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홍주성 5

홍주목 관아 여하정

홍주목은 충남 서해안 내포평야지대를 관장하던 정3품의 목사가 다스리던 상당히 큰 고을이다. 옛 결성현과 홍주목이 합쳐진 지금의 홍성군은 작은 군단위 행정구역이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규모가 있었던 고을이었다. 홍성군청이 소재한 곳은 옛 홍주성의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동헌인 안회당, 아문, 뒷편의 정자인 여하정과 연못이 남아 있다. 옛 홍주목 관아 후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 있는 작은 섬에는 여하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1896년 홍주목사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육모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지은지 100년 정도되어서 문화재로서는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방 관아 정원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잘 보여 주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뒷편으로는 옛 홍주..

조선 관아 2012.04.08

홍성 홍주향교

홍성군은 충남 서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충청 서해안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인 홍주목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중 정3품의 높은 관직인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인 목(牧)은 지방행정단위 중에서는 가장 큰 곳에 속하며 대부분 이름끝에 주(州)를 달고 있다. 아마도 충남서해안 지역 대부분의 고을이 직속은 아니지만 관할지역과 비슷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홍성군은 옛 홍주목과 결성현이 합쳐진 것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인근의 공주와 일본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홍성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홍주향교는 홍주목 관아가 있었던 읍성인 홍주성에서 북쪽편에 위치한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서 목사가 근무하던 동헌과는 많이 떨어져 있다. 홍주..

홍성 홍주 아문, 홍주목관아 출입문

충남 홍성군 군청소재지가 자리잡고 있는 옛 홍주성내의 관아건물 중 동헌인 안회당과 함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축물로 관아 출입문인 홍주아문을 들 수 있다. 이 문은 구한말인 1870년에 세워진 건물로서 시대적으로는 문화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서양함선의 출몰과 프랑스인에 의한 남연군묘 도굴 등 외세의 침입에 많았던 시기에 새로이 정비한 관아와 읍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홍주아문은 구한말에 세워진 것이라 그런지 다른 지역 관아 아문과는 달리 문루를 두지 않고, 삼문의 형식 또한 취하지 않고 있다. 앞면 5칸의 개방된 형태의 출입문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아문의 형태이다. 아마도 관아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쌓여 있었기때문에 방어의 의미가 없어 보이..

조선 관아 2011.02.04

충남 홍성 홍주성, 구한말에 증축한 조선시대 읍성

충남 홍성의 군청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는 홍주성은 구한말인 고종때 홍주목사 한응필이 크게 보수한 읍성으로 조선이 쌓은 마지막 성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곳 홍주성 성곽은 최초의 축성연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구한말 일본에 대항한 큰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의 전투결과 및 일본인들로 인해 많은 훼손이 있기는 했지만 성곽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홍주성은 둘레 1,772m에 달하는 읍성으로 원래는 사대문을 두고 있었으나 지금은 동문인 조양문만이 남아 있다. 성내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관아건물이 35동이나 있었으나, 홍주아문과 동헌인 안회당 정도만 남아 있다. 구한말에 증축한 홍주성은 조선시대 축성기술이 동원된 마지막 성곽으로 성곽을 쌓은 규모로 보았을 때 상당히 정성을 들여서 쌓았던 것으로..

홍성 조양문, 홍주성의 동문

홍주성은 조선시대 홍주목 관아가 있던 읍성으로 지방 읍성 중에는 규모가 제법 크고, 잘 보존되어 있는 읍성 중의 하나이다. 홍주성 내에는 홍주목 관아와 주요 행정시설들이 있었는데, 정3품이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로 관아의 규모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홍주성에는 남쪽과 서쪽의 성벽, 동헌, 아문과 동문인 조양문이 남아 있다. 홍주성은 구한말 고종때 대대적인 수리를 한 성곽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가장 최근에 축성한 성곽이라고 할 수 있다. 홍주성에는 동문인 조양문, 서문인 경의문, 북문인 망화문으로 3곳에 문루를 세웠었는데 지금은 도심 한가운데에 조양문만이 남아 있다. 조양문은 구한말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으킨 의병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로 상당부분 파괴되어 있던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홍주성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