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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103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의 상인, 보부상

조선시대 상업활동은 다양한 형태의 상인들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한양의 관납을 주도하는 육의전 상인, 개성 인삼을 중심으로 국제 거래에 역할이 많았던 개성상인을 포함한 규모가 큰 상인도 있었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소매활동을 했던 보부상과 오일장을 떠돌돈 장돌뱅이까지 다양한 형태의 상인들이 있다. 그 중 보부상은 겉보기와는 달리 거대한 조직체로서 전국적인 규모로 그 조직이 운용된 것으로 보인다. 보부상의 도장과 도장함. 구한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부상 조직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관료들의 인장보다 크고 화려하게 만든 것 같다. 조선말기부터 충청남도 임천, 은사, 홍산 일대에서 활동한 보부상이 사용하던 도장함 3점과 도장 11점이다. 보부상 조직의 임원이었던 영위.반수..

중앙박물관 2010.02.03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경제 생활, 화폐 (상평통보,조선통보)

조선은 농업중심의 경제 사회로 세금납부, 물물교환의 매개체로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화폐의 역할을 곡물인 쌀이 대신했기 때문에 상평통보로 대표되는 화폐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크게 활성화되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얼려운 사회였다. 반면, 유럽이나 중국의 경우 은을 매개체로 활용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고대 그리스 은화가 교환의 매개체가 되었고, 중국에서 은이 세금납부와 교환의 중심 매개체가 되어 왔다. 아마도 조선에서도 화폐로서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할려고 했다면 아마도 상평통보를 은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동전꾸러미와 도, 돈을 보관하던 궤짝인 돈궤 조선 최초의 동전인 조선통보 조선을 대표적인 동전인 상평통보. 당일전, 당오전, 당이전, 당백전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동전이 구한말 대원군이..

중앙박물관 2010.02.03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 신분증인 호패, 마패

조선시대에는 각 호구의 현황을 기록하는 호적과는 별개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호패를 만들어 착용하도록 했다. 호패는 과거 급제 여부를 중심으로 개인의 신분에 따라서 다른 모양의 호패를 차고 다니게 했으나, 일반인들은 세금, 징집 등의 문제로 사용을 기피했다고 한다.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호패와는 달리 마패는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행정을 위해 관리들이 역에서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신분을 증명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 사용된 각종 호패들. 생원. 진사 시험 합격자 호패, 시위병의 호패, 벼슬하지 못한 유생의 호패가 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호패가 세련되어 보인다. '벼슬하지 못한 유생의 호패'를 지닌 사람은 저절로 과거에 합격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길 것 같다. 과거 급제자 호패, 지역별..

중앙박물관 2010.02.0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의 의학, 동의보감

조선시대의 의학은 지금의 한의학을 조선시대의 의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마도 허준의 '동의보감'으로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한의학은 특정한 질병에만 적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선시대 한의학은 외과에서 시작해서, 전염병까지 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질병에 대처했던 의학이라 할 수 있다. 허준이 쓴 조선시대 의학서적인 '동의보감' 한의학에서의 인체관련 그림 약재를 빻거나 즙을 낼 때 쓰는 기구 약을 달이는데 쓰는 그릇 약재를 빻을 때 쓰는 접시와 막자 약재의 무게를 재는 저울, 침통과 침 약을 짜는데 쓰는 틀 마마신의 심술 조선시대에 발생한 전염병으로는 콜레라, 천연두, 성홍렬,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피해가 컸던 것은 콜레라와 천연두였다. 천연두는 조선시대 의서에..

중앙박물관 2010.02.0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농업, 담배의 보급

조선은 농업국가로서 인구의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농업 생산은 국가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국왕이 직접 관장했던 부분이 많았다, 사직단의 제사를 비롯하여 측우기, 천문관측 등도 모두 농업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때에 작성한 '농사직설'을 비롯하여 가장 유명한 '농가월령가'까지 국왕을 비롯하여 많은 지식인들이 농업을 위한 서적을 편찬, 보급할려고 애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효종대에 신속이라는 사람이 만든 농서인 '농가집성' 17세기 활동한 관리 신속이란 인물이 편찬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농업서적이다. 세종대에 정초 등이 왕명을 받을어 편찬한 '농사직설', 세조 때 강희맹이 지은 '금양잡록', 작자미상의 '사시찬요처' 등 3종의 농서와 부록으로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는 대책을 적은..

