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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행궁 3

남한산성 행궁터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주장성 건물터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격전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볼 수 있는 남한산성 성벽을 비롯한 방어시설들은 병자호란을 대비하여 쌓기 시작하여 그 이후에 크게 보강한 것이다. 남한산성은 한강이남을 지킬수 있는 천혜의 요새로서 삼국시대부터 백제를 방어하기 했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남한산성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문헌상의 기록이나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와 투쟁에 들어간 시기이며 특히 문무왕 12년(672)은 당나라 병력 5만명이 평양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신라를 침입하려는 의도를 보인 시기였다고 한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당나라의 남하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쌓은 주장성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주장성은 당나라와의 전투에 대비하여 축조된 성으로 한강유역..

광주 남한산성 행궁, 비상시 종묘와 사직 역할을 하는 좌전과 우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격전의 현장으로 조선후기에는 한양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적 거점으로 여겼기때문에 인조대 이후에 성벽을 쌓고 광주부 관아를 옮기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한산성에 행궁이 처음 설치된 것은 이곳에 산성을 크게 보강했던 인조3년이다. 조선시대에 전국 주요 거점에 행궁이 설치되었는데, 비상시 국왕이 피난하는 것을 전제로 지어진 남한산성 행궁에는 종묘와 사직을 옮길 수 있는 좌전과 우실이 유일하게 설치되어 있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져서 그 터만 남아 있던 것을 2012년에 행궁 건물의 복원을 완성하여 산성도시로서의 옛모습을 조금이나마 다시 보여주고 있다. 남한산성 행궁 뒷편에 설치된 좌전은 종묘의 위패를 비상시에 옮겨놓을 수 있는 건물이며, 우실은 ..

광주 남한산성 행궁(사적480호), 비상시 국왕이 머물수 있는 행궁이자 광주부 관아 건물

남한산성에 있는 옛 광주부 관아 건물이자 국왕이 임시로 머물수 있는 행궁이 설치된 사적 480호로 지정된 남한산성 행궁이다. 이 행궁은 비상시 국왕이 임시 거처로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 역할을 하는 좌전과 우실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 이후 없어졌다가 최근에 옛 기록을 참조하여 복원하였다. 행궁은 국왕의 거처로 정전과 편전에 해당하는 하궐과 국왕이 머무는 내전에 해당하는 상궐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쪽편에 광주부 관아 건물인 좌승당과 광주유수의 숙소라 할 수 있는 일장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왕을 수행한 인원들이 머물 수 있는 많은 행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강이남 일대를 다스렸던 큰 규모의 지방관청이 광주부 관아는 원래 남한산성 아래 하남시 일대에 있었으나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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