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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11

순천 낙안읍성, 동문 주변의 민가들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 소재지에 쌓은 읍성으로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전국의 여러 읍성들 중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교통과 행정 중심지였던 낙안군이 일제강점기 경전선 철도개설로 철도역이 개설된 벌교읍으로 그 기능이 급격하게 이전됨으로서 원래 있었던 읍성마을 근대화 과정에 소외되어 옛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읍성내에는 약 90여호의 가옥에 실제 주민들이 옛 초가집들을 보존하면서 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낙안읍성 주변 도로가 동문 주변으로 개설되어 지금은 읍성의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 주변은 낙안읍성을 찾는 사람들이 처음 보게 되는 시골마을의 모습일 것이다. 읍성 동문 앞에 서면 오른쪽으로 식당 등으로..

고택_정원 2012.11.05

순천 낙안읍성, 남문 주변 민가들

낙안읍성은 낙안군 관아가 소재하고 있던 읍성으로 유일하게 읍성내 거주하던 주민들이 살던 민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낙안읍성을 직사각형 형태로 성벽을 쌓고 동문에서 서문 사이의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관아건무들이 들어서 있고, 남쪽으로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현재 읍성내 남아 있는 90여호의 가옥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옥들은 대부분 남문 주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읍성 서쪽편 동산에서 성벽을 따라서 걸어내려오다 보면 골목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민가들이 마당이나 가옥형태를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이런 가옥들은 성벽 바깥쪽에도 여러 동 남아 있다. 남문을 들어서면 성문 주위를 비롯하여 관아까지 연결된 길에는 점포나 주막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가옥들을 볼 수 있고, 대로에서 안쪽으로..

고택_정원 2012.10.28

순천 낙안읍성, 서문 주변에 남아 있는 초가집 민가들

낙안읍성은 고려후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서남해안의 많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현재의 읍성은 세종대에 석축성을 쌓은 이래로 크고 작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낙안읍성은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관아건물인 객사, 동헌, 내아 등과 함께 90여호에 이르는 읍성내 마을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읍성내에는 지역 유력계층인 양반들은 거의 살지 않고, 관아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았던 향리들이 아전을 비롯하여, 관아에 속했던 포졸 등을 비롯한 하층민들과 관노, 읍성을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낙안읍성에 남아 있는 민가들은 대체로 향리들을 중심으로 한 중간층과 관아에 속해 있던 하층민들이 살..

고택_정원 2012.10.27

순천 낙안읍성, 정문격인 남문 쌍청루와 주변 성벽

낙안읍성은 전남 순천에 위치한 읍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읍성으로 현재도 주민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유일한 읍성이다. 낙안읍성은 동남.북서 방향의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관아 건물인 객사, 동헌 등이 자리잡고 남쪽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초가집으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물이 빠져 나가는 남쪽편에는 비상시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연못을 조성해 놓고 있다. 낙안읍성에는 동.서.남 3개의 성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남문이 낙안들판의 여러 마을들 주민들이 읍성을 출입하는 정문으로 보인다. 남문에서 관아까지 연결되는 길 주변에 크지는 않지만 상업지구라 할 수 있는 저자거리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성 남문은 옹성을 두고 있는 개거식 성문으로 성벽사이에 누각을 세워놓고 있는 형태이다. 남문 문루..

순천 낙안읍성, 서문과 관아 주변 성벽

순천 낙안읍성으로 조선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남해안과 서해안 지방에 쌓은 많은 읍성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읍성이다. 읍성은 동남.북서 방향 대로를 축으로 남쪽에는 민가, 북쪽에는 관아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낙안읍성에는 동남 방향에 동문, 남서방향에 남문, 북서방향에 동문이 있고, 관아 뒷편 북동방향으로는 성문을 두고 있지 않다. 성벽은 상당히 큰 돌을 다듬어 석축을 쌓고 있는데, 안쪽에 토축을 쌓고 바깥쪽에 석축을 쌓는 일반적인 조선시대 읍성과는 달리 전체를 석축으로 쌓은 석성이다. 낙안읍성 서문은 북동쪽의 조계산과 이어지고 교통로와 연결되고 있으며, 조계산의 선암사, 송광사를 지나 승주, 구례, 곡성, 남원과 연결된다. 성문이 문루가 남아 있는 남문, 동문과는 달리 서문에는 문루가..