중앙박물관 2010.02.0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신분제도, 호적, 족보, 노비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기본이 되는 신분제도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국가에서 관장하는 대표적인 신분제도로는 호적제도를 들 수 이쓸 것이다. 호적은 아마도 국가가 형성된 이래로 조세와 병역 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으로서 안정기에는 정기적인 호구조사를 통해서 호적 제도가 유지되었지만, 혼란기에는 은익호구의 발생, 양민의 노비화 등으로 인해서 관리가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관리하던 호적과는 달리 족보는 양반계층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관리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 양민들은 족보나 호적제도에 의해서 관리되었다면 노비는 토지와 같은 유형의 재산으로 분류되어 목록으로 관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호적. 고려시대에 작성된 것으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이 호적은 조선..

중앙박물관 2010.02.0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법치와 정치

조선은 유교사상을 구현한 성문화된 법전인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법치국가이자, 왕을 중심으로 한 유교국가이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법전인 성종때 만든 '경국대전'과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관료제 국가인 조선을 대표하는 제도인 과거제도 유물들과 각종 공신임을 증명해주는 교지들도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는 현재와 멀지 않은 시대임에도 불국하고 전해지는 유물은 많다고 볼 수 없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전해지는 유물은 조상들의 과거합경증인 교지와 공신임을 말해주는 교지일 것이다. 얼마전 공주박물관에서 전시한 공주지역 명가 유물 전시회에 전시된 유물의 상당수 이런 종류의 교지였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물 중의 하나인 조선왕조실록 또한 조선시대 정치의 모습을..

중앙박물관 2010.01.3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우리의 글, 한글

조선초 세종대왕이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이룬 한글 창제는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자, 현 실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어도 있고, 만주어,몽골어 등 많은 글자들이 주변국가에서 존재해왔지만 독창적이 표기 방법과 음운 체제를 가지고 있어서 한글의 의미는 아주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그 내용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것 이었기에 수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민정음(복제품), 해례본으로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학자들과 세종대왕의 서문있다. 원본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세종 26년에 백성에게 반포한 책이다. 세종..

중앙박물관 2010.01.30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왕궁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지금의 서울은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줄곧 서울을 수도로 하였으며, 한양 도성안에는 북궐인 경복궁, 동궐인 창덕궁, 창경궁, 서궐인 경희궁과 지금은 덕수궁으로 불리는 구한말 역사 현장인 경운궁이 있었다. 그 중 창덕궁을 비롯한 동궐은 태종이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경복궁은 임진왜란때에 불타버린것을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국력을 총 동원하여 복원한 궁굴이다. 서울을 조선왕조 500년 동안 도읍이었으며, 임진왜란 등의 전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권위가 높았던 까닭에 일본 교토에 비해서 궁궐의 규모나 수량에 있어서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중국 북경자금성과 비교해서는 작지만 유교 법도에 따른 동아시아 국가의 궁궐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

중앙박물관 2010.01.3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국보 86호),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한 중국풍의 석탑

새로이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인 국보 86호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으로 중국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불교 석탑이지만 석탑을 구성하는 요소와 세부 조각들은 도교에 나오는 신선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 석탑은 고려 충목왕때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런 석탑의 형태가 만주족, 몽고족을 포함해서 북방 민족들이 선호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도 북경을 가서 보면 상당수 문화재들이 이 경천사지 십층석탑에 표현된 내용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경천사지 10층석탑은 새로이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로서 박물관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이 석탑은 3층의 기단과 10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물..

