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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34

월미돈대, 월미산 정상에 세워진 돈대

인천 월미도 정상 부근에 쌓아 놓은 월미돈대이다. 조선후기 서울 부근 해안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쌓은 많은 돈대중의 하나로 현재에 있는 돈대구조물은 당시에 있던 것은 아니고 문헌을 통해서 그 위치를 추정하고 재현해 놓은 것이다. 월미돈대는 월미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인청항 도크 안쪽의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가 아주 잘 보일 뿐 아니라, 인천 앞바다를 오가는 선박들을 감시하기에 용이한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 월미산 정상 바로 아래에 쌓아 놓은 월미돈대. 산성처럼 일반적인 전투를 위해서 쌓은 것은 아니고, 해안을 지나가는 선박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월미돈대 올라가는 길 월미돈대 내부. 화포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곳 월미산 정상에서는 화포의 사거리 문제로 효용성은 많지 않았을 ..

[수원 화성] 봉돈, 봉수대와 돈대 기능이 함께 있는 돈대

수원화성을 성곽 창룡문을 지나서 2개의 포루와 치성을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군사시설인 봉돈을 볼 수 있다. 봉돈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제압하는 돈대의 기능과 수원화성과 다른 지역과의 통신을 담당하는 봉수대의 기능을 같이 하고 있기때문이다. 중국 청나라 건축의 영향을 받아서 벽돌로 쌓아 만든 봉돈은 아래쪽은 공심돈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위쪽에는 5개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수원화성의 봉돈은 용인 석성산 봉화, 서해안 흥천대 봉화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수원화성 동쪽 성곽에 설치된 봉돈. 돈대 위에 구운 벽돌로 쌓은 5개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옆에서 본 수원화성 봉수대 봉화신호체계 수원화성 봉돈 아래쪽은 공심돈처럼 비어 있으며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수원 화성] 동북공심돈, 동북노대

수원화성 동장대을 지나면 1번국도에서 수원화성 안으로 들어오는 제일 넓은 길이 있고, 그 위를 지키는 모양을 하고 있는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를 볼 수 있다. 자동차가 많이 지나 다니는 1번국도 옆에 있기때문에 수원화성이 있는 많은 시설물들 중에서 사람들 눈에 가장 많이 익숙한 구조물일 것이다. 공심돈은 중국 청나라 수도 북경을 지키는 성곽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벽돌로 쌓아 올린 돈대로서 내부가 비어 있어 공심돈이라 불리며 화포로 중무장한 많은 병사들이 내부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시설이다. 또한 동북공심돈과 창룡문 사이에는 동북노대가 있는데 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정상의 서노대와 함께 수원화성에서는 2곳에 설치된 시설로 아마도 동장대를 호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수원 화성] 서북공심돈,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공심돈

수원 화성은 정약용 등 당대 최고의 실학자들이 동서고금의 성곽에 대한 기술을 연구하여 쌓은 조선시대 최고의 읍성으로 다양한 시설을 두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여러 시설물 가운데 하나인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인 돈대이다. 구운 벽돌을 쌓어서 만든 시설로 당시 정조대왕이 크게 자랑스러워했다는 시설이다. 아마도 중국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인 천하제일관의 문루와 돈대, 성벽 등의 시설을 보고 수원 화성 축성시 많이 참조해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수원화성 화서문을 지키는 망루인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은 성벽위에 벽돌을 2층으로 쌓아 돈대를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올려놓고 있다. 수원 화성을 쌓으면서 참조했을 것으로 보이는 산해관 성벽위에 설치된 돈대. 조선후기 청나라를 방문하는 우리나라 ..

[강화 해안 진지] 덕진돈대(德津墩臺)

덕진돈대는 초지진과 함께 염하(강화해협)를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군사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돈대입니다. 그래서 바로 북쪽의 남장포대, 김포의 덕포진과 함께 서울을 출입하는 선박을 통제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돈대입니다. 신미양요때 미군과 격전을 벌인후 완전히 파괴된 것을 70년대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남장포대를 지나서 언덕위에 덕진돈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덕진돈대에서는 염하(강화해협)으로 들어오는 선박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습니다. 덕진돈대의 출입구입니다. 다른 돈대와 마찬가지로 한사람 정도가 지날 정도의 작은 통로입니다. 덕진돈대는 직사각형 모양의 돈대로서 전면 양쪽 모서리 부분에 각각 2개의 포좌가 있습니다. 덕진돈대는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별도의 보호를 위한..

