김해향교만이 남아 있다. 김해향교는 관아가 있던 읍성 북문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고을 향교와 비슷한 입지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해향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초인 태종대로 화재 등으로 여러차례 이전을 하여 영조대에 현재의 위치에 자라잡고 있다. 김해향교는 앞..

춘천향교, 옛 춘천도호부의 중등교육기관

춘천은 강원도의 도청소재지로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고장으로 강원도에서는 보기드물게 넓는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춘천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부터 이 지역의 중요한 세력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에는 한강유역 쟁탈을 위한 각축장으로 고구려의 돌방무덤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이후에는 대체로 부사가 고을 수령인 도호부가 설치되어 지역의 중심시 역할을 했던 고장이었다. 현재 춘천에는 옛 관아건물로는 고종때 이곳에 이궁을 세울때 만든 출입문인 위봉문과 문루인 조양루만이 남아 있다. 춘천향교는 춘천도호부에서 운영하던 공립 중등교육기관으로 설립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중종때인 1520년에 크게 중건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안성 양성향교, 옛 양성현 관아의 중등교육기관

양성현은 안성시 양성면 일대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때에는 서복홀, 신라 경덕왕 때는 적성이라 불렀다고 고려초부터 양성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개국초부터 현감이 고을 수령인 양성현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안성군과 통합되었다. 고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으로 양성향교를 제외하고는 옛 양성현 관아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인근에 덕봉서원이 있다.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이었던 양성향교는 양성현 관아가 있었던 양성면 소재지에서 1km정도 떨어진 낮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향교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1530년(중종25)에 세워졌으며, 조선후기에 1774년(1774)에 중창되었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뒷편에는 공자와 선현들을 모시는 대성전을 두고 있다. 현재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안성향교, 안성군 관아에서 설치한 중등교육기관

안성시 명륜동에 소재한 안성향교는 조선 중기 중종 27년(1532)에 처음 지어졌으나 특별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없고 일제강점기인 1932년과 1980년대에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안성 시가지와 평야지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이 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뒷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고 있다. 건물들은 그 연대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앞쪽에 앞면 11칸짜리의 큰 2층 누각건물 설치해 놓고 있는 등 독특한 건축양식과 짜임새 있는 공간구조를 하고 있다. 명륜당이 앞면5칸, 대성전이 앞면3칸으로 경기지역의 향교 중에서는 건물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안성군은 조선시대 종4품인 군수가 고을수령인 중간규모의 고을로 현재 안성시 중심부를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

안성 죽산향교, 조선시대 죽산도호부 중등교육기관

죽산향교는 안성시 죽산면 소재지 뒷편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이다. 죽산향교는 조선초인 태종 13년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하며, 여러차례 중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죽산향교가 소속되었던 죽산도호부는 종3품 부사가 고을 수령이 큰 고을이었기때문에 원래는 현재보다 큰 규모였다고 하며, 임진왜란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길때 그 규모가 작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뒷편에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위치한 전학휴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후기 지방의 교육기능이 서원으로 옮겨짐에 따라 제향을 중심으로 그 기능이 바뀐 것으로 보이며, 현재도 대성전의 규모는 큰데 비해서 강학공간인 명륜당은 작은 규모를 하고 있으며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서재는 남아 있지 않..

논산 노성향교, 조선시대 노성현 공교육 기관

충남 논산시는 일제강점기에 행정개편과정에 조선시대 노성현, 연산현, 은진현이 합쳐서 이루어진 고장이다. 금강하구 넓은 평야 지대의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장으로 농업생산이 풍부하고,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역사 이래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토지생산력을 바탕으로 유교문화가 활발했던 곳이다. 황산벌 평야지대 북쪽편 공주와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한 노성산성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노성현이라고 불렸으며, 노성산성 남쪽편 면소재지에 노성현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유교문화가 발전했던 곳으로 관아 유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후기 당파 소론의 영수인 윤증의 명재고택, 송시열이 세원 공자를 모신 궐리사, 충남을 대표하는 서원인 노강..

