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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받침돌 3

경주 성덕왕릉 귀부, 생동감이 넘치는 거북받침돌

신문왕의 둘째아들이자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손자인 성덕왕릉 앞에 세워졌던 비석의 받침돌이다. 비몸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으며 거북머리 또한 남아 있지 않다. 비석으로서 전체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조각수법이나 돌의 재질이 상당히 뛰어난 걸작으로 보인다. 거북은 모양은 근육질이 있어 보이는 크고 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발은 앞으로 나아 가련는 형상이다. 비몸이 없어져서 비석에 적힌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경덕왕때 만들었다고 삼국사기 기록에 남아 있다. 성덕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통일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으로 일명 '에밀레종'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성덕대왕신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성덕왕은 당나라와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이끌었으며 유교를 적극적으로 ..

경주 서악동귀부 (보물 70호),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묘비

보물 70호로 지정된 경주시 서악동 태종무열왕릉 앞 족에 남아 있는 서악동 귀부이다. 이 귀부는 비석을 받치는 거북받침돌로 태종무열왕릉비와 함께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초기 비석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네발로 땅을 힘차게 디디고 있는 이 거북받침돌은 조각수법이나 기교면에서 태종무열왕릉비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거북받침돌은 후대에는 용의 머리로 바뀌는데 거북머리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비석은 서악서원에 출토된 비몸에 기록된 글과 삼국사기 기록으로 볼 때 김인문의 공적을 새겨놓았던 비의 받침돌로 추정하고 있으며, 머리부분인 이수는 남아 있지 않다. 김인문은 태종무열왕이자 문무왕의 친동생으로 삼국통일전쟁에서 당과의 외교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죽..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국보 25호), 후대 비석의 모범이 된 조각수법이 빼어난 걸작

국보 25호로 지정된 신라 29대 태종무열왕릉 앞에 세워진 비석이다. 김춘추라는 본명도 같이 잘 알려져 있는 태종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는 등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왕릉이 입지한 지역은 경주 형산강 서쪽 선두산 아래 대구와 영천으로 연결되는 옛 국도가 지나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통일을 염두에 두었던 당시 경주를 위협할 수 있는 한반도 내륙 한강유역과 경주를 연결하는 교통로에 그의 능을 둠으로써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그의 능을 잘 볼 수 있게 하고, 신라 내부적으로 경주 서쪽의 방어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왕릉 조성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종무열왕릉비는 현재 비몸은 일부 파편만 남아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는 비각안에 거북모양의 받침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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