[강화 해안 진지] 오두돈대(鼇頭墩臺), 해안 돈대의 전형적인 모습

강화대교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제일 큰 유적지 중의 하나인 광성보에 도착하기 직전에 자리잡고 있는 오두돈대입니다. 원형의 돈대가 있는 위치의 모양이 자라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오두돈대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강화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많은 돈대 중에 전형적인 돈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두돈대 남쪽으로는 고려시대에 벽돌로 쌓았다는 강화전성이 있다고 합니다. 강화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는 많은 돈대 중에서 전형적인 돈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오두돈대입니다. 원형으로 석축을 쌓고 있습니다. 화도 돈대 앞에서 바라 본 오두돈대가 있는 곳입니다. 이름 그대로 자라의 머리통 모양을 하고 있는 곳에 돈대를 쌓아 놓고 있고 주위에는 시야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오두돈대의 외부 석축입니다. 원래 석축은..

[강화 해안 진지] 화도돈대(花島墩臺)

강화 화도돈대는 강화섬 해안가에 설치한 많은 돈대 중에 하나입니다. 이름처럼 화도돈대는 원래 섬이었던 지역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근처에 고려시대 대몽 항쟁시 설치된 강화외성의 흔적과 수문이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아마도 이곳이 강화성의 남쪽 끝이 아니었나 생각되는 곳에 자리잡은 돈대입니다. 화도돈대가 자리잡은 곳은 높은 언덕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해안가에 낮은 절벽이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화도 돈대의 성벽은 거의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고 시야를 좋게하기 위해 쌓은 축대의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화도돈대의 출입문입니다. 돈대의 성벽은 남아 있지 않고 별다른 설명을 찾지 못해서 지금 복원한 모습이 원래의 모습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작은 출입문이 있습니다. 화도돈대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 모..

[강화 해안 진지] 좌강돈대

강화 선원사지 부근 염하 해안가에 있는 용진진에서 관리하던 3개의 돈대 중에 현재 복원되어 있는 돈대인 좌강돈대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최근에 복원된 시설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군사시설로 생각됩니다. 물론 강화 해안가에 있는 수많은 돈대 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용진진의 좌강돈대는 전형적인 원형 돈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주위는 평지로 인위적으로 언덕을 쌓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돈대에 올라서면 사방을 감시하기에는 좋습니다. 좌강돈대에 올라서서 내려다 본 염하와 주변의 모습입니다. 좌강돈대와 용진진의 문루가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벽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고 일부만 낡은 성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좌강돈대의 출입구입니다. 한 사람 정도 지나..

[강화 해안 진지] 갑곶돈대

강화도 해안은 조선시대 국방상 아주 중요한 장소로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한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여 나름 철저한 방비를 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안을 따라서 많은 돈대와 보, 진을 설치해 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육지와 강화 사이의 염하를 경계로 하는 해안에 많은 군사시설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갑곶돈대는 서울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군사 시설로 여겨져 왔습니다. 지금의 갑곶돈대는 70년대에 고증을 통해서 복원해 놓은 시설로 강화역사관 내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구(舊) 강화대교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화를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갑곶 돈대입니다. 갑곶나루터는 서울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출입구로서 강화해안에 있는 많은 요새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

[강화 해안 진지] 돈대, 용진진

강화의 출입구인 강화대교에서 남쪽으로 해안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도로변에 볼 수 있는 작은 성문이 보입니다. 이 성문이 강화의 해안 진지 중에 하나인 용진진입니다. 3개의 돈대를 관리했다고 하나 평지에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유실되었고 최근에 복원한 문루와 좌강돈대만 볼 수 있습니다. 용진진의 성문과 문루입니다. 아마도 옛날 이 곳에 나루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원래는 성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최근에 복원한 모습입니다. 뒷편에는 복원된 좌강돈대가 있습니다. 용진진이 관리하던 좌강돈대입니다. 원형의 돈대로서 사방의 시야가 아주 좋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용진진 문루와 주위 성벽입니다. 용진진 좌강돈대 내부입니다. 측면에서 본 용진진 문루와 좌강돈대입니다. 좌강돈대에서 내려다 본 염하입니다...

