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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 20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와 절터 출토 유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주세붕 선생이 세운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 위치한 당간지주이다. 이 곳에 서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숙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찰도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 곳도 사찰이었다가 어떤 사연에 의해서 절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운 듯 한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영주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었던 숙수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부근에 출토된 많은 유물들로 볼 때 숙수사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숙수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

담양 객사리석당간(보물505호), 조선후기 중건된 석재로 만든 당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로 유명한 순창.담양간 국도변에 남아 있는 보물 505호로 지정된 석당간이다. 고려시대 5층석탑과 함께 고려시대 절터에 남아 있는 유물로 당간과 당간지주가 함께 남아 있는 보기드문 유물이다. 당간은 높이 15m로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긴석재 3개를 연결하여 당간을 만들고 있다. 절이 폐사되었지만 당간은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1839년(헌종5)에 중건된 것으로 석당간 옆 비석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청주 도심에 남아 있는 철당간과 마찬가지로 절이 폐사되었지만 지역에서는 큰 의미가 있었기때문에 구한말에 중건되면서 유지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담양 객사리석당간, 보물 505호,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당간이란 절에서 불교의식이 있을 때 내걸었던 '당'이라는 깃..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41호), 도심 상가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철당간

청주 남문로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청주목 관아 및 충청병영이 있었던 행정 중심지로 넓은 벌판을 이루고 있는 넓은 청주벌판이 동쪽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 용두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철당간만이 남아 있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청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사찰로 보이는 용두사는 인근의 흥덕사나 사뇌사와 함께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금속활자를 비롯하여 금속공예가 크게 발달했던 지역으로 보인다. 당간은 절입구나 법당 앞에 깃발이나 괘불을 거는 것으로, 돌로된 지주대를 마주보게 세우고 그 사이에 철이나 돌로 만든 당간을 세웠다.당간 몸체에는 당간을 세운 목적을 담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글에는 '준풍3년'이라는 광종의 독자적인 연호와 함께 청주호족과 학교 관련 내용이 있..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보물 909호)와 절터

남간사지는 경주시 탑동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탄생신화가 있는 경주 나정에서 남산 북쪽편 남산신성이 있는 해목령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남간부락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 절터이다. 이 절의 창건 연대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신라 애장왕때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절터가 있었던 자리에는 남간 마을이 들어서 있어서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고 당시 절에서 사용한 초석이나 축대 등을 민가건물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석조가 남아 있다. 절터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보물 909호 지정된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같은 형태와 크기로 마주 서 있는 당간지주에는 아래 위에 둥근 구멍을 뚫었고 안쪽에 +자 모양의 홈을 판 것이 특징이다. 이..

절터 2012.06.29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보물 910호), 연화문이 새겨진 특이한 당간지주

경주시 보문동 농경지 한가운데에는 보물 910호로 지정된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현재 명칭은 동남쪽에 위치한 보문사의 당간지주라고 이름 지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보문사 절터와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고, 또한 보문사에는 별도로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이 곳에 별개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당간지주는 현재 남아 있는 많은 당간지주들 중에서 팔엽의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당간지주는 오늘날까지도 원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는 보문동 일대는 신라를 건국한 경주 6촌 중 명활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던 명활산 고야촌으로 신라가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습비부가 되었으며 설(薛)씨 성을 ..

경주 불국사 석조(보물 1523호), 아직도 방문객의 목을 축여주고 있는 석조

불국사 앞 마당에서 청운교.백운교와 연화교.칠보교를 감상하다가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으로 올라가기전에 잠시 목을 축이던 샘물을 받아 먹었던 석조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보물 1523호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것을 인식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석조는 보통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해 보이는 석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국사 석조는 원형인 백제의 석조와는 달리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의 석조다. 일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으며 내부 바닥면에는 화려한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토함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서 불국사를 찾는 모든이에게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불국사 석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만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불국사..

부산 범어사 석등과 당간지주

범어사 경내에 남아 있는 문화재 중 석탑과 함께 그 내력이 가장 오래된 석등이다. 이 석등은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같이 조성한 것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등의 내력은 오래되었지만,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몇자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전체적인 조화나 균형미가 떨어진다. 통일신라에 만들어졌으면 상당히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원형이 유지되지 않았고 조형미가 떨어져서 보물로 지정되지 못한 것 같다. 범어사에는 석등 외에 오래되어 보이는 여러개의 당간지주가 있는데, 이 또한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그런지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범어사 경내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옛 당간지주에 당간..

