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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2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난 사람들, 김가진 일가

김가진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10월 70세가 넘은 노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김의한과 함께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상해로 떠나 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된다. 상해 교민사회와 임시정부에 있어서 김가진은 구한말 고위관료를 지내고 대한제국 대신을 지낸 인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인물이었으며 임시정부 고문으로 추대되어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다. 김가진은 국내에서부터 대동단 총재로서 활동하였으며, 대동단은 김가진의 망명에 이어 의친왕을 망명시키려다 실패하고 국내조직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대동단 또한 상해로 본부를 옮겨 활동하게 된다. 이후에도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대동단 총재 김가진의 존재는 국내 대동단이 와해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 동력이 되었다. 상해..

지역박물관 2013.12.05

[서울박물관 특별전] 조국으로 가는길, 구한말 관료로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동농 김가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2013년 "조국으로 가는 길 - 한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구한말 고위관료 출신으로 한일합방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한 가족이 살아왔던 길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이번에 소개된 김가진(1846~1922)은 권문세가였던 북촌 안동김씨 일가로 예조판서를 지낸 김응균의 아들이다. 서얼출신이었던 김가진는 비교적 늦게 관료로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규장각참서관에서 시작하여, 청직이라 할 수 있는 규장각, 사헌부, 홍문관 등에서 초기에는 관직생활을 했으며, 개항 이후에는 외교업무를 했다. 동학혁명 이후 갑오경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나, 실질적으로 실패한 이후 독립협회에 참여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당시 대부분의 고위관료와 마찬가지로 남작의 작위를 받았..

지역박물관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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