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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묘 7

[중국 취푸(曲阜)] 공묘(孔庙), 홍도문(弘道门)과 대중문(大中门)

북경 공묘(孔廟)와 함께 공자를 모시는 사당을 대표하는 취푸(曲阜)의 공묘(孔廟)는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죽은 후 그를 모시는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2천년 이상 존재해 왔던 곳으로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 사람들이 숭상했던 곳이다. 공묘는 한나라 고조가 이곳에서 제사를 올린 이후 역대 황제들로부터 존중을 받아왔으며 그 영역 또한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공묘는 취푸읍성 남문을 들어서면 첫번째 패방에서 시작하여 대성전까지 직선으로 삼도(三道)가 이어진다. 첫번째 출입문인 영성문과 2번째 출입문인 성시문, 3개의 패방을 지나면 자금성의 금수(金水)에 해당하는 벽수(璧水)를 지나는 다리인 벽수교(璧水橋)를 만나게 된다. 이런 건물배치 양식은 명나라 이후 공묘(孔廟)를 크게 중건하면서 궁궐양식을 반..

중국(China) 2014.02.20

[중국 취푸(曲阜)] 공묘(孔庙), 영성문과 홍도문 그리고 3개의 패방

공묘(孔庙)는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중국 북경 국자감을 비롯하여 중국 전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성균관 대성전, 각 지역 향교 대성전도 이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북경 국자감 공묘(孔庙)와 함께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수도 취푸(曲阜)의 공묘(孔庙)가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취푸의 공묘는 공자가 죽은 2년 되던 해에 공자가 살던 집을 묘(廟)로 삼면서 시작되었으며, 한고조 유방이 공묘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12명의 역대 황제들이 직접 방문하여 제사를 올렸으며 100명 이상의 황제가 대리인을 파견하여 제사를 올렸다. 현재의 공묘는 북송대에 궁궐 형식을 사당을 건설하였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명나라대 크게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취푸(曲阜) 공묘(孔廟)는 곡부읍성 남문..

중국(China) 2014.02.19

[중국 취푸(曲阜)] 공림 명묘군(明墓群), 명대 연성공(衍圣公)을 지낸 공자 종손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

공림(功林)은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의 묘역이 조성된 이래로 10만이 넘는 공자의 후손들이 묻혀있는 세계 최대의 가족묘역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한대에 유학이 국가이념으로 정착된 이래로 성역화되었으며 역대왕조의 후원을 받아 그 면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현재의 면적은 183ha에 이른다. 특히, 명왕조와 청왕조때에 황실의 후원을 받아 면적이 크게 확장되었는데, 명대에는 서쪽편으로, 청대에는 확장되었으며 명묘군, 청묘군이 형성되어 있다. 공자의 후손 중 장손은 송인종(1010~1063년)이래로 연성공으로 임명되어 공림과 공묘를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직위와 역할 외에 세금을 걷고 곡부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런 전통은 원,명,청대를 거쳐 중국에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이어졌다고 ..

중국(China) 2014.02.17

[중국 취푸(曲阜)] 공림(孔林), 공자가 묻힌 공자묘(孔子墓, Confucius' Tomb)

공림(孔林, Konglin)은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수도였던 취푸(곡부성) 북쪽 사수(泗水) 부근에 위치한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묘역이다. 공역은 2㎢의 넓은 숲으로 수십만그루의 진귀한 수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3,600여개의 비석과 10만기의 무덤들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 공림에서도 중심이 되는 영역은 공자가 묻힌 무덤이라 할 수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자묘가 있는 영역은 제사시설이라 할 수 있든 형전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묘역안에는 공자와 그의 아들 공리, 손자이자 맹자의 스승이기도 한 공급의 무덤이 같이 있다. 형전을 통과하면 향나무처럼 생긴 울창한 고목들이 마치 도열한 것처럼 서 있는 길이 공자묘까지 이어지고 있고, 왼쪽편에는 '자사'로 잘 알려진 공자의 손자이자..

중국(China) 2014.02.05

[중국 취푸(曲阜)] 공림(孔林), 수수교(洙水桥)에서 형전(享殿)까지

공림은 옛 노나라 수도였던 산동성 취푸시 사수(泗水, 현 泗河) 남쪽편 공자 무덤 주위에 조성된 인공림으로 10만여 기의 공자 후손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묘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한시대에 공자묘를 성역화하면서 여러 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역대 황제들이 땅을 하사하여 오늘날 규모로 확장되었다. 공림입구 광장에 매표소가 있는 패방을 지나서 향나무 고목들이 가로수 역할을 하는 길을 지나 공림의 실질적인 출입문인 '지성림문'을 들어서면 향나무를 비롯하여 수많은 종류의 고목 10만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그 아래 주인을 확인하기 조차도 힘든 10만여 공자후손들의 무덤들과 비석들을 볼 수 있다. '지성림문'을 들어서 공림안을 흐르는 작은 하천인 수수(洙水)를 볼 수 있다. 수수(洙水)는 묘역과 바깥세상을 ..

중국(China) 2014.01.30

중국 북경 국자감 대성전(大成殿), 공자 위패를 모신 대성전의 시초

북경 국자감은 원나라때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을 세우고, 유학 교육기능을 갖는 강학공간을 그 주위에 세움으로서 오늘날 국자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경의 국자감은 고려시대 국자감과 조선의 성균관, 각 지역의 향교의 형태를 갖추게 한 모범이 되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북경에서는 자금성의 규모에 비해서 국자감의 크기나 비중은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 성균관이나 서원, 향교 들은 전묘후학(前廟後學)의 건물배치로 앞쪽에 대성전이나 사당을 두고, 뒷편에 강학공간을 두는 것이 보통이나, 북경 국자감은 동쪽에 대성전이 있고, 서쪽편에 강학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국자감이 먼저 세워진 것으로 보아, 전묘후학의 건물배치..

중국(China) 2009.10.06

중국 북경 국자감 - 대성전(大成殿) 마당 고목과 비석들

공자 위패가 모셔진 국자감 앞 마당에는 우리나라 성균관 대성전과는 달리 은행나무가 아닌 향나무가 들어서 있고, 마당 양쪽으로는 거대한 비석 11개가 비각안에 있다. 아마도 향을 피운다는 의미로 마당에 향나무를 심은 것으로 보이며, 색다른 풍경의 마당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당 자체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규모 비해서는 넓이는 좁은 편에 속한다. 아마도 제사를 지낼때 참석대상 인원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성문을 통해 대성전을 들어가는 길. 아마도 황제의 가마가 지나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당에는 행사를 위한 광장이 조성되어 있지는 않다. 대성전 앞 마당에 심어진 거대한 향나무. 세월의 흔적을 느길수 있는 향나무. 대성전 앞 마당 좌.우에는 11개의 거대한 비석이 비각 안에 놓여 있다...

중국(China) 200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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