[부여 무량사] 천왕문, 일주문, 당간지주

무량사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있는 사찰로 옛날에는 이곳이 홍산현 관할 지역이었기때문에 홍산 무량사라고 옛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조선초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부여 무량사는 외산면 소재지에서 자동차로 5~10분 정도 들어가면 있는데, 산중에 위치한 산사이지만 마을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사 입구의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마을을 알려주는 산문인 일주문을 나타나고, 일주문을 지나서 개울을 건너면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주는 길이 나타난다. 개울을 건너서 2~3분 정도 걸어들어가면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천왕문이 나타나고 천왕문 옆 숲속에 옛날에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당을 걸어놓았던 당간지주가..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 (보물32호)와 석인상

남원 만복사지 절터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와 석인상이다. 사찰문화재 중 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된 것이 아마도 당간지주이며, 대부분의 사찰에서 당간지주는 그 절의 역사와 같이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만복사지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5m 정도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조각수법에 세밀함이나 조형미 등은 통일신라시대나 삼국시대에 만들어 진 것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만복사지 입구에 있는 석인상은 높이 5.5m의 상당히 규모가 큰 석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만복사지만의 특별한 내력이 있는 석상으로 보인다. 그 용도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이 되지 않고 있어 그냥 석인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설명에 의하면 석굴암에 나타난 금강역사와 그 모습이 비슷하다는 견해..

경주 분황사지, 황룡사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시대 고찰

경주 분황사지는 신라시대 경주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던 황룡사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입니다. 지금은 모전석탑인 분황사지석탑을 중심으로 근래에 세운 보광전이라는 불전 하나만 있는 아주 아담한 사찰이지만 신라시대에는 아주 큰 사찰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분황사지 남쪽에는 당시 절터 발굴작업이 진행중에 있으며 분황사 남쪽으로는 옛날 황룡사지가 있었던 장소가 넓은 벌판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경주 구황동에 자리잡고 있는 분황사의 외관입니다. 분황사지석탑을 중심으로 분황사에 심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분황사는 황룡사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분황사에서 걸어서 황룡사지를 갈 수 있습니다. 분황사 당간지주로 추정되는 경주구황동당간지주입니다. 이 당간지주는 별다른 장식..

절터 2010.10.01

영양 현동 당간지주

영덕군 영해면에서 창수령을 넘어 안동지역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반변천가에 있는 영양읍 현동 당간지주이다. 근처에 있는 영양 현일동삼층석탑과 함께 이 곳에 큰 사찰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문화재이다.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한쪽 기둥만 남아 있다. 비록 한쪽 기둥만 남아 있지만, 당간지주를 조각한 수법이 섬세하고 간결하게 생겼으며, 일반적인 사찰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에 비해서 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당간지주의 보존 상태 또한 원형이 많이 닳지 않고 남아 있어, 좋은 석재를 사용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곳은 동해안 지역과 안동지역을 연결해주는 교통로이자, 경주에서 청송, 영양, 봉화, 영주를 거쳐 죽령을 넘는 중요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와 고..

[계룡산 갑사] 철당간과 당간지주,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당간

갑사동종과 함께 계룡산 갑사를 대표하는 유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철당간과 당간지주이다. 원래 갑사 중심불전이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원래 사찰의 위치를 말해주는 유물이다. 청주 도심부에 위치한 철당간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당간이다. 계룡산 갑사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으로 계룡산 숲속에 우뚝 솟아 사찰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갑사 서쪽편 대적전을 올라가는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철당간과 당간지주. 통일신라시대부터 천년이상을 이 자리를 지켜온 갑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유물이다. 오래된 고찰에는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철당간과 당간지주가 같이 있는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다. 지금은 주변에 수목이 우거져서 그 존재가 잘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옛..

보은 속리산 법주사 - 당간지주, 철당간

속리산 법주사에도 일반적인 사찰처럼 당간지주가 있고, 비록 복원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많지 않은 철당간도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연상시킨다. 지금은 하나만 있지만 원래는 두개의 쌍을 이루어서 걸개그림 같은 것을 걸어두는 목적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고 사찰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법주사 철당간과 당간지주. 사진 두개를 나란히 놓으니 원래 철당간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법주사 경내에는 목탑, 금동미륵대불과 함께 가장 높이 하늘로 솟아 있다. ☞ 당간지주 당간이란 달리 찰(刹) 또는 찰주(刹株)라 불리는데, 일반적으로 절(寺)을 사찰(寺刹)이라 말함은 절에 당간 즉,찰(刹)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 한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

