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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천대 4

창경궁 관천대(보물851호), 국왕이 직접 천문을 관측하던 관천대(觀天臺)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는 현대그룹 계동사옥 앞에 있는 관산감관천대와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2개의 관천대 중의 하나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조선 후기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천문관측 시설로 많지 않은 유적중의 하나이다. 관천대는 높이 3m로 화강암으로 만든 석대 위에 조선시대에 가장 정밀한 천문관측대인 소간의가 설치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였다고 한다. 관상감 관천대는 실무관리들이었던 서운관(관상감) 관원들이 천체를 관측하던 실무용인데 반해서, 창경궁 관천대는 국왕이 직접 천문을 관측하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을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 매우 중시하였는데, 이는 해와 달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각과 절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

[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천문학, 천상분야열차지도각석(국보228호)

동아시아에서 천문학은 국왕의 권위와 대외관계에 관련된 정치와 외교에서 아주 중요한 학문이었다. 그래서 서양의 천문학에 비해서도 상당히 발달되었던 학문의 한 분야였다. 천문학은 해와 달의 움직임, 계절의 변화에 따른 별자리의 이동을 기본적으로 하고, 천문학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였던 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 하늘의 뜻을 살피는 중요한 행사였던 일식과 월식의 예측 등의 천문학 연구가 국가 통치에서 국왕과 나라의 권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는 한나라 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위상을 강화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특히, 조선전기 세종때에는 조선을 건국한지 얼마되지 않았기때문 국가의 위상을 정립하고, 국왕의 권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천문학 연구가 활발히 일어..

관상감관천대(觀象監觀天臺)와 현대 계동 사옥

창경궁 마당에 있는 관천대와 함께 조선시대에 운영하던 관천대 중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관천대입니다. 창경궁 관천대는 국왕이 천문을 관측하던 곳이고, 이 관상감관천대는 관상감 관리들이 천문을 관측하던 곳입니다. 창경궁 관천대와 구분하기 위해서 관상감관천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와 건설을 이끌어 왔던 현대그룹 계동사옥 마당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기상청 역할을 하던 관상감 자리에 있던 관천대입니다. 관천대의 기능은 관천대 위에 간의를 올려놓고 별을 관측하는 곳으로 첨성대라고도 불립니다.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처럼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상감관천대는 지금은 현대그룹 계동 사옥 마당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 본 관상감관천대입니다. 크게 특징이 있는 유물은 아닙니..

세종대왕 능 (영릉) 전시물 - 정남일구, 적도의, 관천대

☞ 정남일구 정남일구는 세종19년(1437년)에 제작한 해시계의 하나로 지남침이 없이도 남쪽 방향을 결정하고 동서로 움질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축 끝에 추를 달아 정남일구의 수평을 잡도록 하였다. 지평환에는 24방위와 24절기가 표시되어 있으며, 사유환 양 측면에 눈금이 새겨져 있어 정오에 태양의 남중고도를 측정할 수 있다. 사유환 안쪽에는 직거와 남북방향으로 움직이는 규형이 있어서 일 년 동안의 24절기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하루의 시각을 알 수 있다. 시각을 알아보려면 사유환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규형을 남북방향으로 움직여 규형의 남쪽 구멍을 통과한 태양 광선이 시각선과 절기선이 그려져 있는 시반면에 닿을 때 정사각형으로 뚫린 구멍의 중앙에 나타난 시각을 읽으면 된다. ☞ 적도의 조선후기, 남병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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