원주 천수사지 삼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천수사 삼층석탑이다. 원래 원주 천수사터에 있던 석탑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현재의 위치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석탑으로 불국사 삼층석탑 등 유명한 석탑에 비해서 전체적 구성요소간의 비율이 간결하지 못해서 조형미가 떨어지는 석탑이다. 천수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석탑으로 이층의 기단과 삼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전처적인 비율이 원래의 삼층석탑을 따르지 않고 크기도 많이 작아졌다. 천수사 삼층석탑 기단부. 기단부 몸돌에는 특별한 장식이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밋밋한 느낌을 준다. 천수사 삼층석탑 탐신. 몸돌과 지붕돌에 규칙성이 부족하고 화려하지 않다. 삼층석탑의 양식만 따른 듯 하다. 뒷쪽의 국..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의 국제 교류

통일신라는 일본, 당나라를 비롯하여 서역국가와 뱃길을 통한 무역이 왕성하였고, 많은 승려와 학자들이 중국 유학을 다녀옴에 따라 많은 문물의 교류가 있었다. 특히 장보고가 청해진을 운영하는 시기에는 한.중.일 뱃길을 중심으로 세계와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 황해도 평산 등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국제교류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이 발굴되고 있으며, 특히 차문화가 널리 퍼진 시기이기도 한다. 당시 차문화를 보여 주는 유물로 차를 가는 다연. 차주전자와 찻잔, 경북 성주 풍로와 녹유 바리 당나라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 뼈단지와 백자 그릇 마찬가지로 당나라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 목걸이, 울릉도 가위, 발걸이, 청동거울, 남자상. 당을 비롯한 외국과의 문물교류 흔적..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 신라의 문자와 지방

신라는 통일직후 전국의 지방조직을 주군현체제로 완성하였고, 지방 말단 행정조직으로 촌을 설치하였다. 신라의 지방에 대한 지배는 촌주의 협력아래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후에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지방에서 출토되는 기와 등에는 많은 문작가 적혀 있으며, 상당히 수준 높은 문화를 누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천 신라비. 경남 사천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로 대규모 불교행사와 관련된 비석이라고 한다. 이 비는 대규모 국가적 불교행사와 관련하여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뒤 양면에 글을 새겼는데, '天천'자는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에 만든 문자를 사용하였다. 산술이라는 글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이 시기 신라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 중국과의 교류를 알 수 있다. 사라와초 암기와..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 왕경에서의 생활, 관료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왕경을 지방과 구분하였으며,도시 구조도 정비하고, 정비된 왕경을 둘러싼 산성을 축조하였다. 신라는 또한 삼국시대 당나라를 다녀온 김춘추과 당나라의 복식과 제도를 신라에 도입한 이래 다양한 율령과 제도를 정비하여 관료제를 국축하였으며, 토용에서의 복식과, 기와와 각종 생활용구에 적힌 글씨로 관료제 사회에 대한 흔적을 많이 남겨 놓고 있다.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은 경주 안압지 연못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의례적인 면이 많지만, 안압지 출토 유물은 실제 사용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라 토용. 여인상과 문관상. 토용을 ㄴ흙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 만든 것으로 당시의 복식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관료제와 토용 삼국 통일 이후에 새로운 국가 운영을 위..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 토기의 장식, 토우

신라 토기에는 간단한 무늬를 새기거나 토우 등을 붙여 장식하기도 한다. 토우는 인간의 출산에서 죽음까지의 생활을 간략하게 묘사하거나, 다양한 동물들을 만들어서 붙여 놓았는데, 생략을 통한 간략한 묘사가 뛰어나다. 무늬를 새겨 넣을 경우 기하학적 무늬나 말, 사람 등을 새겨 넣기도 한다. 신라의 토우에는 신라인의 생활 모습이 꾸밈없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랑, 출산, 음악, 춤, 죽음까지 다양한 형태의 인간 모습을 간략하면서도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토우에는 많은 동물이 등장하고 있다. 꾸밈없이 간략한 모습을 보여주는 목항아리. 표면에 여러 무늬가 새겨져 있다. 원무늬가 그려진 합 부리달린 단지 새무늬 단지. 작은 단지위에 새, 국화, 짐승얼굴 등 여러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서로 마주 보..