순천 낙안읍성, 동문인 낙풍루와 주변 성벽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있었던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남해안 지역에서는 꽤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쳐서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던 곳이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평지에 장방형의 석축성을 쌓고 있다. 낙안읍성에 있는 동.서.남 3개의 성문 가운데 지금은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은 실제로 남해안이 있는 벌교지역과 연결되는 곳으로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

순천 낙안읍성 옥사(감옥)와 연못

순천 낙안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관청이 있던 지방고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남부 해안가지역이기 때문에 평지에 읍성을 쌓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데, 동.서을 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관청 건물들이 있고 남쪽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객사를 제외한 읍성내 관청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관청의 배치나 구성요소들을 잘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성의 옥사는 고을내의 죄수들을 수용하였던 건물로 다른 읍성과 다른 점은 관아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읍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남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큰 길은 관아로 연결되며 동쪽편에는 비상시 읍성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연못들이 있고, 연못안쪽에 옥사터가 있었다. 옛 옥사..

조선 관아 2012.10.21

순천 낙안읍성 관아 아문인 낙민루와 임경업장군 선정비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많은 읍성들 가운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낙안읍성은 원래 세종대에 흙으로 쌓은 토축성을 개축하여 석축성으로 쌓은 것이다. 현재의 성벽은 조선 인조대에 낙안군수를 지낸 임경업장군이 크게 보강한 것으로 지금도 읍성내 관아 객사 입구에 그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낙안읍성내에는 아직도 100여명 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초가집들이 있고 읍성 북쪽편에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이 있다. 낙안읍성 관아건물로는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었던 객사, 최근에 복원된 동헌과 내아, 문루인 낙민루가 있다. 읍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길가에 위치하고 있는 관아 출입문인 낙민루는 다른 지방 관아 문루가 동헌 입구에 있는 것과는 달리 고을 수령의 숙소인 내아 출입문..

조선 관아 2012.10.19

순천 낙안읍성 내아, 고을 수령이 머물던 살림집

낙안읍성은 전남 순천시 낙안벌판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옛읍성이다. 읍성에는 100여 가구의 주민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초가마을이 있고, 옛 낙안군 관아 건물인 낙악객사, 동헌, 내아, 문루 등이 남아 있다. 현재의 기준으로 지금 남아 있는 읍성내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조선시대 이곳은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이었던 약간 큰 규모의 고을이자, 이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읍성 관아 건물 중 객사는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하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동헌과 내아는 옛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건물이다. 그 중 내아 건물은 마당이 넓고, 본채 외에는 부속건물을 두지 않는 구조이다. 본채는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으며, 'ㅁ'자형으로 이루어진 다른 지방 관아의 내아와는 달리 개방된..

조선 관아 2012.10.18

순천 낙안읍성 동헌, 낙안군수가 근무하던 읍성내 동헌 건물

낙안읍성은 옛 낙안군 관아가 있던 읍성으로 낙안군은 전남 순천시 낙안면.외서면과 보성군 벌교읍 일대를 관할하던 옛 고을의 이름이다. 조성시대 지방행정 단위 중에서는 중간 정도 규모로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던 곳이다. 관아가 있던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관아를 비롯하여 성벽과 내부의 마을의 모습도 원형에 가깝도록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지역 중심지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낙안은 서남쪽을 제외하고는 산으로 둘러싸은 넓은 분지가 평야를 이루는 곳으로 관아가 있는 낙안읍성는 평야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낙안읍성은 동문에서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아전들을 비롯하여 관아와 관련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민가와 상점들있고,..

조선 관아 2012.10.16

순천 낙안객사, 낙안읍성에 남아 있는 고을을 방문하는 중앙관리들을 위한 숙소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가 있었던 낙안읍성은 조계산 남쪽자락에서 남해안 순천만까지 이어지는 낙안벌판의 북쪽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 왜구의 침입이 극심할 때 처음 토성을 쌓았던 것으로 인조대 낙안군수를 역임한 임경업 장군이 현재의 모습처럼 석축성으로 중수하였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 그 원형에 가장 가깝게 남아 있게, 실제 주민들도 당시의 초가주택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등 조선시대 지방 관아를 중심으로 읍성의 모습을 실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마을이다. 낙안읍성에는 조선시대 관아를 이루고 있던 객사, 동헌, 내아가 원래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객사는 외국 사신이나 왕명으로 지방을 방문하는 중앙의 관리들이나 귀빈들을 위한 숙소로 지어진 건물이다. 본래의 기능은 객사 중앙 대청마..

조선 관아 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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