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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2

[중앙박물관 특별전] "다산 정약용 - 하늘을 받들어 백성을 보듬다.", 유배지 강진에서 생활과 사후 평가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이자 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28세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초계문신으로 발탁되고, 수원화성 축조에 서양식 축성법인 거중기를 제안하는 등 관료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다산의 관료로서의 업적도 매우 뛰어났지만, 그는 정조 사후에 집권세력의 공격을 받아 전남 강진에서 18여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를 대표하는 많은 저술을 남기고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다산이 유배생활을 보낸 강진은 그의 외가인 윤선도와 윤두서 일가가 터를 잡고 있는 지역으로 외가 친척의 도움을 받으며 다산초당에서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유하고 학문을 익힐 수 있었다. 그는 강진에서 대표적인 저술인 형사사건 처리 지침서라 할 수 있는 , 양전..

중앙박물관 2012.12.07

[중앙박물관 특별전] "다산 정약용 - 하늘을 받들어 백성을 보듬다.", 관리로서의 업적과 대표적인 저술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정조대에 활약한 실학자이자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벼슬길에 오르기전에는 서울에서 이가화, 이승훈 등과 교류하면서 실학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성균관 유생이었던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다. 28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되었다. 관리로서 여러지역에 고을 수령으로서 업적을 쌓았으며, 거중기를 이용한 서양식 축성법을 이용하여 수원화성 축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가 제안한 서양식 축성법은 에 도면으로 자세히 남아 있다. 정조 사후에는 천추교와 연루되는 등 집권세력의 공격을 받아 외가가 있던 전남 강진에서 18여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유배기간 동안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저술인 , , 를 ..

중앙박물관 201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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