안동 천등산 봉정사 - 범종각, 당간지주, 석조불상, 삼성각

안동 봉정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고금당, 화엄강당 등 보물급 이상의 목조건축물을 보유하고 있지만, 석탑을 비롯한 석재문화재는 많지 않은 편으로 불전 중심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앞 마당 입구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는 봉정사 범종각. 범종은 문화재로 분류된 오래된 범종은 아니고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봉정사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아주 낡은 당간지주 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한 석조불상.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기도를 올린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뒷편에 자리한 삼성각.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아주 작은 건물로 극락전, 화엄강당, 고금당과 일관된 건축형태를 보이고 있다.

[가야산 해인사] 당간지주, 석등

해인사 대적광전 앞에서는 절터나 오래된 사찰에서 석탑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남아서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인 당간지주가 철당간과 함께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최근에 만든 당간지주와 당간을 볼 수 있다. 1쌍의 당간지주와 붉은 칠을 한 당간이 대적광전 앞 경내 마당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마도 행사에 필요한 걸개그림을 걸어두는 용도란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처음 보았다. 해인사 대적광전 아래에 위치한 당간지주와 당간. 웬만한 사찰을 찾아가면 볼 수 있었던 중심불전 앞 당간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간지주는 보통 사찰입구와 중심불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인사 일주문 옆에도 오래된 당간지주가 있다. 사찰을 찾는 사람에게 행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목적인 것으..

[김제 모악산 금산사] 당간지주

금산사 금강문 옆 도로에 위치한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금산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것이라 한다. 당간지주가 사찰입구인 금강문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금강문과 천왕문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균형미가 있게 만들어졌으나, 장식적인 면의 거의 배제하고 있다. 금산사 당간지주.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당간지주 기단부. 기단부에 약간의 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옆쪽에서 본 당간지주 뒷쪽에서 본 당간지주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당간지주는 출입문 앞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산사는 출입문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절에 행사가 있..

[익산 미륵사지] 2개의 당간지주

익산 미륵사지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9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2개의 당간지주가 있다. 원래 이 곳 미륵사지에 있던 2개의 석탑 앞쪽에 각각 하나씩 당간지주가 있는데 다른 사찰과는 다른 형식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 당간지주가 백제시대부터 있던 당간지주는 아니고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당간지주와 소수서원 입구에 있는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앞쪽에 위치한 당간지주. 전형적인 통일신라 당간지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장식이 거의 없지만 균형미가 있어 보인다. 미륵사지 서쪽 당간지주 기단부. 측면에서 본 당간지주 미륵사지 안쪽에서 본 당간지주 미륵사지 동쪽편 석탑 앞에 서 있는 당간지주 미륵사지 동쪽 당간지주 기단부 당간지주는..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영주 부석사를 오르는 은행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는 절의 입구에 깃발을 다는 장대를 지탱해 주는 돌로서 모양이 화려하지는 않으나, 당간지주는 절의 역사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서 보물로 지정된 것이 많다. 부석사 입구의 당간지주는 화려한 장식이 없는 아주 편안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부석사 입구의 당간지주. 부석사 규모에 걸맞게 크기도 크고, 원형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부석사 은행나무길을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입구인 사천왕문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여러 위치에서 본 부석사 당간지주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석불이 있는 골짜기에 자리잡은 보원마을에 위치한 절터인 보원사지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당간지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지만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웅장한 멋을 지니고 있다. 장식은 거의 없으며 기둥의 윗부분을 둥글게 깍아놓아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한때 1,000명 이상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것으로 알려진 보원사지. 그 입구에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보원사지 당간지주. 뒷쪽으로 보원사지 5층석탑과 절터 발굴현장이 보인다. 측면에서 본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원사지 절터 발굴현장에서 바라본 당간지주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

익산 미륵사지 - 당간지주(보물)

익산의 미륵사를 지켜왔던 당간 지주입니다. 넓은 절터에 이 당간지주와 석탑만이 오랜 세월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백제시대의 영화로운 절이었던 미륵사의 흔적입니다. ☞ 익산 미륵사지 -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미륵사터의 남쪽에는 2기의 지주가 약 90여 미터의 간격을 두고 서 있는데, 크기와 양식, 조성수법이 같아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 지주를 받치는 기단부(基壇部)는 완전히 파괴되어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는 상태이며, 약간만이 드러나서 그 원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지주는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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