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능산리사지 10

[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국보287호), 백제를 대표하는 문화재

삼국시대 백제를 대표하는 화려한 유물인 국보 287호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이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대에 크게 유행한 박산향로의 일종으로 백제 마지막 왕들이 묻혀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이 향로는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받침, 사실감 있게 묘사된 연잎으로 장식하고있는 향로 몸통,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박산을 묘사한 몸체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뚜껑의 정상부에는 한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 올린 연기가 박산 주위에서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산형태의 뚜껑에는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바위, 나무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어 중국의 영..

지역박물관 2012.06.06

[부여박물관] 능산리 절터 출토유물에서 보여지는 백제의 대외교류

백제는 성왕대에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빈번하게 교류하면서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양나라 무제를 위한 대통사를 창건하였으며 유학에 정통한 학자와 장인,화가 등을 초빙하기도 하였으며, 불교경전 들을 얻어 오기도 했다.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능산리사지에는 당시 중국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 남조와 백제와의 교류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대 이후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능산리 절터에서는 수당의 영향을 받은 흑갈유 벼루나 자기편을 비롯하야 남조에서 많이 사용한 호자, 서역과 북위에서 많이 만들어진 소조상을 비롯하여 서역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제품들도 출토되고 있다. 또한 능산리절터에서는 백제에서 사용된 항아리, 사발, 등잔,..

지역박물관 2012.06.05

[부여박물관] 백제 창왕명석조사리감 (국보 288호), 능산리사지 출토 금속공예품과 소조상

국보 288호로 지정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은 백제 마지막 왕들의 고분이 있는 능산리 절터 목탑지에서 출토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리감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창왕은 백제 27대 위덕왕을 일컫는 명칭이며, 그의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만든석으로 능산리사지 목탑지 심초석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리감에는 창왕의 여동생인 공주가 만들어 사리와 함께 봉안했다는 글씨가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서체인 예서풍의 글자로 적형 있다. 이 사리감은 백제 역사 연구에 중요한 금석문 자료로, 사리를 봉안한 연대와 공양자가 분명하게 적혀 있어 이 절의 창건연대와 이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의 제작연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능산리절터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목탑이 있던 터에서는..

지역박물관 2012.06.05

[부여박물관] 능산리사지 목간에 남겨진 이야기

책(冊)이라는 한자의 어원이 되는 목간은 종이가 발견되기 이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문서로 폭 1cm, 길이 20~30cm 정도로 끈어로 묶어서 사용했는데, 지금의 책과 비슷한 크기라고 할 수있다. 목간은 춘추전국시대 이후 다양한 저서들이 적혀있는 오늘날의 책과 같은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었지만, 실제로는 교역을 위한 영수증, 물품표, 교역내용의 기록한 장부 등의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한.중.일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에서 교역의 목적으로 한자를 도입하고, 이를 목간에 기록해 놓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목재로 만들어진 목간은 물품표 등이 경제적인 목적으로 종이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사용되었는데, 목재의 특성으로 우리나라에서 잘 부패되지 않는 연못, ..

지역박물관 2012.06.03

[부여박물관] 능산리사지 가람이야기, 공방지 출토 유물들

부여군 능산리 고분과 부여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 절터는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로 원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탑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이 사찰은 다른 사찰과는 달리 뒷편 강당과 주변 건물들이 사당으로 먼저 세워지고 그 뒤에 목탑과 금당이 지어지면서 사찰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능산리 사지 절터 뒷편에는 강당건물과 함께 공방지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있는데, 이 곳은 원래 성왕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의 부속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절을 세운 위덕왕이 죽고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그 기능이 축소되면서, 공방건물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굴뚝을 설치하여 동광석을 제련하고 사찰에 필요한 각종 ..

지역박물관 2012.06.02

[부여박물관] 위덕왕과 능산리사지,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고분과 백제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사지는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절터이다. 백제는 사비성을 도읍으로 하던 시기에 많은 사찰들을 건립했지만 그 중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이다. 이 사찰은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지어졌다는 의견되 있지만, 대체로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원 원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여러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를 비롯하여,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

지역박물관 2012.06.01

부여 백제문화단지, 능산리절터에 있던 사찰을 재현해 놓은 능사

능산리사지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소재한 백제의 마지막 왕릉이 있는 능산라고분군 옆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성 도성인 부여나성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으로 다른 왕릉들과 마찬가지로 백제의 큰 위협이었던 신라를 비롯한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주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능산리사지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능사로 이 곳에서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다.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사찰의 규모는 황룡사나 익산 미륵사에 비해서 작은 편으로 선왕들의 명복을 비는 원찰 또는 능사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사찰이라고 할 수..

[중앙박물관 백제실] 사비기, 충남 부여를 도읍으로 하던 시기의 유물

백제는 성왕때인 538년에 현 부여지역인 사비로 도읍을 옮겨 새로운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백마강이라 불리는 금강 남쪽해안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도성을 쌓았으며, 현재 부소산성 입구에 해당되는 관북리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의 옛 도읍이었던 부여에는 중앙의 정림사지와 도성 바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궁남지와 부소산성을 제외하고는 유적지라고 느낄만 곳은 실제로 많지는 않다. 하지만 도성 동쪽편 왕릉이 있었던 능산리를 비롯하여 도심과 외곽에 여러 절터들이 있으며, 이들 절터에서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사비기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높은 문화와 기술 수준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백제는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유물이다. 웅진에서 사비로 무령..

중앙박물관 2011.04.24

부여 능산리사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백제 성왕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찰

백제의 대표적인 고분군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수도 사비성을 둘러싸고 있던 부여나성 사이의 공간에 위치한 능산리사지이다. 이 절터에서는 1990년대 이후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이 절의 창건연대와 내력이 적힌 사리함인 백제창왕명석조사리함이 발굴된 곳이다. 1990년에 오랜 기간에 걸쳐서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절터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정비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보이며, 현재 보수공사의 모습의 보면 옛절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곳 능산리사지는 전형형적인 백체 사찰의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1탑, 1금당과 강당,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의 규모는 익산미륵사지 등에 비해 크지는 않은 편이며, 능산리 고분군을 지키는 원찰의 의미를 갖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현..

절터 2010.10.01

부여 능산리 고분군, 백제 마지막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학자들에 의헤 6기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1965년에 다시 2기의 고분이 발견되어 총 8기의 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산리 고분군들은 일찍 그 존재가 확인되어서 도굴이 먼저 이루어졌기때문에 발굴시 출토유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능산리 고분군은 능산리형돌방무덤으로 불리는 백제후기에 조성된 대부분의 무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아마도 당시에 법률적으로 봉분을 조성하는데 규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최근에 조성한 의자왕 부자의 가묘까지 합쳐서 백제왕릉원이라고 불리고 있다. 부여 능산리고분군 전경. 능산리산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