중앙박물관 2010.01.06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무기, 말갖춤

삼국시대 신라의 무기는 백제나 가야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주로 고분에서는 용,봉황 등으로 장식한 고리자루칼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이며, 실제 전투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무덤에 부장품으로 많이 묻힌 것 같다. 신라의 말갖춤은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말탄 사람 토기'에 그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고리자루칼. 소유자의 사회적 신분과 권위의 상징물이다.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것은 새끼칼 6자루와 몸체 등 7개의 칼로 이루어진 특이한 형태이다 신라의 투겁창과 물미 활과 화살촉. 신라의 무기는 투겁창, 칼, 화살촉 등의 공격용과 갑옷, 투구 등 방어용이 있다. 이 가운데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이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고리자루칼은 무기로서의 용도뿐 아니라 권위를 상징하..

중앙박물관 2010.01.06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토기, 토우 붙은 목항아리

신라를 대표하는 토기로 만든 목항아리와 여러 무늬가 새겨진 목항아리들이다. 그 중 토우가 붙은 목항아리는 일반적으로 2점의 항아리를 말하는데 하나는 계림로 30호 출토항아로 개구리.새.거북.사람 등의 토우를 장식한 것으로 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노동동 11호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뱀,사람, 개구리 토우가 붙어 있는 것으로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신라인의 신앙과 감정표현을 잘 묘사한 것으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토우가 붙은 목항아리. 항아리의 목 부분에 개구리의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성기를 드러낸 남자 토우가 붙어 있다. 뱀과 성기를 드러낸 남자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성기를 드러낸 남자 토우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국립 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다른 1..

중앙박물관 2010.01.05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금속그릇

신라시대에 사용한 금.은.청동.철 등 금속으로 만든 그릇들이다. 당시에는 흙으로 구워 만든 토기와 같이 사용되었다. 금속 그릇은 권위나 신분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죽을때 무덤에 같이 묻히는 부장품으로 사용되었다. 사발이다 굽다리접시 같은 작은 그릇은 금.금동.은으로 만들고, 합.초두.항아리 등은 추로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릇의 밑바닥이나 뚜껑에는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나 연호와 같은 글자를 새기기도 하였다. 굽다리접시. 흙을 구워서 만든 굽다리접시 토기와 비슷한 모양이다. 금동으로 만든 사발 뚜껑이 있는 그룻인 합 청동그릇 청동국자. 청동으로 만든 초두. 제례의식에 사용되는 것으로 중국과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유물이다.

중앙박물관 2010.01.05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와 실크로드

신라는 중국,일본과 교역을 하면서 서로 교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아시아와 로마와의 교역의 흔적을 많이 남겨 놓고 있다. 지중에서 산출되는 유리제품을 포함하여 재료나 제작기법에서도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서역에서 수입된 물품들은 상당히 귀하게 여겨졌고, 그래서 많은 고분에서 수입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리병. 지중해 로마에서 수입된 제품이다. 금실을 감아 수리한 흔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매우 귀한 물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병은 연녹색을 띤 얇은 유리제품으로 타원형의 계란 모양이다. 물을 따르기 편하게 끝을 새 주둥이 모양으로 좁게 오므렸다. 가느다란 목과 얇고 넓게 퍼진 나팔형 받침은 페르시아 계통의 용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

중앙박물관 2010.01.05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꾸미개, 금관.금허리띠와 금제관식.관모

신라는 천년 가까이 국가를 유지해왔던 나라로 경주에 수많은 고분을 남겨놓고 있다. 신라는 금을 이용한 많은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는데 주로 꾸미개의 형태로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형태는 금관으로 천마총을 비롯하여 여러 고분에서 화려한 금관이 출토되었으며, 그 외에 관모, 관꾸미개(관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 다향한 형태의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이런 꾸미개들은 천마총, 금관총, 황남대총에서 많이 출토되었으며 그외의 고분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황남대총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관. 유명한 금관총이나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아니고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이다. 금관과 하나의 세..

중앙박물관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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