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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관 12

함양 남계서원(사적 499호)

조선중기 학자이자 관리였던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함양 남계서원(사적 499호)이다. 이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두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다. 아래쪽에 강학공간인 강당과 동.서재를 두고 위쪽에 사당을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처음으로 구현한 서원으로 후대 세워진 서원들의 모범이 되었던 곳이다. 문루, 강당, 동.서재, 경판고(장판각), 내삼문, 사당, 전사청, 고직사 등 서원이 갖추어야 할 건물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도 살아 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로 서원건축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정여창(1450~1504년)은 성종대에 활동한 인물이다. 조선중기 사림세력을 이끌었던 김종직 문하에서 김굉필과 함께 수학하였다. 성종 때 여러차례 관직에 추천되었으나..

보령향교, 조선시대 보령현 공립교육기관

충남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소재한 공립교육기관인 보령향교이다. 보령현은 조선시대까지 현 보령시의 행정중심지역이었으며, 그 흔적으로 보령읍성 성곽과 보령향교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보령현과 충청수영이 있었던 오천군, 남쪽의 남포군이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합쳐져서 현재의 보령시를 이루고 있다. 장항선 철로의 개통과 대천해수욕장의 명성으로 현재는 행정중심지가 대천으로 옮겨져 있다. 보령향교는 강당인 명륜당,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유생들의 숙소인 동.서재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 향교이다. 대천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이 고장의 해안은 백사장이 발달해 있으며, 경치가 뛰어나서 그런지 조선시대에도 서해안 관광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 곳 보령향교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고을 규모에 비..

고성 간성향교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교동에 위치하고 있는 간성향교이다. 간성읍은 조선시대 종3품인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었으며, 동해안의 여러 고을 중에서는 강릉과 삼척을 제외하고는 고을 규모가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간성군은 대관령 등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진부령 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금강산과 관동팔경 유람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간성군내에는 조선시대 4대 사찰의 하나로 왕실과 관련되어 있었던 건봉사가 있다. 옛 간성군 관아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설명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간성읍사무소와 간성초등학교가 자리에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간성향교는 간성읍에서 약간 떨어져 건봉사와 진부령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다. 이 향교는 조선 세종때 처음 세워졌다고 ..

용인 심곡서원,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대표적인 서원

정암 조광조는 14세때 성리학자 김굉필 문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며, 과거에 급제한 이후 호조,예조,공조의 좌랑, 홍문관 승지, 부제학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유학자 정치를 구현하려는 중종의 신임을 받아서 다양한 개혁정치를 추진하였다. 이후 조광조의 개혁에 반감을 가진 중종반정 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세력의 역공을 받은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했다. 정암 조광조는 조선전기와 후기를 구분짓는 역사적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후대에 조선사회를 주도했던 사림세력을 추앙을 받았다. 정암 조광조를 모신 서원은 용인 심곡서원, 서울 도봉서원 등 전국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용인 수지신도시에 위치한 심곡서원은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묘소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적인 중요성으로 인해서 구한말 흥선대원군..

양주목 관아, 양주향교

양주목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동북쪽 관문으로 지금은 경기북부지역에 있는 작은 도농복합시이지만 현재의 양주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구리시, 남양주시, 서울 동북쪽 노원구, 강북구, 중랑구, 도봉구 일대를 포함하는 상당히 큰 고을이었으며, 정3품에 해당하는 목사가 고을의 수령이었던 곳이다. 양주목의 규모에 맞게 양주목 관아는 서쪽편 객사자리가 있었던 유양초양학교부터 시작하여 동쪽편 양주향교까지가 관아가 있었던 지역으로 그 넓이가 상당히 넓다. 양주목 관아지 동쪽편에 자리한 양주향교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양주목 관아를 구성하던 건물 중 제일 먼저 복원되었는데, 고을 규모에 걸맞게 향교 또한 넓고 규모가 있어 보인다. 양주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

서울 문묘 성균관, 조선시대 공립 교육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가장 오래된 대학

성균관의 정식명칭은 서울 문묘로서 제례와 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이 있으며 성균관은 보통 향교나 서원은 뒷편 안쪽에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있고, 앞쪽에 교육을 담당하는 건물이 있으나, 성균관은 제사 기능을 하는 대성전이 앞쪽에 있고 강당인 명륜당이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성균관에서 교육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도서관인 존경각, 관리들이 근무하던 정록청, 제2과장이 열렸던 비천당이 있다. 명륜당 앞에는 넓고 높은 월대가 있고, 지붕에는 잡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명륜당 앞에서는 조선시대 과거도 많이 치러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명륜당은 성균관의 상징적인 건물로 주변 동네 이름도 명륜당에서 이름을 따서 명륜동이다. 성균관에서 제..