강화 교동향교, 교동도호부의 공립 교육기관

한강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교동도는 섬의 규모가 크지 않아 지금은 강화군에 속한 마을이지만 삼국시대때부터 한강유역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강화와는 별개로 고목근현이라 불렀으며 신라경덕왕때 교동현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국방상의 중요성으로 병자호란 이후에는 수영이 남양에서 이 곳으로 옮겨지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633년에는 삼도통어사가 설치되어 경기도.황해도.충청도의 수군을 총괄하던 고장이다. 교동도에 지금은 옛 교동부 관아의 흔적은 읍성을 쌓았던 성곽 일부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고, 교동도의 주산인 화개산 남쪽 기슭에 관아에서 운영하던 교육기관이 향교가 남아 있다. 교동향교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서 공자의 초상화를 가져와 모셨던 유서깊은 향교 중의..

강화향교, 조선시대 강화유수부 중등 교육기관

강화는 고려시대 이래로 국방상 중요한 고을로 종3품인 강화유수가 고을수령이었던 도호부가 설치된 고장이다. 조선후기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굴욕을 당한 이후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져서 관아가 있던 강화읍내에는 산성이 구축되었으면, 바깥쪽으로는 외성이, 해안에는 돈대가 설치되었고 관아가 있었던 곳에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행궁이 설치되었다. 강화유수가 관리하던 강화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고려산 남쪽에 세워졌던 것을 갑곶리, 서도면 등으로 이전했다가 1731년 강화유수 유척기가 현재의 위치인 강화읍 관청리로 옮겼다고 한다. 강화는 국왕이 국방상 매우 중요시하던 고장으로 서원이 많이 설치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서원이 지역 여론을 조성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을 하지 않고, 공교육기관이 강화향교에서 전담..

성주향교 대성전과 명륜당(보물 1575호), 동묘서학의 특이한 공간 배치

대구광역시와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경북 성주군은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었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고려초 지방호족인 이총언이 태조왕건을 도운 공으로 경산부로 승격되기도 했으며, 조선초 태종대 전국적인 군현제 개편때에는 성주목이었으나, 인근 대구에 경상감영이 있었던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작은 규모의 고을인 성산현으로 존속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성산현 관아 소재지는 성산가야 고분군이 인근에 있는 성주읍 경산리로 옛 관아 건물로 동헌인 성산관과 관아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성주향교가 남아 있다. 옛 성산현 관아가 있던 성주군 경산리는 읍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읍성 북쪽 낮은 구릉에는 이지역 중등교육기관이 성주향교가 있다. 성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에 세워진 향..

보령향교, 조선시대 보령현 공립교육기관

충남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소재한 공립교육기관인 보령향교이다. 보령현은 조선시대까지 현 보령시의 행정중심지역이었으며, 그 흔적으로 보령읍성 성곽과 보령향교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보령현과 충청수영이 있었던 오천군, 남쪽의 남포군이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합쳐져서 현재의 보령시를 이루고 있다. 장항선 철로의 개통과 대천해수욕장의 명성으로 현재는 행정중심지가 대천으로 옮겨져 있다. 보령향교는 강당인 명륜당,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유생들의 숙소인 동.서재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 향교이다. 대천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이 고장의 해안은 백사장이 발달해 있으며, 경치가 뛰어나서 그런지 조선시대에도 서해안 관광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 곳 보령향교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고을 규모에 비..

고성 간성향교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교동에 위치하고 있는 간성향교이다. 간성읍은 조선시대 종3품인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었으며, 동해안의 여러 고을 중에서는 강릉과 삼척을 제외하고는 고을 규모가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간성군은 대관령 등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진부령 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금강산과 관동팔경 유람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간성군내에는 조선시대 4대 사찰의 하나로 왕실과 관련되어 있었던 건봉사가 있다. 옛 간성군 관아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설명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간성읍사무소와 간성초등학교가 자리에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간성향교는 간성읍에서 약간 떨어져 건봉사와 진부령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다. 이 향교는 조선 세종때 처음 세워졌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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