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김인문 3

경주 인용사지, 월성 남쪽 무열왕 둘째아들 김인문을 위해 세운 인용사 절터

경주 반월성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인용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절터이다. 인용사는 삼국통일에 큰 공헌을 한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이자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을 위해 세운 사찰이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형성되었는데 김인문은 당시 볼모형태로 당나라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하며 당시 신라사람들이 그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인용사를 세웠다고 한다. 절터의 규모나 궁성 아래에 위치한 점 등으로 볼 때 김인문이 당시 신라 사람들에게 상당히 존경받았던 인물었던 것 같다. 경주 인용사지는 2002년 발굴 조사를 시작한 이래로 현재까지도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절터에 남아 있는 석물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사찰 가람배치 양식인 2개의 탑을 중심으로 금당, 강당, 회랑 등으로 ..

절터 2011.10.22

경주 서악동귀부 (보물 70호),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묘비

보물 70호로 지정된 경주시 서악동 태종무열왕릉 앞 족에 남아 있는 서악동 귀부이다. 이 귀부는 비석을 받치는 거북받침돌로 태종무열왕릉비와 함께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초기 비석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네발로 땅을 힘차게 디디고 있는 이 거북받침돌은 조각수법이나 기교면에서 태종무열왕릉비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거북받침돌은 후대에는 용의 머리로 바뀌는데 거북머리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비석은 서악서원에 출토된 비몸에 기록된 글과 삼국사기 기록으로 볼 때 김인문의 공적을 새겨놓았던 비의 받침돌로 추정하고 있으며, 머리부분인 이수는 남아 있지 않다. 김인문은 태종무열왕이자 문무왕의 친동생으로 삼국통일전쟁에서 당과의 외교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죽..

경주 무열왕릉 아래에 있는 김인문과 김양의 무덤,

경주 형산강 동쪽편 선도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태종무열왕, 진흥왕, 진지왕, 헌안왕, 문성왕을 비롯한 여러 고분들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휘치한 2기의 고분으로 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과 통일신라 후기 대각간을 지낸 김양의 무덤이 있다. 이 고분들은 통일신라 귀족의 무덤중에서 그 주인이 알려져 있는 흔치 경우이다. 이 고분들은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형태로 봉분의 크기는 왕릉보다 약간 작은 규모를 하고 있다. 김인문은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동생이기도 한 인물로 통일전쟁 과정에서 많은 공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웠던 비석의 귀부만 무덤앞에 남아 있고, 비석의 일부는 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김양은 이 곳에 능이 남아 있는 문성왕과 헌안왕을 도왔던 인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