[서산 해미읍성] 돈대와 성벽

해미읍성은 순천의 낙안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해미읍성과 낙안읍성은 그 구조와 성을 쌓은 목적이 매우 유사하며, 해안에서 들어오는 왜구의 기습에 대비한 모습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읍성은 대규모로 침입하는 적들에 대항하여 오랜 기간 농성을 할 수 없는 구조이며, 왜구와 같이 노략질을 목적으로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적에 대항하여 2~3일 정도 농성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래서 해미읍성은 성벽의 높이가 높지 않고, 조총이 없던 시절에 활용한 성으로 성벽위와 돈대에 흉벽을 설치하지 않고 있다. 물론 국가적인 반란의 거점이 될 수 없도록 주위에 해자도 설치하지 않고 있다. 해미읍성에는 돈대가 2곳 설치되어 있는데 서해안 바닷가를 향한 남서쪽 방향에만 2개의 돈대가 설치되어 있다. ..

중국 만리장성 노룡두(老龍頭) - 바다로 들어가는 늙은 용의 머리를 닮은 만리장성 첫번째 돈대

만리에 걸쳐서 이어진 기나긴 장성인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발해만 바닷가에 설치된 첫번째 돈대이다. 이 돈대가 발해만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늙은 용의 머리같다고 해서 이 곳을 '노룡두(老龍頭)'라고 부른다. 돈대를 나와서 성벽에 올라서면 넓은 발해만 바다가 눈앞에 보이고, 성벽위에는 이 곳이 만리장성이 시작하는 지점이라는 여러가지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 발해만에서 시작한 만리장성이 서역으로 가는 고비사막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는 기념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해만 해안가를 가로막고 있는 만리장성 첫번째 돈대. 마치 늙은 용이 발해만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 하여 '노룡두'라 불린다. 만리장성 첫번째 돈대. 벽돌로 쌓아 올린 수많은 만리장성의 돈대들과 비슷한..

중국(China) 2009.10.28

중국 만리장성 산해관(山海關) - 천하제일관 돈대(墩臺), 외성(外城)

만리장성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돈대가 설치되어 있고, 산해관처럼 중요한 성문은 옹성과 외성으로 보호되고 있다. 이 곳 천하제일관은 그 중요성이 높아서 돈대의 간격도 좁고, 외성의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돈대는 팔달령 장성의 돈대와 마찬가지로 벽돌로 쌓은 건물로 누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팔달령 돈대와는 다른 점으로 보인다. 외성은 천하제일관 성문 옹성 바깥쪽으로 웬만한 읍성 규모로 성벽을 쌓아 놓고 있으며, 성벽의 높이나, 두께는 일반 만리장성보다 좁고 낮게 쌓았다. 만리장성 천하제일관 동쪽편 외성과 연결되는 곳에 설치된 돈대. 벽돌로 쌓은 누각 건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돈대 처마의 잡상. 3마리의 동물로 이루어져 있다. 만리장성 돈대 출입문. 돈대 내부. 만리장성 유물을 전시해 놓고 있다..

중국(China) 2009.09.23

중국 만리장성, 북경 팔달령 장성 돈대

중국 만리장성은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서 쌓은 장성으로 적은 수의 인원으로 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서 돈대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것 같다. 돈대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어떤 곳은 간격이 넓고 어떤 곳은 간격이 좁았다. 돈대는 봉우리나 고갯길이 형성되는 곳에 설치되고 있으며, 돈대 주위에는 병사들의 막사가 있었던 것 같고 좁은 계단을 통해서 병사들이 만리장성 위로 출입한 것으로 보인다. 돈대는 능선따라서 이어진 장성 중에서 봉우리나 고갯길에 설치되었는데 지형 등에 따라 돈대의 설치간격이 달랐다. 만리장성에 설치된 돈대는 2층 구조물로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성 바깥쪽으로는 창문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있는데 아마도 대포를 설치할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성벽으로 나가는 돈대의 출입문 돈대는 완벽게 ..

중국(China) 200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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