양평 벽계강당, 이항로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

양평 서종면 벽계구곡 깊은 골짜기의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구한말 유학자인 이항로 선생이 생가 옆에 있는 벽계강당이다. 이항로 선생은 과거에 합격했으며, 많은 추천이 있었으나 사양하고 일생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구하말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분이다. 이항로 선생의 생가 건물 구조를 보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많은 사람이 기거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으며, 대부분의 후학 양성은 생가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저택 바로 옆에 큰 강당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은 서원을 중심으로 한 당쟁의 폐해가 많았던 것을 느껴서인지 서원을 건립하지는 않고 강당건물만 크게 지어 놓고 있다. 실제로는 서원의 ..

파주향교, 고을 크기에 비해 규모가 작은 향교

파주는 고려 수도인 개성과 서울을 연결해주는 넓은 지역에 담당하던 곳으로 지역으로 지금은 군사지역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서울과 중국으로 향하는 평양, 의주간 도로에 위치하고 있고, 임진강이 흐로고 있으며, 교통의 중심인 임진나루가 있었던 곳을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지역이다. 파주향교가 있는 파주읍은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지 않는 까닭에 금촌이나 문산에 비해 도시화가 뒤떨어진 곳이지만, 조선시대 육로상에는 교통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파주목 관아가 있던 곳은 지금의 파주초등학교로 바뀌었고, 파주향교만이 군부대 뒷편 언덕에 남아 있다. 파주향교는 목사가 다스리던 파주목 규모에 비해서 그 크기는 일반 현이나 군에 있는 향교와 비슷한 규모로 보인다. 앞면 3칸 규모의 파주향교 대성전. 이 곳에서 유일하게 오래된 ..

고양향교, 벽제관지 근처에 있는 지역 교육기관

고양향교는 전국에 있는 수많은 향교 중의 하나로 큰 특색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이는 향교이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고, 뒷편에 배향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고 지금의 건물은 최근에 새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문화재로서 가치는 높지 않은 향교인데도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다. 고양은 군수가 다스리던 크지 않은 고을이었던 까닭에 향교 규모도 큰 편은 아니다. 고양향교의 강학공간인 명륜당. 앞면 5칸의 건물로 지역출신 사람들의 유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배향공간인 대성전이 향교 뒷편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대성전 앞에는 제사 준비를 하던 전사청이 있다. 고향향교 출입문인 외삼문과 홍살문 향교는 공자..

아산 온양향교

온양향교는 온양온천역이 있는 현재의 온양시가지 남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향교이다. 근처에 옛 온양군 관아 건물인 온주아문과 동헌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현재 온양향교가 있는 지역이 온양군의 중심지였다가, 철도부설에 따라 행정중심지 역할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지역이다. 온양향교는 조그만 산자락 아래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는 평균적인 향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으며, 명륜당은 앞면5칸, 대성전은 앞면 3칸 규모를 하고 있는 중간규모의 향교이다. 기숙사건물로는 동재만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서재를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옛 온양군 관아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향교 전체 면적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약간 경사진 길 입구에 향교임을 알려주는 홍살문이 서 있..

평택향교,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평택시 팽성읍은 옛 평택현 청사가 있던 곳으로 현재 평택시에서 남쪽편 안성천이 아산만과 만나는 넓은 곡창지대의 중심지였고, 아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팽성읍에는 지금 옛 평택현의 흔적으로 객사와 향교가 남아 있고, 다른 관청건물들은 대부분 없어졌는데 아마도 팽성읍사무소에 관청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택향교는 이 지역의 공립교육기관으로 평택현이 큰 고을이 아니었기때문에 향교의 규모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이 향교는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앞쪽에 강당인 대성전과 기숙사인 동.서재가 있고, 뒤쪽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다. 향교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보통 홍살문 옆에 하마비가 있다. 향교와 관련된 공덕비. 향교 정문인 외삼문..

[안동 병산서원] 출입문인 복례문과 연못인 광영지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으로 유성룡 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마을인 안동 하회마을에서 강을 따라서 동쪽편으로 가면 볼 수 있는 서원이다. 물론 하회마을을 통해서는 이 곳 병산서원에 들어갈 수 없고, 하회ㅡ나마을 입구에서 산을 돌아서 반대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병산서원의 출입문은 '복례문'이고 불리우며, 솟을대문으로 된 대문으로 삼문처럼 만들었으나 실제 출입문은 하나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입문의 '복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는 오래된 누각인 '만대루'가 있고, 그 서쪽편에는 작은 연못인 '광영지'가 있다. 안동 병산서원의 정문인 '복례문復禮門'. 솟을대문므로 형태는 삼문이지만 가운데에만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있고, 양쪽으로는 벽으로 되어 있다. '복례復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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